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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May 22. 2023

에이, 또 한 번 낚였네

의사의 과잉진료


                       

예 지방종입니다. 지방종으로 밝혀졌어요. 이 수술 상처만 아물면 더 이상 치료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최근 나는 왼쪽 팔목이 구부러지는 선에서 위쪽 약 10센티미터 떨어진 곳 핏줄이 제법 도드라진 것을 발견했다. 혈관 주삿바늘을 여러면 찌른 흔적처럼 문제 부위가 제법 부풀어 올랐다.   

   

나는 내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가 보이면 뒤로 미루지 않고 속전속결로 해법을 찾는 것이 어느덧 몸에 배었다. 지체 없이 사무실 근처 준대형 병원을 찾아 나섰다. 동네 개인 병원은 좀 미덥지가 못했다. 그렇다고 이 정도 때문에 대학병원 문을 두드리는 는 것은 과잉대처로 보였고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싫었다.    

  

연차휴가는 물론 1년마다 6일간 주어지는 체력단련 휴가도 제대로 못다 쓰는 것이 영업직원의 처지였다. 그래서 토요일에도 수술이 가능하다는 주치의 말에 반색했다. ‘불감청인언정 고소원이었다.     

주치의는 내게도 모든 수술이 예정된 환자에게 그러듯이 정해진 매뉴얼대로 설명을 이어갔다.


전신마취와 12일간의 입원이 필요합니다. 별일이 없으면 여기서 마무리가 될 수 있지만 만약 혹시 그렇지 않을 경우엔 대학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나름 자상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거치는 수박 겉핥기식 설명을 새겨들은 후 나는 관련 서류 여러 군데 여백에 이름을 적어 넣고 서명까지 마쳤다.   

   

별로 대단한 증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초음파, 전신마취, 게다가 12일간 입원이 필요하다니 혹시 과잉진료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영업맨의 여건 상 내가 사는 곳에서 병원이 멀지 않은 데다 토요일에도 수술이 가능한 점에 더해 준 종합병원급에 대한 신인도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일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어이, 준수 너 정말 바보 아니야? 그까짓 지방종으로 12일 전신마취 수술을 받았다고? 그냥 떼어내면 간단히 해결되는 것인데...”

고교동기 절친 내과전문의 주호가 내 자문에 보내온 답변이었다. 병원 비용도 일백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종래부터 나는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을 여러 번 경험한 바 있다. 15여 년 전 어머니가 낙상을 하여 대학병원 정형외과에 입원을 했다. 척추수술을 해야 했다. 인공관절을 몸속에 심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인공관절을 외부업자로부터 조달하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이 인공관절 품질과 효능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 그 적정성과 신뢰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 때문에 또 다른 고교동기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시원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이른바 가짜 불량 인공뼈소동이 벌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어머니 수술은 어디서 했어?”

“@@대학 부속 의료원에서 받았어.”

그럼 인공 뼈에 관한 적정성 논란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야. 전혀 문제없어.”

대학병원이니 그저 믿으라는 것이 요지였다. 

    

증세가 별로 심하지 않은 단순 감기 환자에게 무조건 혈관주사기를 들이대는 내과의사의 과잉진료 해당여부를 묻는 내 질문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혈관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거절하면 되는 것을...?”

사실 의사의 처방에 따른 치료, 처치, 투약, 수술 등을 환자가 거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민단체나 병원을 감독하는 정부부처에 민원도 불사하겠다는 내 의견에도 친구는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향후 해를 더할수록 병원을 찾을 일이 점차 늘어날 것은 뻔한 이치였다. 정기 종합 건강검진은 물론 작은 증세나 질환을 이유로 치료나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더 잦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내 주위 친구 친척 친지들이 진료과목마다 골고루 포진되어 있지 못한 걸 늘 아쉬워했다. 대학 병원이나 준대형 병원은 물론 작은 동네병원을 찾아 의사와 얼굴을 맞대더라도  짧은 진료 시간 때문에 내가 궁금한 점을 상세하게 부담 없이 물어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러니 증세나 질환에 관한 원인과 대처방안에 관해 넉넉한 시간을 부여받고 자문을 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은 내 인맥의 폭과 질의 문제로 귀착되었다. 내가 이른바 엘리트 집단에 진입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큰 부담 없이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전문의가 진료과목마다 분산되어 있는 것 가장 이상적인 구도였다.   

  

내가 수술을 마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 @@ 병원은 별로 우호적인지 않은 일로 매스컴을 탔다. 해당 주치의가 아닌 병원 직원의 대리 수술이 적발되었다. 내가 저런 병원에서 지방종 제거 수술을 받았으니, ‘이번에도 또 한 번 낚였다라는 자괴감에 빠졌다.  

   

수도권에서 아주 거리가 먼 시골 한 구석에 사는 할머니가 왼쪽 다리 관절이 불편해서 수도권 대형 관절 전문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병원 측은 아무런 이상이 없는 정상적인 오른쪽 다리부터 수술을 권유했다. 의료상식이 바닥인 할머니는 결국 이에 응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이를 강행하는 천인공로할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는 주변 지인에게 들은 적이 있다. 과잉진료 행태를 고발하는 차원에서 일정하게 부풀리고 각색을 했을 가능성을 전혀 부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런 세간에 도는 이야기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럼에도 내가 지난번 12일 지방종 제거수술에 응한 것은 병원 측의 과잉진료의 덫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여전히 떨칠 수가 없었다. 다른 업종 종사자와 달랐다. 각종 소비재의 충동구매 권유보다 훨씬 파급력이 컸다. 사람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과잉진료에 일 가능성은 월등히 높았다. 설령 의구심이 있더라도 과잉진료 행위를 입증하여 보상받을 별 뾰족한 구제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정체가 무엇인가는 결국 그곳을 열고 조직검사 결과를 마쳐야 밝혀지는 것이야.”

의사 앞에서 환자들은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것을 생각하면 나도 법대교수 보단 의사가 되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     

내 고교동기 내과 전문의와 대학원 시절 민법교수가 각각 입밖에 낸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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