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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pr 29. 2023

봉숭아학당 술자리 모임(2편)

                      

“얼마 전, 우리 공장에서 큰 불이 났어 . 자칫하면 아주 쪽박을 찰뻔했다니까. 미리 가입해 둔 보험 덕분에 대략 3 ~4천만 원 수준 손해를 보는 것으로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어. 친구들에게 10만 원씩이라도 도와달라고 손을 벌릴 뻔했지. 그랬다면 준수는 10만 원 정도는 보태주었겠지?”     

“이 친구야 내가 아무리 쪼그라든 신세지만 100만 원 정도는 기꺼이 도와줄 수 있어.”

“방화야, 아니면 실화야?”

“손님이 맡겨둔 스타렉스 차량에서 스파크가 일어났어.”

“그럼, 구상권을 행사해야겠네?”

“구상권이 무엇인가 제대로 알고 하는 이야기야?”

“나도 @@ 물산 근무할 때 무려 2억이나 되는 거액을 구상당한 적이 있어.”  

   

오늘 이 술자리에 둘러앉은 고향 찬구간에 오가는 대화의 패러다임은 이제 명확해졌다. 자영업을 이어가는 진석이는 자신의 사업상 애로와 최근 겪은 대형화재란 두 개 주제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내 오른쪽 옆에 연이어 자리를 잡은 호섭이와 진구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아니면 진석이가 주장하는 논조에 딴지를 걸고자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두 중생은 진석이 말 중간에 수시로 끼어들고 끊어냈다.      

이에 반해 나와 세주는 이 두 그룹 간의 대화나 논쟁에 직접 뛰어들지 않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주로 친구들 이야기를 듣는 쪽을 택했다. 내가 이 자리에서 의사봉을 쥔 것도 아니어서 교통정리를 하는 데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다음 5월 18일 청라지구에 있는 내가 잘 아는 청요리 집에서 만나자고. 그날은 내가 한턱 쏠게. 내 지인이 꾸리고 있는데 사업가로 성공했어. 음식 솜씨는 기본이고 자신의 생업에 관해 프로의식과 자부심이 대단한 친구이거든. 청요리 집에선 그래도 자장면이 대표 핵심메뉴라고 하더군. 그날 자장면 먹으러 올 거지?”     

“야 이 사람아, 난 벌써 자장면을 5번이나 먹은 것이나 진배가 없네. 무어 그리 여러 번 다짐을 받으려고 그래?”     


“준수야 오늘 자리 마련 해준 것 고맙다. 배낭 잘 업어간다. 고맙네. 잘 쓸게.”

“그런데 호섭이에겐 부담을 주어서 미안하네. 인천 쪽 메너는 아주 꽝이다. 앞으로 술값을 1/n으로 나누지 않으면 나는 이 모임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야.”  

        

내가 현역 시절 등산메니어 사장이 새로 부임했다. 신임 사장은 기회가 될 때마다 임원 및 점포장들을 이끌고 대대적인 등반행사에 나서던 시절이었다. 나도 이 무렵 아주 큰 용량의 배낭을 무리하여 새로이 장만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이 배낭에 내 손 때를 묻힐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자타가 공인하는 산사나이에게 이를 넘겨주기로 했다. 이 물건의 주인을 제대로 바꾸어 주는 것이 이 물건 본래 쓰임새에 더욱 적합하다는 생각에 미쳤다.    

  

호섭이는 조금 전 화장실에 들를 기회를 빌어 자신의 자리를 내 맞은편에서 오른쪽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카운터에 들러 오늘 이 술자리 비용결제도 마친 뒤였다. 바닥을 드러낸 술병의 숫자는 이미 두 자리를 넘어서고 있었다. 순간 나는 비용을 혼자 부담한 친구 호섭이에게 결코 작지 않은 부채의식이 들었다. 나는 요 근래 고향 동창회 총무 이력 등을 살려 친구 선후배 간 모임에 바람잡이로 자진하여 자주 나섰다. 그럼에도 나 혼자서 당당히 계산대에 나서지 못한 형편에 다른 이들에게 부채의식을 넘어 자괴감마저 들었다. 피치 못할 이유로 현역 시절 대비 많이 쪼그라든 경제적 형편 때문이었다. ‘강남 봉 이구년’이란 중국 한시 가운데 ‘낙화시절 우봉군’이 내 처지가 딱 들어맞았다. 영락한 신세가 되었다.  

   

나는 평소 부모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신세 지는 것을 극히 꺼리는 캐릭터이다. 이는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인정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환경결정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살아가며 크고 작은 모임을 갖게 마련이다. 공식행사는 정해진 식순에 따리 진행되니 그리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을 듯했다. 하지만 각종 친목 모임이나 술자리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참석자 간 많은 대화가 오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각자 말하는 기회와 시간에 편차가 작지 않다는 데 있다. 각자의 개성이나 캐릭터가 다른 것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주로 많이 듣는 쪽과 말하는 쪽으로 갈렸다.

       

본디 모든 사람은 평소 자신의 관심사, 경험,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소재 중심으로 입을 여는 것이 인지상정다. 대화를 독점하고자 하는 특정인이 등장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반작용 결과만도 아니었다. 상대 이야기 중간에 끼어들고 끊어내 가로채고자 하는 것 역시 자신의 의사표시 욕구를 꺼내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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