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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Feb 06. 2023

나는  차, 가지고 다니지 않거든(2편 완)

전정한 호의동승은 어디까지인가


               

애초 누가 먼저 버르장머리를 잘 못 들인 건데? 모두들 집 앞마당까지 택배서비스를 마다하지 않으니... 지난번엔 4명을 각자 최종 목적지에 내려 주고 돌아갔더니 새벽 1시가 훌쩍 넘었더라고.”      

그런데 이런 의무 운전자 역할자 명단에 이름을 단골로 올리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단골 기사로 평소 지목받은 친구들 몇 이서 모일 때마다 동기 모임을 결산해 보는 자리에서 나오는 넋두리였다.      


“@@역으로 오전 9시까지 나오라고 하던가, 이런 식으로 해야지 운전자가 예정한 코스를 바꾸어가며 자기 집 대문 앞까지 대령하도록 호출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는 것이지?”

맞아, 중간집결지를 정하고 그곳을 들르기로 하는 것이 맞는 이야기야.”

애초의 호의가 나중엔 당연한 의무로 변질되기 일쑤였다. 9번을 잘 대해주다 1번을 삐끗하면 그동안 9번 공은 무두 날아가고 한 번의 서운한 마음만 남는다는 말이 이 경우에 딱 맞았다.

     

나는 동창회 총무를 3번이나 맡았던 이력이 있다. 친구들이 장거리 이동이 필요할 때 총무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자신의 승용차를 동원할 수 있는 친구들을 서둘러 수배하고 이른바 뚜벅이들을 적절하게 배차해 주는 것이 그것이었다. 나는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준수야 그래도 각종 모임마다 자신의 승용차를 기꺼이 들이미는 친구들 덕분에 이렇게 오랜 기간 동창회가 활성화되고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잖아.”

단골 운전기사들이 모여 때론 신세 한탄성 넋두리를 이어가다 결론은 이렇게 마무리되기 일쑤였다. 내가 얼마간의 시간, 노력, 비용을 투자하여 친구들에게 작은 봉사와 희생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넘겨버리는 것이었다.    

  

어이, 최준수 씨 왜 그 뒷좌석에 타는 거야, 그것은 어디서 배웠어?”

내가 현역 시절 본부 자금부에서 근무할 때 일이었다. 지금 같은 폰뱅킹이나 인터넷뱅킹이 도입되기 훨씬 이전이었다. 아침 이른 시각에 전국에 흩어져 있는 영업점마다 일일 영업자금을 여러 거래 은행을 통해 송금해야 했다. 자금부에 배차된 업무용 차량을 이용해 제법 먼 거리를 오갔다.     


그런데 오늘은 사정이 있어 우리 부서에 배치된 업무용 차량 기사분 대신 다른 운전자가 대타로 나섰다. 나는 차량에 수시로 오르내려야 했다. 그러니 안전벨트도 그에 따라 자주 매었다 풀었다를 반복해야 했다. 그래서 조수석이 아닌 상석인 뒷죄석에 앉았던 것이었다. 

    

이제 막 겨우 30대에 들어선 내게 자신은 내 삼촌 뻘이 된다고 대타 기사분은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새파랗게 젊은 말단 사원에 불과한 내가 부서장이나 아니면 임원 대접을 받고자 덤비는 것으로 보았을 것이었.      

“그분 아들이 이번에 @@대학에 입학했어. 안전벨트를 매었다 풀었다 하는 불편 때문이라 핑계 대지 그랬어?”

본래 배치된 우리 부서 업무용차량 기사분이 내게 일렀다.


내 애마를 비교적 자주 이용하던 성재는 운전자인 나를 제외하고 동승자가 자신 혼자뿐인 경우도 내 애마의 조수석이 아닌 운전자의 대각선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자신보다 늦게 내 차량에 오를 다른 친구를 위해 조수석을 비워두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말 그대로 나는 이 친구의 전용 기사가 된 기분을 못내 떨쳐 버리지 못했다. 두 친구를 픽업하기로 한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중간집결지에 내 애마를 대령하던 순간이었다. 용준이 보다 성재가 앞쪽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조수석으로 들어서는 것이 자연스러운 동선이었다. 그럼에도 성재는 조수석 뒷좌석을 얼른 차지하였다. 나는 상대적으로 얼굴과 두상 표면적이 남보다 여유가 있다. 그래서 남이 보기엔 내가 좀 둔해 보이는 면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름 이런 상황이나 동작을 놓치지 않는 역량이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런 것을 읽어내지 못할 내가 아니었다. 내 운전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성재는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덜한 뒷 좌석을 차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까지 내 생각이 미쳤다.

     

나는 이 친구에게 아직도 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지 못하고 있다. 혹시 마음에 뜻하지 않은 상처를 주거나 오해로 인해 친구 사이가 어그러질까 하는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이다. 이 친구는 직장, 군대 등 조직 생활 경험이 아예 없거나 미천한 때문일 것이라 그저 속으로 삭이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내겐 큰 아쉬움과 배신감마저 묻어남은 어쩔 수가 없다. 오늘도 자신은 승용차를 운행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 번 더 내게 던졌다. 그저 종래부터 지금처럼 형편이 되는 대로 내 승용차 신세를 지면 별 문제가 없을 듯했다. 굳이 자신은 핸들을 잡는 일은 싫고 교통 정체로 스트레스를 많아 받는 바람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말은 아예 처음부터 내 앞에서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었다.

      

지난주 수요일 저녁엔 가까이 사는 친구들 네댓이 서 우리 집 근처 술자리에 둘러앉았다. 철에 맞지 않게 소나기를 넘어 집중호우가 기세를 부리고 있었다. 오늘은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평소 자신의 승용차를 남들에게 구경시키지 않던 이 친구는 어쩐 일로 이번엔 중후한 중형 승용차를 주점 밖 주차장에 대령하고 나섰다.  

    

애주가인 이 친구는 오늘 대리 운전을 부를 생각은 전혀 없다며 평소와 달리 술잔을 입에 대지 않았다. 무려 주행거리가 20만 킬로미터를 훌쩍 넘어선 내 하얀색 중고 아반떼에 비해 친구 승용차는 훨씬 중후 장대 한 위용을 자랑했다. 친구 승용차를 가까이서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는 정말 참 오랜만이었다.

     

참 지난해 벌초 시즌이었어. 고향 가는 길목인 @@시내에서 임대한 예초기를 내 차 트렁크에 여유 있게 싣고서 혼자 부모님 산소 벌초를 마치고 왔어. 새벽에 집을 나서는 바람에 길도 별로 막히지 않아 잘 다녀왔지.”     


교통정체에 따른 스트레스 등을 이유로 자신은 평소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게 너무나 또박또박 말을 건네던 친구의 모습이 오늘따라 겹쳐 보였다. 크고 작은 모임 때마다 내 애마를 끌고 나타나 친구들을 동승시켜 주는 나는 분명 바보나 호구였음이 여실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고향 상갓집에 갈 거지? 어디서 몇 시에 출발할 거야? 우리 회사 앞으로 630분까지 올 수 있지?”

최근 내게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여자 동기 미혜는 오늘도 내 하얀색 중고 아반떼 차량 좌석 한 곳을 미리 당당히 찜하는 순간이었다.

      

골프라운딩에 나설 때도 자신의 승용차를 교대로 원하는 것이 관행이고 기본 예의잖아?”

고교동기 한 절친이 내게 늘 이르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고향 동기 모임에서 이 관행이 지켜진다면 나는 많은 짐을 덜 수 있을 텐데, 언제나 나 혼자만의 바람으로 끝나고 있다. 적정한 호의동승의 한계란 어디까지인가는 아직도 늘 이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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