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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Mar 13. 2023

생애 첫 가출소동(1편)

-  부와 권력은 항상 동행하는가 -

                         

                  

우리 학교는 320일이 개교기념일이었다. 이를 맞아 매년 한 번도 거르지 않던 가장 큰 행사가 있었다. 마라톤대회가 바로 그것이었다. 모교 교정을 출발하여 이웃 학산면 박계리 다리를 오가는 왕복 8킬로미터가 정해진 단골 코스였다.  

    

70년대 말 이란의 혁명지도자로 그 위세를 날렸던 ‘호메이니 옹’에 다름이 었다. 우리 사립 중학교의 설립자가 그랬다. 설립자는 모교의 살림살이는 물론 학사 운영 등 모든 부문을 두 손에 쥐고 흔들었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달리기를 수시로 불러냈다. 개교기념일에 벌어지는 마라톤대회는 그가 벌인 가장 큰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중학교 2학년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올해도 개교기념일 마라톤 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본디 달음박질 부문에선 젬병이었다. 그래서 이번 행사에는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기로 결단을 내렸다. 일단 등교를 하면 이 대회를 보이콧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무단결석을 하기로 작정을 했다.      

이 설립자란 작자는 체육담당 교사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교감이나 교장이란 이름도 달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크고 작은 학사 일정 모두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기형적인 행태였음은 물론이었다.  

    

이번 체육과 시험은 이 마라톤대회 성적으로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아주 정말 제 멋대로였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마라톤 대회를 마친 지 몇 개월이 지난 뒤였다. 나는 무단결석이란 작지 않은 시위로 이 마라톤 대회 참석을 거절함으로써 설립자의 기이한 행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었다. 어쩌면 이 설립자는 평소 자신의 학사 운영 등에 먼저 나서서 이를 선뜻 반기지 않는 내게 치명적인 불이익을 안겨 보복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체육 시험을 보이콧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번 개교기념 마라톤 대회에 아예 출전하지 않은 학생에겐 체육 성적은 기본 40점을 줄 수밖에 없다.”     


참으로 국내 중학교를 통틀어 체육 시험 평가 부문에서 전무후무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이래서 체육 과목 성적 40점을 받아 든 덕분에 나는 반 석차가 단군이래 최초로 두 자릿수에 진입하는 초유의 참사를 겪었다. 이번 이런 성적표를 아버지 앞에 내놓을 자신이 전혀 없었다. 하늘이 노랗게 변했음은 물론이었다.    

 

상준아, 우리 기호하고 같이 민준이네 놀러 가자.”

그래도 될까? 집에는 알리지도 않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당시 개인이 쉽게 장만하기가 만만치 않은 제대로 모양을 갖춘 축구공을 들고 우리는 곧장 발걸음을 내디뎠다.  

    

결국 나는 이 엄청난 충격적인 사건을 견디다 못해 같은 부락 친구 기호, 상준이와 함께 일찍이 10대 초반에 집안의 족보에 찾아볼 수 없는 가출에 나섰다. 바야흐로 이제 제대로 망가진 어린 중학생이 되었고 비행 청소년이 된듯했다. 가정실습 주간을 활용했다. 나룻배의 신세를 지어 비단강 줄기를 가로지른 후 30여분이나 걸어서야 도착했다. 다른 부락의 친구 민준이네로 피신하는 23일간의 예정에 없던 가출여행을 떠났다.    

  

중학생을 통틀어 자신의 힘만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아 넘어설 수 있는 학생이 손으로 꼽을 정도로 경사가 가파른 서낭당 고개를 우리는 터벅터벅 걸어서 넘었다. 죽산리란 동네 안에서도 작은 부락별로 정겨운 이름이 붙어 있었다. 오정골, 비암칭이, 세터, 서바탱이 중 울창한 대나무숲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동네 한 귀퉁이에 자리한 전형적인 시골 농가 초가집이었다. 흙과 돌로 유난히 높게 쌓아 올린 뜨럭이 독특했다.  

   

농촌에 소재한 초 중 고교에선 1년에 2번 농번기에 맞추어 가정실습이란 공식적인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었다. 부모님 농사일을 도와주라는 일종의 방학이었다. 마침 초여름 보리가 실 것 패어 있어 수확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내일부터 5일간 정규 수업을 뒤로한 채 등교를 하지 않는 아주 좋은 기회가 온 것이었다. 이를 이른바 정시도착이라 일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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