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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Mar 20. 2023

아주 안타까운 것 딱 한 가지(2편 완)

                                

박 선생님으로부터 방금 전 얼얼할 정도로 뺨을 가격 당한 친구는 표적도 없고 이유가 없는 적대감이 솟구쳤다. 이제부터 상대 친구의 뺨을 제대로 힘차게 때리는 본 궤도에 올라 선 것이었다. 이 뺨치기 궤도에 한 번 오른 학생은 거기서 언제 내려올 수 있을지 전혀 기약을 할 수가 없었다.     


가격 회수가 각각 두 자릿수를 넘어서면 두 참여자의 얼굴은 이미 망가져 있었고 멘털은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평소 훌륭한 역량과 자질을 갖추고 있는 선생님 덕분에 늘 웃음으로 가득했던 교실 안은 순식간에 어색한 침묵에다 살벌한 긴장감마저 돌았다.     


정말 훈육에 일정한 체벌이 필요하다면 이 야만적이고 비신사적인 방식 말고 얼마든지 다른 대안은 충분히 있었다. 그 흔한 나무 막대기로 손바닥을 때리거나 종아리를 갈기는 것으로 충분히 깔끔한 마무리가 가능했다. 10대 초반에 불과한 어린 내 생각이었다.      


이 뺨치기 궤도에 올라선 친구는 서로 다툼이니 이해관계 또는 적대감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서로 뺨 때리기를 주고받다 보면 모두는 육체의 고통은 물론 정신마저 피폐해졌다. 두 참여자 간에 어떠한 이해관계가 없다 보니 이를 ‘이이제이’라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나의 긴 학창 시절과 군 복무기간을 통틀어 이런 인간의 기본 정신적인 멘털을 망가뜨리는 체벌 방식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체벌 프레임에 한번 갇힌 친구들은 이 뺨치기를 계기로 친구 관계가 영원히 파탄이 날 수도 있었다.      


“다음 날 학교 운동장 평탄 작업 때문에 삽이나 괭이를 지참하고 등교하라는 이야기 등을 종례 시간에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해야 하는데 이를 수시로 빠뜨리고 그랬어. 그래서 내가 하는 수 없이 이번에 박 선생님을 내보낸 거야.”
 

나는 이런 사연을 알고 싶지도 않았고 들을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나는 모교 교사나 직원이 아니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의외의 일이었다. 우리 사립중학교 설립자는 박 선생님이 이번에 우리 학교를 떠나게 된 이유를 내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나선 것이었다.      


“얘들아, 박 선생님이 그렇게도 좋았니? 저쪽 반 교실에서 국어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이 싫어서 선생님에 관한 노래를 지어 부르기까지 했어.”
 방금 전 음악 선생님이 우리에게 물었다.     

 

국어 담당 박 선생님은 우리를 잘 가르칠 훌륭한 역량과 열정 모두에 부족함이 없었다. 선생님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서울 등 대도시 명문학군에 자리한 중고교 교사로 부임하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충분한 콘텐츠와 뛰어난 교수법을 자랑했다.     


사범대 출신 아닌 교사는 재학 중 교직과목을 이수해서 준교사 자격증을 보유해야 교단에 설 수 있는 것이 내가 대학 시절의 시스템이었다. 우리에게 사범대 출신의 정교사나 아니면 준교사 자격증 보유자인가의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훌륭한 자질과 열정을 갖춘 박 선생님은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우리 친구들은 잘 가르쳐 낼 수 인물이었음에 모두가 동의했다.    

  

이런 박 선생님에게 아주 딱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이 “뺨치기 방식”의 체벌 프레임이었다. 이 안타까운 점 하나가 박 선생님의 교사로서의 훌륭한 자질을 모두 훼손시키는 아주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만약 박 선생님이 자신의 주특기인 이 “뺨치기” 체벌 방식을 고집하지 않았으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랬다면 우리 중학생 친구들은 더 오랜 기간 동안 이 박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을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의 국어 실력은 일취월장했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했다. 어쩌면 나도 국문학과로 진학을 하여 글쓰기에 보다 일찍 입문을 했을 것이고 혹시 전업 작가의 길을 가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 뺨치기 체벌 방식을 문제 삼고 궤도의 순환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어떤 획기적인 방도는 없었을까, 지금도 궁금증으로 남는다. 지금 같았으면 학부모들이 이를 즉각 들고일어나 박 선생님은 더 일찍 교단을 떠났을 것이었다.      


“도화선이란 폭약이 터지도록 불을 붙이는 심지를 말하는 것이야. 그런데 이 것이 본래의 뜻이지만 이보다는 비유적으로 더 자주 쓰이고 있어. 사건이 일어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말하는 것이야.”     

박 선생님은 폭약의 심지를 그려가며 실감 나게 낱말 풀이를 이어갔다. 얼마 전 모교 설립자는 박 선생님이 우리 학교를 떠나게 된 이유로 학생들에게 전달사항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가장 큰 것으로 들었다. 하지만 아마도 박 선생님의 체벌 방식의 트레이드마크인 ‘뺨치기’가 도화선이 되지 않았나 하는 것은 과연 나 혼자만의 생각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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