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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Feb 19. 2023

디지털 시대, 길치(기계치)가 살아남는 법(1편)

              

               

그래, 오늘 밤은 어디 가서 잘 거야?”

증산동 누나네로 가야지, 거기 가려면 일단 서울역을 거쳐야 해서, 여기서 직접 증산동 누나네로 가는 길은 내가 잘 모르거든, 찾아갈 수가 없어...”고향 절친 철주는 오늘도 서울역을 경유하여 자신의 누나네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이곳에서 증산동까지 운행하는 버스 노선을 찾으면 훨씬 수월할 텐데 꼭 서울역을 거쳐야만 누나 집을 찾아갈 수 있었다.      


70년대 후반, 80년대 초였다. 지금처럼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을 찾아볼 수 없는 시절이었다. 버스정류장마다 ‘노선버스 안내 시스템이란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에 철주로선 이런 방법으로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좀 더 지리에 밝았더라면 누나집으로 돌아가는데 많은 시간이 절약되는 방법은 분명히 알아냈을 것이었다.    

  

철주는 고향에서 상경하여 누나네를 오가는 것이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귀가 경로에 관해 이제 더 익숙해질 때도 되었다. 결국 철주는 누나집을 오가는 부문에 관해서는 이른바 길치라 놀림을 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30대 후반에서나 자동차 운전면허를 취득했고 중고차 애마를 마련했다. 그래서 천신만고 끝에 자가운전자 대열에 겨우 합류할 수 있었다. 원거리를 오가야 하는 외곽법인 영업에 자가운전은 반드시 필요했다.      

실 나는 지금처럼 버스나 지하철 노선 안내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환경에서 이런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목적지나 약속 장소를 찾아가는데 별로 익숙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예전보다 노선이 훨씬 늘어났고 환승역도 복잡해졌으며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서울이 아닌 인근 위성도시에 살고 있다. 외출 시엔 웬만하면 내 애마를 동원한다. 게다가 초행길은 물론 자주 오가는 행선지로 나설 때도 늘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습관적으로 받고 있다. 이러니 나도 어찌 보면 사실 길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없다.     


스마트폰에 다운로드한 어플의 도움을 받아 전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행선지를 거뜬하게 자유자재로 오가는 이들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다. 눈썰미가 특히 좋은 친구들은 아예 스마트폰 어플의 도움도 사양한다.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내가 이 길치의 범주를 벗어나 이들 숙달된 그룹에 합류하기에는 더욱 많은 세월이 필요해 보인다.   

   

최대리, 다른 사람에겐 창피해서 이야기할 수가 없네...”

같은 점포 조차장은 오늘 오후 우리 주요 거래처인 @@정수기 회사를 다녀오기 위해 지점을 나섰다. 지난번에 일어났던 입출금 거래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혼자 자신의 애마 핸들을 잡았다. 그런데 처음 출발 당시 우리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고속도로 진입로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평소 업무용 차량을 이용하던 조 차장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야심 차게 혼자 자신의 애마를 출동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거래처를 다녀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했다. 조차장은 자신은 고교 시절 학교에서 치르던 수학 시험에서 자주 만점을 받아 들었다. 이렇게 수학 공부를 잘 해내는 이과 성향의 캐릭터임에도 조차장 역시 길치의 무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부장님, 제가 이번에 큰 마음을 먹었습니다. 자동차 장착용 내비게이션을 마련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 내비게이션 매장을 나 혼자 만의 힘으로 찾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제가 혼자 가려면 우선 내비게이션 매장까지 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션’이 필요한데... ”     

지인 박 차장의 하소연이었다. 이런 경우 내비게이션 매장 위치를 잘 알고 있는 지인의 도움을 받거나 내비게이션이 장착된 다른 이의 차량 신세를 지는 방법 이외엔 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박 차장 역시 길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젠 우리나라만의 순수 기술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시대가 도래했다. 짧은 세월 안에 고속 압축 성장을 해냈다. 다른 과학 기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기기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버전 업되는 디지털 세상임을 누구나 다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나날이 발전하는 문명의 이기를 다루는데 서툰 이들은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모바일 기기를 다루는 법도 제 때 익히지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컴퓨터 조작 능력을 키우는데 다른 이의 도움으로 해결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관련 서적이나 기타 매뉴얼을 스스로 찾아 익히는 이들은 그나마 지진아 축에 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다. 남이 보여주는 시연이나 조작법  통해 배우는 것은 언 발에 오줌누기. 이다음에 본인 혼자서 이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 데는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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