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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Mar 30. 2023

자치기 놀이(1편)

- 일단 지르고 보기-

    

“재려면 재! 3,000자!”
 “그래 그러면 배 물리기다?”

오늘도 우리는 5일 장터 창고집 앞 공터에서 자치기놀이를 이어가고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우리 동네 최상위권 집안을 제외하곤 놀이기구를 금전적 대가를 주고 구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맨손으로 그저 놀거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놀이나 게임도구를 만들 수 있을 뿐이었다. 그중의 하나가 자치기놀이였다.

     

자치기놀이엔 큰 자와 작은 자 두 가지만 준비하면 충분했다. 큰 자와 작은 자는 각각 80센티미터와 20센티미터 내외의 둥근 나무막대기를 가공해 냈다. 큰 자는 나무껍질을 벗겨내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대세였다. 양쪽 끝부분은 일자로 잘라냈다. 별도 추가가공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작은 자는 달랐다. 양쪽 끝부분을 사선으로 삐져내되 양쪽 끝 잘라내는 부분은 방향을 180도 달리하는 방식으로 가공이 필요했다. 그 외 추가 도구나 장비가 필요 없었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포장된 장소가 아닌 비포장 흙바닥 위가 단골 경기장이었다.     

 

적정한 곳에 홈베이스를 잡았다. 먼저 3센티미터 내외의 폭에 20센티미터 길이로 기다랗게 흙을 파내어 홈을 만들어야 했다. 이제 자치기 놀이에 필요한 준비는 모두 마루리 되었다. 두 개 팀으로 갈라 경기에 들어갔다. 한 팀당 엔트리가 오늘은 5명씩으로 결정되었다.   

   

경기는 공격과 수비를 교대로 이어갔다. 공격은 3단계로 나뉘었다. 5,000자란 점수를 먼저 넘어서는 팀이 최종 승자가 되는 것으로 정했다. 공격팀의 모든 선수가 아웃되기까지 점수를 누적해 나갔다. 공격 3단계 중 첫 번째는 점수를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제2, 3 단계로 진입하여 본격적으로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자격을 따내는 구간에 불과했다. 예비 관문에 해당했다. 이 첫 번째 단계에서 살아남아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점수를 쌓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단계에선 이미 파 놓은 홈에 열십자로 걸치듯이 정확히 작은 자를  올려놓는다. 그런 다음 타자는 큰 자를 홈 깊숙이 끼우듯이 밀어 넣어 자신이 잡고 있는 큰 자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큰 자로 작은 자를 공중으로 힘껏 들어 올려 멀리 내보낸다. 때론 축구경기에서 땅볼로 깔 듯이 낮은 고도로 작은 자를 날려 보내기도 했다.      


여기서 땅바닥을 이륙한 이 작은 자를 수비팀 선수가 누구라도 맨손으로 받아내면 이 타자는 아웃이 되는 것이었다. 만약 손으로 받아내지 못했더라도 아직 생존을 단정하기에는 일렀다. 이 경우엔 큰 자를 패인 홈 위에 가로질러 올려놓았다. 수비수가 작은 자를 홈베이스로 집어던져 큰 자를 맞추어내면 또 아웃이 되었다.  

   

이 첫 관문에서 살아남으려면 제법 치밀한 전략이 필요했다. 무조건 있는 힘을 모두 동원하여 공중 높이 솟구쳐 오르게 한다고 그것이 결코 능사는 아니었다. 야구 경기에서 인필드플라이로 아웃되거나 정직한 플라이 볼로 마무리되듯이 수비수에게 이 작은 자가 손쉽게 잡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축구경기에서 똥볼을 연속해서 차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장갑으로 무장하지 않은 맨 손바닥으로 양끝 부분이 뾰쪽한 작은 자를 잡겠다고 두려움 없이 나서는 것이 예삿일이었다. 때론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래서 ‘자치기’를 ‘다치기’로 재미있게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경기장 안의 수비수의 위치나 개별 선수들의 수비력을 사전에 파악해서 쏟아붓는 힘의 크기, 띄우고자 하는 지상 높이 등을 미리 구상해야 했다.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 쪽으로 작은 자를 날려버려선 낭패를 당했다. 야구 경기에서 뛰어난 유격수에 쉽게 잡히는 것에 딱 맞았다.

     

첫 번째 고비를 넘어선 타자는 두 번째 단계로 진입한다. 이번엔 큰 자와 작은 자를 한 손으로 함께 쥐고 순간적으로 작은 자를 살짝 공중에 띄운 후 큰 자로 작은 자를 타격하여 수비수에 잡히지 않고 되도록 멀리 날려 보내야 한다. 작은 자가 수비선수에 잡히지 않고 일정 지역까지 날아가 종국적으로 땅바닥에 착지가 되었다.      


수비팀 선수 중 지명된 자가 작은 자를 홈으로 던져버린다. 목표물에 정확히 던지는 능력이 있는 선수가 단골 야수로 나섰다. 그러면 타자는 자신이 들고 있는 큰 자로 이 작은 자를 쳐내어 방어를 했다. 때론 이 과정에서 작은 자나 큰 자가 선수 얼굴이나 다른 부위에 부딪혀 크고 작은 부상을 입기도 했다. 상당히 리스크가 있는 놀이였다.


 타자가 큰 자로 수비수가 던진 작은 자를 쳐내거나 아니면 그러지 못해서 땅 위에 멈추었다. 그러면 이곳부터 야구 경기의 홈베이스에 해당하는 패인 홈의 끝부분까지 큰 자로 몇 배의 거리가 떨어져 있는가를 기준으로 점수를 계산해 냈다.  

   

야구 경기에서 홈런은 이 자치기 놀이에선 없었지만 파울볼 제도는 따로 있었다. 파인 홈 배이스를 기준으로 좌우로 일정한 각도에 파울라인을 설정하고 경기에 들어갔다. 이 파울라인을 벗어나면 한 번에 아웃처리 되었다. 이 파울라인을 벗어나지 않고 작은 자를 되도록 멀리 날려 착지에 성공할 경우 많은 점수를 얻을 가능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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