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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Feb 05. 2023

나는 차, 가지고 다니지 않거든(1편)

적정한 호의동승은 어디까지일까

                   

준수야, 고향 친구들 잘 만나고 있어? 내가 오랫동안 친구들을 찾으러 헤맸는데 별 방법이 없었어. 오늘은 정말 대박이 터진 날이네. 한 명의 친구 연락처라도 있었으면 쉬웠을 텐데...”     

최근 10여 년 이상이란 세월이 훌쩍 지난 이후 성재는 나와 극적으로 연락이 닿았다. 남북 이산가족 찾기에 버금갔다. 초등학교 동기 밴드는 이제 친구들 발길이 끊긴 지 오래였다. 나는 영업상 필요나 또는 네트워크의 지속적인 관리 차원에서 가끔 고향, 고교, 대학 동기, 입사 동기 밴드를 들러보는 버릇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성재와 나는 드디어 극적으로 접선에 성공한 것이었다.  

   

각종 모임의 의사소통 툴은 최근엔 밴드 대신 단체카톡방이 자리를 잡았다. “아주 소중하고 반가운 우리 고향 절친 성재를 초대합니다. 반갑게 맞이해 주세요.” 내가 이렇게 고향 동창 단톡방에 소개 글을 올리자 순식간에 축하하는 댓글이 주르륵 뒤를 이어 달렸다.      

당장 내일 오후 7시 정각에 @@회집에서 얼굴을 맞대기로 했다. 우리 참석자들은 10여 녀간 성재의 근황부터 전해 들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멤버들은 자신의 주량도 잊어버리고선 술잔을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게 공로상이라도 주어야 하는 것 아니야? 새로운 동창회 정회원 멤버를 왕릉에서 국보급 문화재를 발굴하듯이 찾아냈으니 말이지.”     

이래서 이후 성재는 우리 고향 전체, 재경 동창회 모임마다 매번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부모상, 자녀 결혼식, 12일 정기모임, @@지역 소모임마다 성재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간 연락이 전혀 닿지 않았던 외톨이에서 성재는 일약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성재는 내 보금자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12일 행사는 물론 각종 크고 작은 모임에 나와 같이 동행하는 기회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 길이 막혀 스트레스는 기본이고 기름값에다 통행료도 부담이 되고...”

오늘도 12일 고향 동기 모임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성재와 가까운 곳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하얀색 아반떼 애마의 핸들을 잡고 성재를 픽업하여 목적지로 부지런히 내달리던 중이었다.


오늘도 우리는 고향 친구들 근황과 그동안 세상 살아가는 각자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성재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이런 기겁할만한 자신의 평소 생각을 내게 툭 던지는 것이었다. 나로선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그간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나는 다른 동기 친구들은 물론 성재를 내 애마에 동승시켜 크고 작은 모임마다 목적지를 오가는 일정을 같이 해오던 터였다. 이제껏 성재가 자신의 승용차의 핸들을 잡고 모임에 나타나는 일을 나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처갓집 모임에도 내 차는 세워두고 다른 동서들 차에 동승하거나 아니면 버스 열차 택시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있어. 그러니까 세상 편하지,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고...”
점입가경이었다. 나는 늦게서야 자동차 운전면허 취득을 했고 자가운전자의 대열에도 당연히 늦깎이 데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 연고 점포에 근무 중이던 시절이었다. 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법인을 오가는 법인 영업을 치열하게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내게 승용차는 늘 아주 필요한 존재로 바뀌었다.  

   

그 이후 나는 고향 동창회원들 경조사는 물론 각종 모임마다 내 애마를 항상 출동시키는 것이 이제 오랜 습관으로 굳어졌다. 그래서 자가운전에 익숙지 않은 여자 동기나 운전면허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자신의 차량을 운행하기를 꺼리는 뚜벅이 친구들을 동승시키기 위해 늘 내 애마를 대령했다. 어엿하게 중형 이상의 고급 승용차를 굴리는 남자 동기들도 내 애마에 자신들의 몸을 맡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준수야, 신도림역 근처에서 11시 정도에 만나면 되겠네? 인천 예식장 시각이 12시이니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

오늘은 고향 절친 딸 결혼식이 내가 살고 있는 인천 시내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서울 강북 지역에 살고 있는 여자 동기 선주는 오늘도 이 예식장 가는 길에 자신을 픽업해 줄 것을 내게 너무나 당당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선주는 내가 인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 깜박 잊었나 보았다. 나는 또 한 번 기겁을 했다. 내가 친구들 개인 기사수행 비서가 아닌데도 이렇게 크고 작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나를 찾는 것이 어느새 당연한 일이 되었다. 나는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는 작은 자괴감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매번 모임 때마다 내 애마 운행 방향과 매치가 된다면 큰 문제가 없을듯했다. 그런 경우 나는 친구들을 기꺼이 픽업하여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실어 나르는 정도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동기들 부모상, 배우자 부모상에 침석 하기 위한 친구들은 우선 나부터 찾았다. 지방 장례식장, 빈소나 장지까지 자신들을 동승시켜 주길 내게 요구했다. 특히 여자 동기들은 그런 경우가 훨씬 잦았다.  

   

이러던 중에도 자신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른 친구들의 승용차나 다른 대중교통편이 마련될 경우엔 아예 처음부터 연락을 끊어버리는 이들도 주위에 자주 지켜볼 수 있었다. 때론 자신의 퇴근 시각까지 기다렸다 픽업을 원하는 무리한 요구에도 나는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은 다른 생각도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친구들 개인 자가운전 차량의 운전기사나 수행 비서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운전면허가 아예 없거나 장롱면허 신세이기 때문에 장거리 주행을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여자 동기들이야 그렇다 칠 수 있다. 엄연히 운전 경력이 수 십 년에 이르고 중형 이상 차량을 보유한 남자 동기들도 이렇게 처신을 하니 나는 그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러다 보니 일부 남자 동기들 애마를 나는 한 번도 구경해 본 적이 없기도 했다. 결국 나는 바보, 짱구, 아니면 호구인 것이 분명했다. 어디에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운전이 생업이 아닌 다음에야 그 누가 기름값과 통행료를 들여가며 자신의 차량을 남을 위해 매번 운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여러 모임을 마친 후 내 애마 신세를 진 친구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 듣기는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오가는 코스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니 태웠노라고 평가절하하여 넘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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