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 Apr 30. 2023

봉숭아학당 술자리 모임(3편 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오랜 기간 묵힌 나만의 복안이 따로 있었다. 비록 비공식 모임자리이더라도 이 말할 기회와 시간의 편차, 현저한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를 나는 모임 때마다 매번 오랜 기간 고민했다.    

  

모임에서 대화 질서를 바로잡는 의사진행 권한을 가진 ‘사회자 제도 도입’이 이 고민의 결과였다. 각자 자신의 생각을 먼저, 오랜 시간을 빌어 말하고자 하면 옥신각신하거나 때론 말싸움으로 번지고 급기야는 서로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친목 모임 성격상 즐겁고 회포를 풀어야 할 자리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 변질되기 일쑤였다.   

   

이 '사회자제도'를 도입하고 적정하게 운용한다면 특정인이 발언 기회와 시간을 독점하는 폐단은 많이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혹자는 비공식모임에 무슨 사화자제도 도입을 운운하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참석자 간의 대립, 충돌을 피하고 비교적 공평한 발언 기회와 시간을 나누다 보면 이 제도는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가 있는 것이다.      


평소 대화 독점 욕구가 많은 사람은 자신이 그런 캐릭터인 줄 모르고 있거나 인정하려들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 일깨우고 말할 기회와 시간상 형평성을 도모하다 보면 의견 충돌, 말다툼 모욕, 명예훼손으로 이어지는 사태는 최소한 막을 수 있다.     


즐거워야 할 모임을 마친 후 오히려 참석자 간 관계가 틀어지거나 ‘나는 저 친구 때문에 다음부터 이 모임에 나오지 않겠어’라는 사태가 일어나는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그 호칭이야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거창하게 ‘사회자’가 아니라 ‘총무’ ‘유사’‘초대자’라 이름을 붙여도 아무 문제는 없다.  

    

미리 정해진 회비를 갹출하는 모임이 아닌 경우 비용을 참석자 간 누구에게 어떻게 부담시키느냐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엔 이른바 1/n로 똑같이 나누는 문화가 확고하게 정착되어 있다. ‘일일정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엔 이것이 익숙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오늘 저녁 식대를 호섭이 혼자서 부담한 것을 두고 진구는 즉각 문제 삼았다. ‘매너가 엉망’이라는 말까지 들먹였다. 참석자 간 균등하게 나누어 부담하자는 것이 진구 생각이었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를 말이 있다. 참석자 간 자연스럽게 돌아가며 부담하기로 한 것이 우리 인천 모임의 불문율이 된 지 이미 오래였다. 이번 모임에 새로이 초대받은 세호와 진구도 이 룰을 따르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을듯했다.  진구는, 매번 식대를 1/n로 나누지 않으면 앞으로 자신은 이 모임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까지 한 발 더 나아갔다.  

   

거창하게 멀리 조상이란 말까지 들먹일 필요가 없다. 우리 부모 세대엔 전통적인 친목 모임인 ‘계’에 ‘유사’라는 자리가 있었다. 유사는 정해진 순번에 따라 차례로 맡게 되어 있다. 그래서 당해 유사는 자신이 계 모임을 주관하는 날 비용을 모두 부담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우리 친구들도 이 계모임 유사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모임 때마다 총비용을 균분하여 진구는 1/n몫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초대자’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될 것이다. 이는 인천 모임 비용부담에 관한 기존 룰을 훼손하지 않음은 물론 진구의 평소 소신인 1/n로 부담분을 정하자는 취지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절묘한 방법임에 틀림이 없다.      


진구야, 다음 모임부턴 자네 몫인 1/n을 당일 초대자에게 전해주시게나. 비용을 참석자 간 똑같이 나누자는 자네 의견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임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말은 거두고...”     

어제 술자리 모임을 파한 후 내 머릿속에 섬광같이 떠오른 이른바 ‘솔로몬식 해법’이었다.    

 

세간엔 ‘뺄셈의 정치‘가 아닌 ‘덧셈의 정치’를 하라고들 한다. 이는 정치의 세계에서만 타당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크고 작은 모임에 이 솔로몬식 해법을 도입하고 꾸준히 버전 업하면 생각이 좀 다른 이도 모임에 자연스럽게 새로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모임은 참석자가 늘어나는 등 더욱 활성화되고 그 수명은 길어질 거라고 감히 확신한다.

작가의 이전글 봉숭아학당 술자리 모임(2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