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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pr 10. 2023

알러지성 비염과 집중단속기간(1편)     

 "아저씨,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왜 그러지요? 여기 있어요.”
 저와 같이 잠깐 파출소로 가셔야 합니다.”
 내가 본부 자금부에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오늘도 밤늦은 시각까지 야근을 마쳤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빌딩 출입문을 나섰다. 걸어서 대방역 지하보도를 빠져나와 지상으로 우회전하던 중이었다.      


나는 평소 알러지성비염 증세가 좀 심한 편이었다. 그래서 방금 전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찾아 그 아래 흙으로 둘러 싸인 바닥에 무심코 침을 뱉었다. 인근에서 순찰 중이던 의경이 내게 갑자기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그저 가끔 있는 불심검문이려니 했다. 그래서 당당히 주민증을 건넸다.    

  

아저씨, 방금 전 침 뱉으셨지요?”

경범죄처벌법 @@@항 침 뱉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위반 사실을 인정하고 여기에 서명하시지요?”

파출소 안으로 들어선 의경은 내게 범칙금 통고서를 내밀었다. 나는 신분증을 빼앗겼으니 의경의 요구를 그저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닌 밤에 홍두깨’였다. 파출소 안은 매우 소란했다. 일반 전화벨 소리는 물론 무전기로 주고받는 교신 소리가 뒤엉켰다. 나처럼 임의동행에 응한 피의자와 경찰 사이에 실랑이가 곳곳에서 벌어졌다.‘기초생활질서 위반 행위 집중단속 기간이었다. 나는 서명을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이것 여차하면 전과자가 될지도 모르는 신세였다.      


대학 동기 절친 현직 심검사가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 심 검사는 지방 먼 곳인 울산에서 근무 중이었다. 당시엔 휴대폰이 아직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시절이었다. 파출소 내 2인자인 차석이라 불리는 경찰관에게 잠시 양해를 구했다. 인근 노점상에 들러 100원짜리 동전을 충분히 마련했다. 도로가 한편에 자리한 DDD 박스를 찾았다. 수첩을 들추어 심검사를 급히 수소문했다.

     

심 검사 부인과 가까스로 연결이 되었다. 남편은 아직 귀가 전이라 했다. 11시를 넘어서는 늦은 시각임에도 내가 다급하니 계속 연락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차석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였음은 물론 한편으론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잠깐 만 더 기다려주세요.

나는 경범죄처벌법 위반 사실을 인정하는 서명을 여전히 계속 뒤로 미루었다. 파출소 안은 어수선했다. 무전기와 일반 전화기를 동원하여 상급 경찰서로 현재까지 단속 실적을 실 시간으로 보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준수야, 이 늦은 시각에 무슨 일이 있는 거야?”

, 나 사실 집중 단속에 결렸어. 너도 알지만 내가 알러지성 비염이 있잖아? 방금 전 무심코 침을 뱉었는데... 나 좀 어떻게 해주었으면 해서...”     

사실 오늘 사무실에서 별로 좋지 않은 일이 있었어. 그래서 한 잔 마시고 지금 막 들어오는 중이었어. 그런데 준수야 미안하다. 그저 인정하고 들어가라. 우리도 경찰이 교통법규 위반으로 잡으면 그냥 딱지를 끊거든...”     


그래도 어느 정도 기대를 했는데...’

좀 서운했지만 난 심 검사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더 이상 매달릴 입장이 아닌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범칙금 고지서에 서명을 마치고 불 꺼진 썰렁한 하숙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개운하지 못한 한 구석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책꽂이 상단 오른쪽 중간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행정법 교과서를 부랴 부랴 들추었다. 이 경범죄위반 행위에 대한 범칙금의 실체를 확인하고자 했다. 행정벌에 불과한지 아니면 형벌인지가 매우 궁금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이고 이 것 어떡하지. 범칙금은 분명히 행정벌이 아닌 형벌로 판명이 났다. ‘과태료(過怠料)는 행정벌로 분류되어 별 문제가 없을듯했지만 과료(科料)는 엄연히 형벌이었기 때문에 절대로 가볍게 넘길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어린 시절 자주 들었던 호적에 빨간 줄이 올라가는 결코 작지 않은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제 내가 형벌을 받은 적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범죄경력을 들추면 그 죄명과 형벌 유형이 제대로 그 모습을 보여줄 것이 분명해졌다.   

   

혹시 송충이가 솔잎을 먹으러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르는 것이 당시 내 형편이었다. 경제 여건이 해결되면 언제든지 지금의 직장생활을 기꺼이 접고 다시 사법시험 준비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학부와 대학원 시절을 통틀어 오랜 세월 동안 수험생활을 이어갔던 나로선 아직도 사법시험 최종합격이란 꿈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장차 시험에 최종 합격을 위해서 신상에 아무런 하자가 없어야 함에도 이런 아주 꺼림한 사태가 벌어졌으니 나는 난감했다. 혹시 내가 솔잎을 먹으러 숲 속으로 들어가  마침내 내 숙원을 달성했다 가정해 보았다. 3차 시험이나 신원 조회에서 오늘 일어난 이 문제가 결정적인 하자가 되지 않을 가하는 생각에 미쳤다. 내일 아침 이른 시각에 출근은 앞둔 나지만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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