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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ug 06. 2023

액땜 기회에 만난 좋은 사람들(1편)

                 

우리는 이제 문을 곧 닫고 퇴근 준비 중인데, 오늘 중으로 수리가 어려울 것 같네.”

일단 보험회사를 통해 견인차를 불렀지. 그럼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H자동차 지정 정비소를 찾아 사정 이야기를 하고 부탁을 해보아야겠어. 큰일 날뻔했어 그저 이만하기 다행이지.” 

 방금 전 나는 대규모 차량 정비소를 이끌고 있는 고향절친  우사장과 통화를 마쳤다.

    

오늘은 내 애마 하얀색 아반떼가 또 한 번 말썽을 부렸다. 말 그대로 주행 중 완전히 퍼져버렸다. 핸들 너머 한가운데 자리한 계기판에 각종 이상 신호가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왔다. 평소 멀쩡하게 차주의 분부를 충직하게 받들던 내 애마는 갑자기 배신자로 돌아섰다. 우선 핸들이 뻑뻑해져 좌우로 돌지 않았다. 편도 3차선 국도변 가장자리 약간 비탈진 곳에 아예 멈추어 섰다. 꼼짝 달짝을 하지 않았다. 참으로 만만치 않은 사태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전직 회사 절친 동료가 최근 자신이 원하던 조건이 충족된 일자리를 찾았다고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시간이 애매하여 라면으로 간식을 갈음하고 최종목적지인 신도림동 인근 음식점으로 부지런히 달려가던 중이었다.

     

훈련 상황이 아닌 실제상황이었다. 이 심각한 사태가 발생한 시각은 정확히 오후 1723분이었다. 2년 전 발전기 고장으로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바로 조금 전까지도 어떤 작은 전조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시에 갑자기 차량 엔진 가동이 멈추어 섰다. 당장 내일 이른 새벽 출근이 가장 크게 우려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오늘 중으로 정비를 마쳐 정상적인 운행이 가능한 상태로 돌려야 했다. 정말 절박한 상황이 닥친 것이었다.    

  

주식시장에서 트레이딩 시 현물이든 파생상품이든 주식을 처분하거나 포지션을 청산하지 않고 다음 영업일을 맞이하면 데이트레이더와 달리 오버 나이트 리스크가 따르게 마련이다. 이에 딱 맞는 형국이 지금 내 코 앞에 벌어진 것이었다. 만약 오늘 중으로 내 애마를 온전한 상태로 돌리지 못한다면 결코 만만치 않은 비용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 뻔했다. 정비소에 맡긴 후 내 보금자리를 오가야 하는 교통비, 시간 등 손실이 너무나 클 듯했다. 오늘 중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임에 틀림이 없었다.    

  

정말 정신을 바짝 차려야했다. 우선 보험회사에 견인차 출동을 요청한 다음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에 자리한 H자동차 지정 정비소를 부리나케 수소문하여 긴박한 사정을 알리고 오늘 중으로 정비를 해줄 것을 간절하게 호소했다.     


일단은 차량을 견인하여 입고해야지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이 나온다는 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퇴근 시간대에 닥친 상황이다 보니 교통정체가 말이 아니었다. 한 여름 낮 시간대이라서 우선 시야는 확보되었다. 트렁크 문을 활짝 들어 올렸다. 그다음 오래전에 마련했던 안전 삼각대를 차량 후미로부터 약 50미터 떨어진 곳에 급한 대로 세우는데 겨우 성공했다.    

 

사고 현장이 약간 비탈진 언덕배기였다. 그러니 차량이 뒤쪽으로 굴러 내릴 위험도 상존했다. 그나마 편도 3차선 국도 중 가장 바깥 차선에 멈춘 것이 다행이었다. 계속 밀려드는 차량 행렬을 향해 수신호로 긴급을 알리고 내 차를 피해 차선을 바꾸어 운행할 것으로 반복해서 유도했다. 매년 7월 말부터 8월 초는 휴가 시즌 피크 타임인 것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더위도 절정이다 보니 숨이 턱턱 막혔다. 한 손으론 수신호를 계속 이어갔고 다른 손으론 흘러내리는 얼굴의 비지땀을 훔쳐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견인하던 다른 차량을 목적지에 내려주고 출발했습니다. 워낙 막히는 구간이어서 평소와 다른 주행코스로 이동 중입니다.”     

중간에 내가 독촉차 전화연결에 성공한 견인차 사장의 답신이 왔다. 한시가 급한 형편이었다. 이런 긴급한 상황이 닥칠 땐 주변 교통 상황이 결코 내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30여 분이 지나서야 내 애마를 견인차에 올릴 수 있었다.      


대부분 정비소는 오후 6시 정각이면 셔터를 내리고 직원들이 칼퇴근에 나섭니다. 게다가 자동차 부품 가게도 퇴근 시각은 같지만, 이곳은 530분부터 아예 전화 수신 거부 모드에 돌입합니다. 부품 배달에 따른 이동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래서 때론 부품사 사장은 자신이 직접 휴대폰으로 주문받아 배달에 나서기도 하지요. 사장님 차량은 배터리가 아닌 발전기에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견인차를 운행하는 사장의 친절하고 자상한 안내에 나는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3.5킬로미터란 결코 길지 않은 주행을 마치자 지정 정비소가 시야에 잡혔다. 고장 차량의 도착을 한시라도 일찍 알리려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으나 허사였다. 정비소의 업무 시간 종료를 알리는 AI 멘트만이 반복해서 들려왔다. 오늘 중으로 정비를 마치려던 내 야심 찬 계획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정비소 건물 셔터는 반쯤만 내려져 있고 저 안쪽에 정비소 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시네요.”

견인차 사장의 시야는 나보다 훨씬 넓었고 날카로웠다.      

“아이고 오시는데 오래 걸렸네요. 저희 가게는 오늘 마쳤고요 자, 이 쪽 맞은편 정비소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정 정비소 사장(A)이 이렇게 안내를 했다. 그래서 아예 오늘 중으로 정비가 불가능하리라는 불안에서 일단 벗어나는 듯했지만 나는 솔직히 조금 미덥지가 못했다. 내가 처음 찾고자 했던 지정 정비소에 비하여 이곳은 브랜드 가치, 정비시설, 정비인력 등에서 훨씬 모자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선입견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권유받은 곳의 장비나 인력은 지정 정비소의 그것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사장님, 오늘 부품 주문은 몇 시까지 받고 있나요.” 7시까지입니다,”          

이 개인사업자 정비소 사장(B)이 부품가게 직원과 통화하는 내역을 나는 가까이에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사장님. 정말 절묘한 타이밍에 오셨습니다. 천만다행입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오늘 중으로 이 차량 출고는 아예 어려울 뻔했습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 숨을 을 내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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