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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May 28. 2023

연고자금과 정도영업(1편)

         

“정 차장이 자리를 비웠네요. 제가 대신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준수 아니야?”

그래 송 부장, 우리 지난주 금요일 저녁에 고등학교 동창모임에서 만났잖아? 나 이런 일 하고 있어.”

그랬구나, 알았어 앞으로 혹시 내가 도와줄 수 있는지 알아볼게.”     

지점장이 지난달에 유치한 50억 단기자금과 관련 뒷 마무리를 위해 나는 거래처 입구를 들어섰다. 입출금 거래를 정리한 통장을 들고 거래 전표 인감을 보완하려 나는 여의도 가장자리 한 곳에 자리한  @@공사 자금부로 들어섰다. 순간 전혀 예기치 않은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지난주 고교동창 모임에 오랜만에 얼굴을 보인 적이 있는 송 부장을 극적으로 이곳에서 거래법인 자금담당책임자로 다시 만난 것이었다. 굴지의 금융기관 영업점에 근무 중인 최준수란 내 이름이 박힌 명함을 고교 동기 송 부장에게 정식으로 건넸다. 자나 깨나 자금 유치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는 금융기관 영업직원이란 어느 곳을 가나 절대로 의 지위에 오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법인 영업 활동을 자조적으로 앵벌이내지 통장 심부름이라 낮추어 불렀다. 어느 곳이든 운용할 여유 자금이 있는 곳이면 한숨에 달려가 거래를 해달라고 매달리는 것이 영업 첫걸음이었다. 나는 고교동기 송 부장에게 그저 통장 심부름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 불과하니 결코 자랑스러운 입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송 부장이 끈적끈적한 고교동기 우정 때문에 나를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말에 무척 고무되었다.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이란 결국 우리 회사에 많은 자금을 운용하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송 부장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이 공사는 우리 지점장의 간헐적인 거래처에서 이제 나의 지속적인 연고고객이자 주요 거래처로 버전 업되었다. 이 거래처는 가끔 일어나는 자금 조달과 운용 중 미스매칭되는 여유자금을 운용하는 이었다. 그래서 장기간 머무르는 기간물이 아닌 일시자금 운용이 대세였다.  

    

송 부장을 만난 이후 최근엔 또 하나의 기록적인 일이 일어났다. 6개월 이상 기간물로 50억이란 거액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송 부장 덕분에 우리 점포에서 내 존재가 좀 업그레이드되는듯한 분위기마저 감지되었다. 이제 내가 처음이 @@공사 통장심부름을 시작하던 당시 지점장은 다른 곳으로 전보되었다.


사실 MMF 등 일시자금은 수탁고 외형을 늘리는 데는 유용하였지만 수익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여유자금 운용 규모가 아주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간물 첫 거래가 성사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이엔 송 부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은 물론이었다.   

  

무릇 금융기관 점포장 모두는 실적 평가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배인인 점포장 자리를 오랜 기간 지키기 위해선 평가부문의 총합인 종합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계속 받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중 핵심 평가항목은 수익성 부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외형 평가가 때론 뜻밖의 결정적인 돌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었다.      


금융기관을 거래하는 중대형 법인고객은 이런 사정을 를 이미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점포장 평가에서 이런 외형의 중요성을 악용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 수익성에선 별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외형 평가에서 일정한 수준에 미달될 경우엔 점포장의 진퇴를 결정할 수 있었다.  

    

이를 악용하여 일시 자금을 운용하여 주는 대가로 골프라운딩 주선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일시 자금에서 발생하는 수익보다 훨씬 큰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점포장 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때론 이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점포장 들은 이 외형을 맞추기 위해 기존 거래처는 물론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자금유치를 위해 늘 동분서주했다. 이러다 보니 비록 일시자금이지만 이를 특정 시점에 얼마나 조달할 수 있느냐가 점포장의 역량 평가의 중요한 잣대 중 하나였다. 고교 동기 송 부장 덕분에 나도 이제 거액 일시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연고 고객 한 군데가 늘어난 셈이었다.   

  

“송 부장, 이번에 또 연말 수탁고 증대 캠페인이 벌어졌어.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글쎄. 장담은 할 수가 없어. 우리 같은 공기업은 예산이나 정부지원금 등 여유분은 연말에 일단 정부에 반납을 했다 새해에 다시 받는 시스템이라서 어쩌면 최점장에게 최근 넣어준 그 자금도 회수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이 연고법인이 처음 거래되던 점포를 떠나 나는 최근 인근 점포장 자리에 새로이 올랐다. 이런 형편이니 이번 수탁고 증대 캠페인은 어쩌면 아예 접어야 할지도 몰랐다. 이번 캠페인에는 점포별 포상금도 걸려 있었다. 포상금만을 받을 목적으로 영업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실적도 거양하고 포상금을 받아 영업활동에 재투자하게 되면 이는 일거양득이었다.


몇 곳 되지 않는 연고고객 중 거액 단기자금을 도와달라고 큰 부담 없이 부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공사였다. 성공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던 차에 이런 형편이니 나는 크게 낙담을 했다. 이번 캠페인을 포기를 하면 포상권에서 멀어질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평가그룹 중 최하위권에 랭크되는 최악의 상황은 면하고 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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