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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pr 07. 2023

독일어 강대포 선생님(2편 완)

“지난번 독일어 만점 맞은 여러분 선배를 데리고 독일문화원에 근무하는 직원과 같이 제과점에 간 적이 있었어. 결국은 주문한 빵의 양이 많았어. 그즘 문화원 직원이 아무 거리낌 없이 남은 빵을 포장해 달라고 하더군. 독일 사람들은 이렇듯 합리적이고 실용적이지.”     

지금이야 우리나라 사람들도 남은 음식을 포장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포장해 달라고 말을 꺼내는 것부터가 멋쩍던 시절이었다.  

    

“@@김나지움 학생입니다. 지난번 독일어 국가시험에서 만점을 받았습니다.”

우와! 김나지움이라면 수재들만 몰리는 곳인데... 명문학교 학생이군요.”     

독일은 우리나라 중학교 과정을 마칠 즈음엔 진로를 크게 둘로 나누어 결정했다. 장차 대학진학을 원하는 학생은 김나지움이란 우리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한다. 이에 반해 다른 학생들은 대학 진학 대신에 도제 방식에 특화된 직업교육 전문학교들 택한다고 했다. 강 선생 님이 우리의 인문고교를 김나지움으로 소개함에 문화원 직원은 우리 학교를 수재들만 모인다는 교육기관으로 과대평가했다는 뒷 이야기를 덧붙였다.   

  

누구 하나가 빠진 것 같은데...? 추탈영? 맞아 또 도망갔구나. 이 놈 나한테 오라고 전해라. 나중에 자서전을 쓸 때 내게 맞았다는 것을 빠뜨리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맞아보아야 정신 차릴 것 같으니까. 사실 내가 지금은 건강이 좀 좋지 않아서 그런데, 여러분 2년 선배 까지는 저 식수용 사기 물컵으로 이마를 찍곤 했어.”     


오늘도 탈영이는 수업을 듣기 싫어 자신의 개인 책상과 의자를 운동장 쪽 유리창 아래 자리 잡은 제법 높은 콘크리트 턱 안쪽 여유 공간으로 밀어 넣고 수업 땡땡이를 친 것이었다. 빈 의자나 책상이 선생님 눈에 뜨이면 자신이 도망친 사실이 쉽게 탄로 날 것은 뻔했기 때문이었다. 나름 잔머리를 굴린 것이었다. 강 선생님은 교실 안쪽을 한번 휘익 둘러보더니 빈자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이 모자라는 사실을 기가 막히게 찍어냈다. 선생님은 신상필벌이란 원칙을 확실히 지켰다.     

 

, 이 시 누가 읽고 번역해 볼까?”
 독일 출신 철학자 칼 부세의 산 너머란 시였다. 평소 독일어 시간 때면 강 선생님이 자주 찾던 친구 수빈이가 자신 있게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의 요청에 호응했다.     

내가 번역한 것과 똑같네?”
 교실 안은 한바탕 웃음소리가 터졌다.

"산 너머 저 먼 마을에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했으나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다.~~~“는 내용의 명시였다.    

 

복도에 들어서면 이미 분위기가 달라. 3반 저쪽부턴 허구한 날 시끄럽고 이쪽 문과 2개 반은 수업받을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는 거야.” 우리는 이런 선생님의 지적이 그리 싫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법대 갈 성적에 모자라면 사학과나 철학과도 괜찮아...”

향후 대학 진로에 관한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도 가끔 내보였다.      

카이트 하이트가 끝에 오면 이런 것은 무조건 여성명사이지. 게준트하이트 아인잠카이트... 예전 모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고독(아인잠카이트)을 씹는다는 대사를 본 적이 있지...”     

역사는 발전한다는 말보단 변화한다는 말을 쓰는 것이 맞는 거야.”

자인(sein 존재)졸렌(sollen 당위)이냐가 하나의 아주 큰 명제이지

이조 시대 사색당파를 모두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어쩌면 명분에 관한 건전하고 치열한 토론이고 논쟁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대포 선생님이 툭툭 내던지는 말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다.    

 

강 대포 선생님은 자신이 맡은 독일어는 대학 입학시험에 필수 과목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대학교 입시 당락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소외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커리큘럼에 없지만 앞길이 구만리 같은 우리 학생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인문  내지 인성 교육에 제법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당시 하루를 집중 투입해서 익혀 우연히 독일어 과목 반 최고점을 받는데 일등공신이 된 형용사 변화에 관한 지식은 지금 내 머릿속에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강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가끔 던지는 철학적 테마 등 덕분에 인문학적 소양을 우리 친구들 모두는 그 당시 기초를 다진 것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강 대포 선생님이 우리에게 던진 여러 가지 주제에 관한 가르침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우리 고교 동기 중 나 혼자만일까. 당시 독일어 시간에 타블라 라사에 관한 앞서가는 질문을 던졌던 춘호는 어엿한 대학교수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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