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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Mar 31. 2023

자치기 놀이(2편)

- 일단 지르고 보기 -

                           

                      

오늘처럼 큰 자 길이가 80센티미터로 출발한 경우엔 직선 최단 거리로 8미터 거리에 떨어지면 10자 점수를 얻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생에 불과한 우리는 체격과 체력에 그 한계가 있었다. 자신이 들어선 타석에서 50미터 이상 지점까지 작은 자를 날려버리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가 오늘 먼저 도달해야 하는 5,000자는 까마득한 목표였다. 어쩌면 오늘 서산 너머로 해가 자취를 감추기 전까지 달성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이제 우리도 지금까지 자치기 놀이를 한 두 번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결국 차치기 놀이 승부는 세 번째 단계에서 누가 더 집중해서 단기간에 점수를 올리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은 모든 친구가 너무나 다 잘 일고 있었다.    

  

세 번째 단계는 그 이름도 특이하게 속칭 ‘땅콩’이라 불렀다. 껍데기를 벗겨내지 않은 견과류의 대표 작물인 땅콩과 작은 자의 외형이 닮아서 그 이름을 얻은 것으로 보였다. 땅콩 단계에 들어선 타자는 작은 자를 땅바닥에 마련해 놓은 홈의 앞쪽 끄트머리에 45 내지 60도 내외로 비스듬히 눕혔다. 홈으로 들어간 부분과 지상으로 올라온 부분은 각각 반 정도 차지하도록 요령껏 정성을 다해 올려놓았다.     

 

이는 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던져주는 볼을 가격해야 하는 타자와 입장과 달랐다. 자치기 놀이에서 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위치에 마음대로 배치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자신의 타격 자세 등에 가장 유리한 곳을 골라야 함은 물론이었다. 위치에 따라 타격 횟수가 달라지고 결국은 점수를 얼마나 얻어낼 수 있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이제 타자는 큰 자를 동원하여 이 작은 자 끝부분을 이미 정교하게 자신이 이미 머릿속에 그려놓은 강도와 방향으로 툭 내려쳤다. 작은 자는 탄력을 받아 이윽고 공중 위로 튀어 올랐다. 이 작은 자가 공중에 머물러 있는 동안 타자가 연속해서 몇 번을 가격한 후 멀리 날려 보내느냐에 오늘 경기의 승부는 결정되는 것이었다. 튀어 오른 작은 자를 타자가 큰 자로 한 번에 전력을 다해 날려보았자 고득점 달성엔 성공하지 못한다.  

  

즉 튀어 오른 작은 자를 큰 자로 한 번 타격하여 수비수에 잡히지 않고 멀리 날리는 데 성공했어도 고득점은 기대할 수가 없다. 이 경우엔 큰 자의 몇 배수의 거리인가라는 방식으로 점수를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반해 장타자나 홈런타자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기 위해선 이 작은 자가 종국적으로 땅 위에 떨어지기 전에 어려번 톡톡 타격을 이어가야 했다. 다다익선이었다.


작은 자를 타격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점수 계산 방법이 엄청나게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두 번이면 큰 자가 아니라 작은 자 하나 길이가 거리를 재는 기준이 되었다. 이를 넘어 타격 횟수가 3, 4 ,5... 회로 올라갈 경우엔 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게임의 아주 중요한 규칙이었다. 타격 횟수가 3회는 작은 자의 1/2, 4회는 1/2의 제곱, 5회는 1/2의 세제곱이란 계산 방식이 적용되다 보니 타격 횟수를 늘리면 점수를 얻는데 괴력이 발휘되는 것이었다.

    

이즘 오늘은 자타가 공인하는 자치기 놀이의 달인 문호가 세 번째 단계인 땅콩 타석에 들어섰다. 문호는 오늘도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작은 자를 큰 자로 무려 6회나 가격한 후 자신의 젖 먹던 힘까지 모두 동원하여 아주 멀리 날려 보내는 데 성공했다. 결국 누적 타격 횟수는 자그마치 7회에 도달했다.

    

금융상품 이자를 계산하는 방식 중 복리라는 것이 있다. 이는 땅콩 단계에서 점수를 계산하는 규칙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큰 자로 작은 자를 여러 번 때려내면 ‘한 자’의 계산 단위를 놀라운 수준까지 줄일 수 있었다. 게다가 최후엔 아주 먼 거리까지 날려 보냈으니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린 것이었다.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축구공을 오랜 시간 땅 위에 떨어뜨리지 않고 발이나 머리, 가슴, 기타 다른 부위를 총 동원하여 묘기를 선 보이거나 어린 시절 기억이 아직도 또렷한 유량극단 서커스 단원 중 난쟁이가 우산 위에 불덩어리를 올리고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돌리듯 했다.    

 

당시엔 제대로 된 전자계산기를 구경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문호가 이번에 7번씩이나 작은 자를 가격했기 때문에 작은 자 길이에 1/2의 6 제곱한 값을 곱한 이 자의 계산단위가 되었다. 작은 자 하나의 길이를 64자로 환산을 해야 정확한 셈이 되었다. 그래서 작은 자 470배 수면 3,000자가 무난히 달성되는 것이었다.  

    

둥근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30미터 혹은 50미터 길이로 감긴 부드러운 재질의 줄자는 읍내로 나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자 길의 5배가 되도록 어렵게 구한 삐삐선을 잘라냈다. 이래서 이 삐삐선으로 작은 자가 최종 착지한 지점까지의 거리를 실측하는데 동원했다.

     

공격팀은 일단 3,000자를 외쳤다. 이른바 ‘일단 지르고 보기’에 당당히 나섰다. 만약 실측 결과 공격팀이 외친 3,000자에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문호는 여기가 아웃처리되고 이번 단계에서 더 이상의 공격 기회를 잃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미 합의한 ‘두 배물리기 규칙’에 따라 상대팀이 반사적으로 6,000의 점수를 가져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면 즉시 여기서 승부는 결정되고 경기는 마무리가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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