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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Jun 05. 2023

다시 만나지 못할 천사(1편)

                      

오른쪽 차선으로 붙여 세우세요. 아니. 무어 그리 말이 많아요? 제가 이야기는 하는대로 운행하면 되지...”     

오늘도 거래처 고객 저녁접대를 하고 대리운전을 이용하여 귀가하던 중이었다. 내 하얀색 아반떼 애마 핸들을 잡은 대리기사는 내가 원하는 코스나 방식으로 운행하기를 계속해서 거부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갑'의 지위에 오를 수 없는 것이 금융기관 영업직원의 숙명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경우가 좀 달랐다. 내가 적지 않은 비용으로 대가를 지불하기로 했으니 대리운전자는 내 의견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 나도 남에게 어느새 갑질을 하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운전자는 사사건건 내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 편도 25킬로미터의 퇴근길 코스 중 이제 5킬로미터 주행거리만을 남겨놓았다. 속으로 ’ 릴랙스‘를 외치며 자제를 해야 했으나 나는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오늘은 알코올 도수가 비교적 낮은 주종만을 그것도 띄엄띄엄 여러 번 인터벌을 두고 술 마시는 속도를 조절했다. 게다가 내 보금자리가 코 앞에 보였으니 내가 이제 이 대리 기사로부터 핸들을 넘겨받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름 이까지 것 정도야' 자신이 있었다. 이윽고 @@사거리 빨간색 신호등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주행하던 같은 차선에선 승용차 두 대만이 내 앞자리를 차지하고 어서 주행 신호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들보다 늦게서야 자동차 운전면허를 손에 쥐었지만 나는 이제 초보운전 딱지를 뗀 지 이미 10여 년을 넘어서고 있었으니 자칭 베테랑 운전자로 자부하고 있던 터였다.     


빨간색 신호등을 인지하고 평소와 마찬기지로 브레이크 페달을 두세 번으로 나누어 지그시 밟았다. 그럼에도 내 생각과 다른 결과가 얼어났다. 내가 원하는 만큼 앞차와 안전거리는 확보되지 않았고 내 차량의 앞 범퍼는 피해자의 뒤 범퍼에 살짝 닿았다. 부딪쳤다기보단 닿았다는 것이 훨씬 적확한 표현이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아주 미미할 것임에도 내 마음대로 몸은 움직여주질 않았던 것이었다.     

 

에이, 아저씨 제 차를 받으셨네요? 이쪽 길가로 차 좀 세우세요. 술을 드셨으면 대리운전을 해야지요. 신분증 좀 주세요.”     

정지신호를 제 때 알아차리고 급정거가 아닌 브레이크 페달을 나누어서 적정하게 조작했다. 그러니 앞차와 안전 거리는 제대로 확보되었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순간이었다. 방금 전 내가 대리운전자에게 유세를 부리던 입장이 부메랑이 되어 그대로 금세 내게 돌아왔다.  

   

, 이것 큰일 났네.’

순간 나는 아찔했다. 앞으로 벌어질 별의별 생각으로 머릿속이 몹시 복잡해졌다. 음주운전이 적발되어 자동차 운전면허가 취소되면 외부 영업이 전혀 불가능해질 것이고  이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면 당장 밥줄이 떨어질 신세였다. 아직도 삐약이에 불과한 두 아들은 어찌 감당할 것이고...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이제껏 ‘죽기 살기'로 살아남기 위해 올인했던 직장생활도 어쩌면 여기서 마감을 할 수 있으니 겁이 덜컥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아마도 이번엔 하늘이 나는 돕기로 작정하고 나선 듯했다. 내 신분증을 요구했던 앞 차량 운전자는 이름과 주민번호 연락처 등 메모를 마친 후 내게 즉시 다시 돌려주었다.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이 사람은 현장에서 경찰을 호출하거나 아니면 내게 가까운 파출소로 동행을 요구할 것이 정해진 수순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천사는 내가 우려한 후속 조치를 이어가지 않았다. 일단 이 정도면 나는 목숨을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좀 까칠하거나 못된 사람이었다면 내가 음주운전을 했다는 것을 빌미로 이른바 한 건을 노렸을지도 몰랐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금품을 요구하는 구도도 머릿속엔 충분히 상상이 가능했다.      


, 그럼 오늘은 이만 들어가시고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일단 엄청난 고비를 넘기는 순간이었다. 가벼운 단순 접촉사고였으니 상대방 차량이 망가지거나 피해자가 몸이 다치는 물적 인적 피해는 거의 없을듯했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내가 가입한 자동차 종합보험에서 모두 해결이 가능할 것이었다. 하지만 음주운전을 문제 삼는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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