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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Jan 23. 2023

진정한 술꾼은 누구인가(2편 완)

                    

우리 세 명은 자리를 파하기로 어렵사리 최종 합의를 보고 주점 밖으로 나서려던 참이었다. 강섭이와 상종이는 자신들 주량을 각각 이미 넘어선 것으로 보였다. 벌써 혀가 꾸부라졌음은 물론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여 갈지자 걸음조차 제대로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오늘도 이들의 흑기사로 나서기로 했다. 강섭이와 상종이의 팔짱을 내가 가운데서 한쪽씩 끼고 뒤치다꺼리 미션에 돌입했다. 이 두 중생들을 부축하고 나선 것이었다. 전철과 시내버스 운행이 끊긴 지 오래였다. 오늘 잠자리는 고향 절친 상종이네로 결정했다.     


20대 초반 두 청년의 체중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겨우겨우 이 두 중생을 부축한 끝에 상종이네 자택 건넌방에 도착했다. 두 친구를 방바닥에 내동댕이치듯 내려놓았다. 무릇 이 술자리 뒤치다꺼리 노릇이란 것이 그리 녹록하지 않음을 오늘 또 한 번 더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 이래도 너희가 술꾼이냐?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술실력이 어쩌고, 자랑하기는, 이래도 취하지 않은 거야?”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어쨌거나 이제 눈이나 붙이자고, 내일 강의도 있고 그러니...?”

우리는 다음 날 이른 아침 상종이 노모가 정성스럽게 차려준 북엇국으로 해장국에 갈음했다.     

상종이하고 어제 술을 마셨다고요? 이번이 세 번째인데... 졸업앨범비로 용돈을 받아낸 것이...”

초등학생이 등하교를 같이 하듯 했다. 상종이 대학 동기 둘이 우리가 아침 밥상을 채 물리기 전에 학교에 같이 가자고 들이닥쳤다. 강섭이와 나는 상종이와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이 손목시계 얼마나 주실 수 있나요?”

어제 두 번에 걸친 술자리 때문에 강섭이의 호주머니는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학생 신분인 우리는 당시 신용카드를 쓸 수 있는 형편은 물론 아니었다. 소득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상종이는 버스 정류장으로 행하기 전에 나와 같이 전당포에 들렀다. 이른바 작은집면회소처럼 쇠창살로 안전장치를 마련한 입구로 강섭이는 익숙하게 자신의 손목시계를 들이밀었다. 알이 작은 금테 돋보기를 아래로 내려쓴 전당포 남자 주인장은 7,000원을 건넸다. 담보물의 내역, 인적사항, 대출금액 등을 장부에 적는 순서를 먼저 밟았음은 물론이었다. 강섭이의 손목시계는 전자시스템이 아닌 아나롤그 방식이었으니 그나마 담보가치를 후하게 쳐주었다.

     

준수야 이것 2천 원 차비로 넣어두어라.”

강섭아  차비 있어, 어느 쪽으로 가는 거야. 그래 다음에 또 연락하자.”     

이번 12일간의 모임을 이어간 술자리에서 과연 진정한 술꾼은 누구인지가 궁금해졌다. 우리 셋 모두는 각자 자신의 주량이 최고라며 진정한 술꾼자리는 자신의 차지라고 우겼다. 상대가 술 실력에 관한 한 자신보다 나은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진정한 술꾼으로 인증받을 사람은 달라질 듯했다. 세 번이나 졸업앨범비를 부모에게 받아내 술값으로 탕진한 강섭이, 이미 호주머니가 바닥나 손목시계를 전당포에 맡겨 버스요금을 조달한 상종이, 정육식당에서 코가 삐뚤어진 두 친구를 끝까지 부축하여 잠자리까지 무사히 안내한 나. 각인에겐 각자의 권설이 있었다.  

  

젊은 날의 낭만과 호연지기를 보여준 한 장면이었다. 지금도 같은 하늘을 이고 있는 강섭이와 상종이를 불러 모아 한번 더 술실력을 겨루어 진정한 술꾼을 가리자면 나는 이를 피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단 팔다리가 축 늘어진 두 친구의 팔짱을 끼어가며 부축할 자신은 이제 나에게 더 이상 없다. 가장 진정한 술꾼은 앞으로 남은 세월 동안 누가 더 오래 술을 즐기며 일상생활을 문제없이 이어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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