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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pr 28. 2023

봉숭아학당 술자리 모임(1편)

         

“나, 잠깐 집에 들렀다 갈게. 조금 늦는다.”

“어디야?”

“엘리베이터 앞인데, 날씨가 추워 옷 갈아입고 간다.”
 “야, 그러면 어떡해, 늦을 것 같은데”

오늘은 고향 친구 7명이 얼굴을 보기로 한 날이다. 모임 장소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멀지 않은 맛집으로 정했다. 회무침으로 이름난 단골 주점이었다.      


약속시간 10분 전에 우리 아파트 삼총사 일행이 어디쯤 오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다른 친구의 호출이 있었다. 같은 아파트단지 3 총사 중 준호는 늦게서야 코로나를 반갑게 맞이하느라 이번 모임에 불참의사를 이미 오전에 전해 왔다. 수작업으로 명품을 만들고 있는 우성이는 갑자기 일감의 스텝이 엉키는 바람에 부득이 다음 기회에 얼굴을 내밀겠다고 약속 시각에 임박하여 사정을 알려왔다.  전생에 무슨 기이한 인연 덕분인지 같은 아파트 단지 한 울타리 안에 자리를 잡은 우리 3 총사였다. 이번엔 이곳에서 가까운 쪽으로 모임 장소를 정했고 나머지 3명 친구도 이곳 인천 인근이 생활 근거지였다.   

   

나머지 한 친구는 자타가 공인하는 ‘산사나이’인데 서울 강서지역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진구는 평소 승용차를 내팽개치고 BMW를 즐기는 친구였다. 웬만한 곳은 철저히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5킬로미터 내외 거리 정도는 주로 아주 튼튼한 자신의 두 개 다리에 믿고 맡기고 있었다. 각종 검색 툴을 이용하여 대한민국 구석구석까지 거뜬히 찾아갈 수 있는 훌륭한 눈썰미를 자랑했다.   

   

“우선 모둠회 중자와 회무침 3인분, 주시면 됩니다.”

“회무침은 냉동과 생물 중 어느 것으로 드릴까요?”
 “생물로 주세요.”     

수도권에서 상당한 규모의 차량 정비업소를 이끌고 있는 진석이는 밀어닥치는 손님 덕분에 조금 늦은 시각에 도착하겠노라고 이미 자진 신고를 한 뒤였다.

     

“나, 자네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네...”

“나도 마찬가지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장의 성격상 1박 2일 고향 친구 모임에 참석이 원천적으로 어려운 호섭이가 던진 한 마디에 세호도 즉각 응수했다. 세호는 우리 통합동창회 모임에 합류한 지가 2년에 좀 모자랐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죽마고우인 고향 동기가 얼굴을 서로 알아보지 못하게 된 데는 두 친구 모두에게 잘못이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인 10대 초반 시절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두 친구 모두 서로에 관한 관심과 성의 부족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서기 전 최소한 초등학교 졸업 앨범이라도 들추어 보는 것이 예의가 아닌가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세호야, 세주 형이 나보다 입대가 늦었어. 같은 부대에서 만났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내가 형! 형!이라고 몇 번을 불러도 동생 친구가 자신의 선임이라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해했어.”     

이러면서 진석이는 즉석에서 세호 형에게 폰으로 연결했다.

“에이, 친구 형이면 제게도 형님인데, 아직도 무슨 군대 선임이란 말씀을 하세요? 건강하시지요? 시골 가면 형님, 제가 막걸리 한 잔 모시겠습니다.”     

“그럼, 고향 친구 형님인데 제대로 선배 대접을 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지. 아니면 멍석에 말아 내다 버려야지.”

나도 중간중간 한 미디씩 거들었다. 추임새를 끼워 넣었다.

      

“장교 출신 앞에서 이것, 미안한데... 군대시절 분대장인 하사가 탄생하는 세 가지 코스에 관해 내가 이야기할 테니...”

“야, 이제 더 이상 군대 이야기 하지 말자고, 이러면 나 다음에 이 모임에 나오지 않을 거야.”
“사람마다 정치 성향이 다르니까 우리 서로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말자.”

“어이, 이 쪽 두 친구, 진석이가 하던 이야기 계속 들어보자고, 중간에 말을 끊거나 끼어들지 말고...”     

“에이 요 앞 두 놈은 남의 말에 끼어들어 화제를 갑자기 다른 것으로 확 바꾸어버리는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어. 내가 오랜동안 지켜보았지.”     


술좌석은 왁자지껄했고 고상한 말로 ‘백화제방’이었고 리얼하게 말하면 ‘봉숭아학당’에 다름이 아니었다. 바닥을 드러낸 맥주와 소주병을 종업원이 회수해가려 하는 것을 우리는 이미 완곡하게 거절한 바가 있었다. 계산상 착오를 막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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