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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Mar 14. 2023

생애 첫 가출소동(2편 완)

- 부와 권력은 항상 동행하는가 -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세명이나 되는 많은 친구를 데리고 삽작문을 불쑥 들어섰음에도 민준이 부모님은 우리를 아주 반갑게 맞았다. ‘가정실습이란 이름에 걸맞게 우리는 친구 부모님 농사일을 당연히 도와야 했으나 아주 신나게 먹고 놀기로 작정을 했다.  

    

주식 재료인 쌀과 보리 기타 잡곡은 물론 반찬거리 대부분은 직접 논과 밭에서 키운 것이었음은 물론이었다. 노란 색 작은 알갱이 모양의 조를 섞어 넣은 조밥에다 직접 띄운 청국장에 수제 두부를 아낌없이 듬성듬성 썰어 넣은 조선 토종 청국장찌개는 어린 우리의 입에도 딱 맞았다. 지금과 달랐다. 당시는 지금처럼 청국장의 비우호적인 독특한 냄새를 감출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었다. 싱싱한 미나리 무침에 각종 나물 반찬, 들기름에 구워낸 김 등은 매번 밥상에 오르는 단골 메뉴였다.      


장남 프리미엄을 마음껏 누리던 친구 민준이는 그나마 우리 3명 친구의 방문을 핑계로 농사일 돕기는 아예 뒤로 밀쳐 놓았다. 부모님은 장남 친구들을 모자라지 않게 대접하는 일에 집중했다.      

강줄기를 두 번이나 나룻배로 건너서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전설적인 동네인 ‘말그리’가 한눈에 내다 보이는 비단 강가 너른 평지 공간은 오늘도 우리 차지였다. 오늘 점심을 마친 후 1년 선배 몇 명과 우리 친구들은 편을 갈라 축구시합에 나섰다.      


, 경수야, 그만하자. 준수가 잘 못했다고 사과했잖아?”     

나는 본디 부모에게 좋은 운동신경을 물려받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축구 시합에선 그나마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이른바 몸으로 때우기라도 해야 할 형편이었다. 내 생각엔 전문 용어로 태클이었으나 1년 선배 경수 형에겐 파울이었다. 경수 형은 이런 내게 주의를 준답시고 훈계와 질책을 섞어 체벌에 까지 나섰다. 나는 이에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선배가 보기엔 내 플레이나 응대가 게기는것으로 보였다.   

   

내게 1년 선배 경수 형과 두호 형은 동기에다 같은 동네 절친이었다. 키나 몸집 체력을 따지자면 경수 형은 두호 형에게 감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호 형은 경수 형에게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가까운 사이임에도 친구처럼 대할 수가 없었다. 두호 형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그저 안절부절했다.  

        

경수 형은 이른바 동네 유지 내지 토호세력의 자식이었다. 이에 반해 두호 형은 빈농아들이었다. 경제력에서 두 선배 간에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 경수 형네는 그 시절 부의 상징이기도 했던 방앗간을 꾸려가고 있었고 이 일대 많은 농토를 보유 중이었다. 이른바 지주라 일컬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이러다 보니 같은 고향 친구 사이이지만 두호 형은 경수 형에게 섣불리 충고를 하거나 이런 다툼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입장이 아니었다. 평소 경어는 아니지만 편한 말로 대화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경수 형은 금수저인 반면 두호 형은 흙수저였다.   

   

경수 형의 나에 대한 체벌은 이제 멎었다. 두호 형을 비롯하여 우리 동기들이 성의 있는 설득 덕분이었다. 이번 다툼에선 그 어느 누구도 경수 형에게 강력하게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당시 두 선배는 만 14세였다. 10대 초반 어린 나이에도 빈부 격차 때문에 두호 형은 항상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이에 반해 경수 형은 이른바 권력을 마음껏 누렸다.  

   

모름지기 권력을 가진 사람은 부와 명예까지도 탐하는 것이 현실이다. 3자가 한 곳으로 몰리는 쏠림 현상은 리스키하고 바람직하지 못하다.”     

오랜 전에 자주 듣던 이야기다. 권력을 손에 쥐면 부와 명예마저 모두 거머쥐려는 것이 인간의 속성인가 보다.  우리 사회에선 계층 이동의 사라진 지 오래다.  누구든지 열심히 노력하면 신분 상승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계층의 고착화, 빈부, 권력, 명예의 대물림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계층 이동이 가능한 정책과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3대가 열심히 노력해야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는 미국의 이야기는 우리에겐 아직도 다른 세상일 뿐이다. 당시 비단강변 공터 축구 시합 중 내게 꾸지람과 질책, 체벌을 아무 거리낌 없이 일삼던 경수 선배와 이를 조심스럽게 뜯어말리던 두호 선배의 살림살이 격차가 좁혀졌다는 이야기를 나는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다.     


쏠림, 불균형, 고착화, 격차의 심화 등은 언제나 완화될 수 있을까. 경수 두호 두 선배가 서로 거리낌 없이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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