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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Jun 06. 2023

다시 만나지 못할 천사(2편 완)


비교적 이른 시각에 보금자리로 들어선 나는 향후 이 사건의 대처 방안에 관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우선 두 아들을 불러 모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단단히 당부를 했다.      


아빠, 오늘 저녁 식사만 마치고 들어왔고 술은 마시지 않은 거다. 혹시 어디서 전화가 걸려오거나 누가 묻거든 그렇게 대답해야 되는 거야, 알았지?”           

나는 밤새 피해자가 혹시 무리한 요구를 해올 것이 염려되었다. 그래서 휴대폰 전원을 아예 꺼버렸다. 오늘 밤은 일단 이렇게 넘기고 내일부터 다시 좋은 대처방안을 찾기로 했다.    

 

우리 아빠 어제 술은 마시지 않고 일찍 집에 들어왔다고 하랬어요.”     

나는 기겁을 했다. 이제 겨우 초등 2학년 생에 불과한 작은 아들은 아빠의 부탁을 깍듯이 받들기로 작정을 했다. 그래서 전화기가 올려진 탁자 위 쪽 벽에 연필로 꼭꼭 눌러쓴 삐뚤 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써 붙여 놓은 것이 내 눈에 쉽게 들어왔다. 누가 전화로 물어오면 대답할 스크립트를 혹시 잊을까 보아 메모를 해 둔 것이었다. 외부에서 그 누구에게 전화라도 걸려오면 아빠가 시킨 대로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해 놓은 것이  분명했다.

     

참 내가 어린아이에게 이런 거짓말을 시키다니 부끄럽고 조금은 자괴감마저 들었다. 수사물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지켜볼 수 있었다. 진 범인을 추척하여 체포하고자 할 때 사건 현장에 있었던 어린아이에게 정황을 묻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때론 어린아이의 증언이 인 검거에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했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듣거나 목격한 사실에 관해선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착안한 수사기법이었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본 대로 들은 대로 거짓과 꾸밈없이 사실대로 대답할 가능성이 성인의 그것 대비 월등히 높은 것이었다. 이번 경미한 접촉사고 건과 관련하여 내가 작은 아들에게 거짓 진술을 종용한 자체가 분명 정도는 아니었다. 순진무구한 동심에 비우호적인 영향을 주는 잘못된 행태였다.  

   

사장님, 핸드폰 전원을 꺼 놓으셨더라고요? 어제 제 차를 살펴보았는데 뒤 범퍼 등에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앞으로 술을 드시면 대리운전을 이용하세요. 그럼 이만...”     


피해자는 이런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십 년 감수했다. 이제야 겨우 안도의 한 숨을 내 쉴 수 있었다. 이번엔 나는 운이 억세게 좋은 사람이었다. 접촉사고 피해자는 말 그대로 천사였다. 이런 사람을 만난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피해자가 물적 인적 사고 접수만 했더라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종합보험으로 깔끔히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그만 사심이 발동되어 음주운전 사실을 물고 늘어지며 상당한 규모 금전을 요구하거나 아니면 운전면허 취소 내지 정치처분이라는  수순을 밟았을 것도 예상이 충분히 가능했다.


 피해자 몸에 전혀 문제가 없음에도 병원을 찾아 드러눕고 사고 련 합의에 좀처럼 나서지 않는 이른바 ‘나이롱환자’도 널려있는 것이 아직 현실이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며 이러 천사를 다시 만나기란 쉽지 않을 듯했다.

  

이번에 내가 이런 천사를 만난 것은 조상님 은공이 아닌가도 생각해 보았다. 아직 전혀 때가 묻지 않아 거짓말이라곤 일체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우리 작은 아들도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꼬마천사’의 반열에 올려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내게 배정된 대리 기사가 비록 내 뜻을 따르지 않았더라도 나는 자제를 했어야 했다. 화풀이를 하거나 객기를 부리지 말았어야 했다. 그 이후 나는 맥주 한잔이라도 입에 댈 경우엔 자동차 핸들을 잡을 생각을 아예 접는 것으로 굳어졌다.

    

나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천사’라는 칭찬을 받은 기억이 전혀 없었다. 앞으로 다가올 앞날엔 혹시 그런 칭찬을 받을 기회가 오길 바라며 세상사에  좀 너그러워져야겠다는 각오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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