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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May 24. 2023

보라색 비눗갑과 상아결재인(1편)

어라, 어디 갔지?”

내가 늘 애지중지하던 보라색 비눗갑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하숙집 마당 세면장 바닥과 내 책상 서랍을 뒤졌으나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혹시 최근에 다녀온 공중목욕탕에 따로 떼어 놓고 왔는지 그 행방이 묘연했다. 그럼에도 금세 어디선가 나야 나라고 외치며 자신의 존재를 주인장인 내게 알려올 것만 같았다.

     

나는 시골에서 중학교까지 마친 후 고교 이후 오랜 기간 객지생활을 이어갔다. 이 기간 동안 자취, 하숙, 입주 알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왔다. 생활근거지도 20여 군데를 전전했다.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자잘한 생활용품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때론 새것으로 바꾸기도 했다. 개인 휴지통 등은 수차례에 걸쳐 새것으로 바꾸었으나 이 보라색 비눗갑만은 나의 분신처럼 오랜 기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초등시절 각자 개인 취향을 묻는 단골 질문 항목이 있었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색상이 무엇인가가 그것이었다. 나의 선택에 관해 친구들과 달리 10여 년 이상 선배들로부터 촌스럽다는 평가를 늘 받아왔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색상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 즈음까지 나의 최애 색상은 그대로 노랑색’이었다. 이는 어린이 집 또는 유치원 아이들 복장에서 쉽게 볼 수 있었고 개나리꽃이나 내 본적지인 300번지 초가집 뒤란 울타리 한쪽을 책임지고 있던 골담초 역시 이 색상을 자랑했다.      


이런 내 취향은 고등학교에 발을 들여놓은 후 어떤 이유인지 바뀌었다. 언제라고 정확히 꼭 집어 밝힐 수는 없다. ‘노랑색’에서 보라색으로 갈아탄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자신의 캐릭터나 성향 정체성은 바뀌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래, 병주군 자네 이번 발표 잘 들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개설(改說)할 건 아니지?”

내 전공인 법학에선 특정 논점에 관해 학설과 판례가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것은 병가지 상사였다. 특히 형법학에선 학설의 대립이 유난히 많았다. 오늘 대학원 석사과정 세미나에서 후배 병주가 주제 발표를 마치고 담당 가족법 교수는 웃으면서 한 마디 보탰다. 종래 별로 빛을 보지 못하던 소수설이 다수설을 넘어 통설이 되고 판례로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었다.

   

좋아하는 색상이 무엇인가는 무어 대단한 담론은 아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상을 노랑에서 보라로 바꾸었으니 어쩌면 개설을 한셈이었다. 그 이후론 나는 내 의견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 보라색이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상의 자리를 확고부동하게 지키고 있다. 대학시절 소개팅이나 미팅 자리에서 상대로 정해진 여학생으로부터 받게 되는 질문 중 하나가 가장 좋아하는 색상이 무엇인지였다. 그때까지 노랑을 고집했다면 좀 수준에 미달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보라색으로 바꾸었으니 다행이었다. 디른 사람에게 최소한 무시당할 이유는 없었다. 노랑에서 보라로 갈아 탄 다음 나는 주위로부터 촌스럽다는 평에서 세련되었다거나 고상하다는 칭찬을 받게되었다. 갈아탄 것은 이른바 탁월한 선택이었다.      


내가 보라색 비눗갑을 잃어버린 것이 20대 초반이었고 결혼 전이니 당연히 내게 2세가 달릴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 보라색 비눗갑 분실이 내겐 자식을 잃은 기분이라며 나는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영업점 발령을 축하하는 선물로 무얼 원하지요?”

상아 결재인 하나 새겨주면 고맙지요.”

그 이후 30대 초반에 나는 영원한 반쪽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혼식을 코 앞에 두고 나는 예비 배우자 직장과 같은 권역으로 전보발령을 받았다.  

    

개인서명이나 태블릿 PC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금융기관 업무처리가 이루어지는 지금과 전혀 달랐다. 금융기관 영업점 근무직원에게 결재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압도적이었다. 입출금 전표, 통장, 각종 문서, 제 양식과 장부 결재란마다 이 등록 실인 날인이 꼭 필요했다.  


특히 초임책임자인 영업점 총괄대리는 ‘찍돌이’라는 별칭에서 보듯 결재인의 사용빈도는 엄청났다. 그래서 1~ 2년마다 결재인 인영 부분이 마모되어 아예 결재인을 새로 새기거나 기존 결재인 중 인영부분만을 잘라내고 개각(改刻)’을 해야 할 정도였다. 대형 거점 점포의 경우 입출금전표 하루 건수가 3,000매를 훌쩍 넘어섰으니 이는 충분히 짐작이 가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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