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오랜 기간 묵힌 나만의 복안이 따로 있었다. 비록 비공식 모임자리이더라도 이 말할 기회와 시간의 편차, 현저한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를 나는 모임 때마다 매번 오랜 기간 고민했다.
모임에서 대화 질서를 바로잡는 의사진행 권한을 가진 ‘사회자 제도 도입’이 이 고민의 결과였다. 각자 자신의 생각을 먼저, 오랜 시간을 빌어 말하고자 하면 옥신각신하거나 때론 말싸움으로 번지고 급기야는 서로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친목 모임 성격상 즐겁고 회포를 풀어야 할 자리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 변질되기 일쑤였다.
이 '사회자제도'를 도입하고 적정하게 운용한다면 특정인이 발언 기회와 시간을 독점하는 폐단은 많이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혹자는 비공식모임에 무슨 사화자제도 도입을 운운하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참석자 간의 대립, 충돌을 피하고 비교적 공평한 발언 기회와 시간을 나누다 보면 이 제도는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가 있는 것이다.
평소 대화 독점 욕구가 많은 사람은 자신이 그런 캐릭터인 줄 모르고 있거나 인정하려들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 일깨우고 말할 기회와 시간상 형평성을 도모하다 보면 의견 충돌, 말다툼 모욕, 명예훼손으로 이어지는 사태는 최소한 막을 수 있다.
즐거워야 할 모임을 마친 후 오히려 참석자 간 관계가 틀어지거나 ‘나는 저 친구 때문에 다음부터 이 모임에 나오지 않겠어’라는 사태가 일어나는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그 호칭이야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거창하게 ‘사회자’가 아니라 ‘총무’ ‘유사’‘초대자’라 이름을 붙여도 아무 문제는 없다.
미리 정해진 회비를 갹출하는 모임이 아닌 경우 비용을 참석자 간 누구에게 어떻게 부담시키느냐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엔 이른바 1/n로 똑같이 나누는 문화가 확고하게 정착되어 있다. ‘일일정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엔 이것이 익숙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오늘 저녁 식대를 호섭이 혼자서 부담한 것을 두고 진구는 즉각 문제 삼았다. ‘매너가 엉망’이라는 말까지 들먹였다. 참석자 간 균등하게 나누어 부담하자는 것이 진구 생각이었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를 말이 있다. 참석자 간 자연스럽게 돌아가며 부담하기로 한 것이 우리 인천 모임의 불문율이 된 지 이미 오래였다. 이번 모임에 새로이 초대받은 세호와 진구도 이 룰을 따르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을듯했다. 진구는, 매번 식대를 1/n로 나누지 않으면 앞으로 자신은 이 모임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까지 한 발 더 나아갔다.
거창하게 멀리 조상이란 말까지 들먹일 필요가 없다. 우리 부모 세대엔 전통적인 친목 모임인 ‘계’에 ‘유사’라는 자리가 있었다. 유사는 정해진 순번에 따라 차례로 맡게 되어 있다. 그래서 당해 유사는 자신이 계 모임을 주관하는 날 비용을 모두 부담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우리 친구들도 이 계모임 유사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모임 때마다 총비용을 균분하여 진구는 1/n몫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초대자’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될 것이다. 이는 인천 모임 비용부담에 관한 기존 룰을 훼손하지 않음은 물론 진구의 평소 소신인 1/n로 부담분을 정하자는 취지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절묘한 방법임에 틀림이 없다.
“진구야, 다음 모임부턴 자네 몫인 1/n을 당일 초대자에게 전해주시게나. 비용을 참석자 간 똑같이 나누자는 자네 의견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임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말은 거두고...”
어제 술자리 모임을 파한 후 내 머릿속에 섬광같이 떠오른 이른바 ‘솔로몬식 해법’이었다.
세간엔 ‘뺄셈의 정치‘가 아닌 ‘덧셈의 정치’를 하라고들 한다. 이는 정치의 세계에서만 타당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크고 작은 모임에 이 솔로몬식 해법을 도입하고 꾸준히 버전 업하면 생각이 좀 다른 이도 모임에 자연스럽게 새로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모임은 참석자가 늘어나는 등 더욱 활성화되고 그 수명은 길어질 거라고 감히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