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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May 15. 2023

부드러운 카리스마 국어선생님(2편)

        

                   

주로 3학년 국어 현대문 과목을 도맡아 가르치던 백 선생님은 2개 반 밖에 되지 않는 2학년 인문반 문법수업도 책임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랄알타이어의 특징 중 문장구조가 도미적이란 생소한 지식도 얻을 수 있었다. ‘구별표준이란 진정한 의미와 용도도 익히는 계기가 되었다.  백 선생님의 현대문에 관한 실력과 수업에 관한 남다른 열정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3학년 현대문 과목 6개 반 수업을 모두 책임지고 있는 와중에 국어문법이란 수업까지 2학년 인문반에 한해 특별히 또 추가로 감당해야만 했다.    

 

민재완! 무슨 생각하고 있지? 지금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는 거야?”

선생님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훈육 방식에서 다른 선생님들과는 뚜렷하게 차별화되어 있었다.  우선 선생님은 우리 학생들에게 한 번이라도 손찌검 등 일체의 체벌에 나서지 않았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고 다른 분야에 더욱 많은 관심이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그룹으로 이미 분류된 친구들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오늘도 선생님은 수업에 방해가 되는 친구를 호출한 후 그 특유의 엄청난 위력이 있는 레이저 불빛을 방불케 하는 눈빛을 한데 모아 날려버렸다. 그래서 문제가 된 친구를 더 이상 꼼작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그 흔한 유형인 따귀나 뺨을 때리거나 몽둥이로 종아리를 갈기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수업시간 중 딴전을 피는 학생에게 분필 토막이나 나아가 칠판지우개를 집어던지는 일도 전혀 없었다. 그저 문제 학생을 호출하고 잘못을 지적하면서 특유의 레이저 눈빛을 날리는 것 하나만으로 순식간에 학생을 제압하는 대단한 능력을 매번 발휘했다. 버럭 화를 내거나 얼굴 표정을 갑자기 바꾸지 않았다. 절제되고 흥분되지 않은 낮은 목소리 톤도 계속 유지했다. 참으로 기이한 능력을 자랑했다. 이러니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유한 선생님이란 이유 말고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즘 백 선생님처럼 나도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은 쓸데없는 욕심이 아닌지 속으로 잠시 되뇌어 보았다.

           

이번 국어 현대문 월말고사에선 호섭이가 94점으로 반 최고득점자가 되었다면서...?”

나도 국어 현대문이 제일 자신 있는 과목이라 지금껏 생각했는데, 이번 시험이 무지하게 어렵던데... 내가 실력이 모자라거나 공부가 부족했나?”

94점이란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할 높은 점수였다. 나로선 ‘넘사벽’ 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호섭이가 이렇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금세 밝혀졌다.  

   

우리 1년 선배들과 학력을 비교하기 위해 작년에 치렀던 시험 문제를 단 하나의 문항도 바꾸지 않고 이번 시험에서 그대로 다시 출제했고 호섭이는 이런 정보를 어느 곳에선가 사전에 입수해서 정답을 달달 암기했던 덕분이었다. 그러니 최고득점자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럼에도 호섭이는 100점 만점을 받아내지는 못했다. 장외에서 이런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여 시험을 치른 호섭이의 행태를 통상 부정행위로 보기는 어려울 듯했다. 이것도 남다른 정보수집능력에 따른 결과로 보아도 전혀 문제가 없었으나 좀 개운치는 않았다.

      

내 주특기 과목이 국어인데 3학년 올라와서 보니 생각보다 내가 기대한 점수를 받을 수가 없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도 제대로 알 수가 없으니...?”

오늘은 내 옆자리 짝꿍에게 소연 한마디를 던졌다. 돌이켜보니 1, 2학년 시절엔 특정 참고서나 문제집을 그대로 카피하여 실제 시험 문제에 올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고득점이 비교적 수월했다. 하지만 3학년이 되고 보니 그런 거저먹는 형편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지문 전체의 흐름과 핵심을 파악하지 않고는 풀어낼 수 없는 비교 · 종합 응용문제의 비중이 높아졌고 때론 교과서 밖의 지문이 등장했느니 고득점이 쉽지 않은 구조로 바뀐 것이었다.   

   

우리 현대문 과목을 책임진 백 선생님은 교과서 지문을 나누어 설명하되 자신만의 독특한 도해식방법을 동원했다. 나는 이 칠판 판서 진도를 따라잡기도 항상 버거웠다. 왜 이런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지 때론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이 도해식 수업엔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글의 단계인 기승전결을 금세 파악하는데 암청난 위력을 발휘했고 결국은 필자가 종국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찾아내는데 절대적인 도움을 주었다. 나는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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