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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Jul 16. 2023

모처럼 운 좋고 수지맞은 날


"전자 레인지 찾으신다고요? 여기 3 초소입니다. 마침 레인지 하나가 나왔네요. 잘 챙겨놓았으니

오셔서 보고 판단하시지요?"


나는 정년퇴직 후 약 2년간의 휴식을 취했다. 고향으로 귀촌하여 나름 의미 있고 재미있는 세월을 보낸 뒤였다.


이른바 인생 2 모작에 나선 지 벌써 반년을 넘어서고 있었다.  '갑을관계'가 가장 확연하고 생생하게 돌아가고 있는 대형  아파트단지  경비대원의 임무를 충실히 이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인생 2 모작에 들어서면서 내 식사 방식에 아주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본디 새벽형 인간에다 발로 뛰는 영업에 올인하다 보니 하루 세끼 식사 모두를 외식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현직 생활을 꽉 채워 마무리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우선 내 보금자리에서 한꺼번에 무려 12인분이나 되는 혼합잡곡밥을 지어다 초소에 비치된 냉장고 냉동칸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매 끼니마다  1인분씩 꺼내어 전자레인지로 데워먹는 방식이 일정한 패턴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문제가 생겼다. 저녁식사를 챙기려 하던 찰나였다.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이 충직했던 전자레인지가  내 부름을 더 이상 받들지 않기로 작정을 했음이 이제야 밝혀졌다.


그래서 오늘 만찬은 컵라면으로 때우기로 했다.   다음이 문제였다. 레인지가 없으면 나는 앞으로 매 끼니 조리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근무일이었다. 내 보금자라에서 사용 중인 전자레인지를 가져다 풀로 가동 중이었다. 이러던 중 아주 반가운 소식이 날아든 것이었다. 직전 근무일  각 초소를 돌며 전자레인지가 꼭 필요하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덕분이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내게 꼭 필요한 소중한 살림살이 하나가 제대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아직 멀쩡합니다.  필요하신 분 가져다 쓰세요."

이렇게 친절한 안내문구까지 붙여 당해 초소 경비대원에게 건넨 마음씨 좋은 입주민이 제 때에 나타난 덕이었다. 자신이 사용 중인 전자레인지 보다 성능 외관 잔존수명  등 모든 면에서 훨씬 나아 보였다. 그럼에도 이 대원은 이를 자신의 것과 바꾸어 쓸 생각을 접고 기꺼이 내게 넘겨주었다.  보통인 입장에서 볼 때 결코 흔한 일은 아니었다.


만약 내가 현역 시절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즉시 대형 마트나 전자제품 전문 매장을 들러 진열된 상품 중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을 골라 곧바로 내 애마의 트렁크에 실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규칙적인 현금흐름과  지금의 그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금전적 대가를 치르면서 전자레인지를 선뜻  내 초소에 들인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기야  내가 전자레인지의 필요성을 직접 몸으로 부딪힐 일이 없었으니 현역 시절엔 이런 일이 생겨날 일이 아예 없었을 터였다.


금융기관  근무 중 오랜 기간 몸에 밴 '발로 뛰는 영업체질' 덕분이었다. 내가 지금 당장 꼭 필요한 보물덩어리를 거저 얻었으니 오늘은 수지맞은 날에 틀림이 없었다.  


저녁 설거지를 뒤로 미루고 단숨에 달려가 문제

 전자레인지를 주저 없이 접수했다. 이제 막

 내디딘 인생 2 모작 일자리 여정이 술술 잘

기를기대해도 될 것 같다.  이런 일도 일어

나니 지금 생활도 아주 '꽝'인 것은 아니라 보

였다.


국가나 지자체가 올림픽이나 월드컵대회, 또는 각종 국제기구 사무소 등을 유치할 때마다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제적 부수효과가 @@조니 @@@억이니

하며 체적인 수치를 들먹이며  호들갑을 떤다.


이번 전자레인지를 내 초소로 거저 모셔 온 것도 경제적 효과를 따지자면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늦었지만 이 보물덩어리를 내게 넘겨준 동료 대원과  오늘 점심식사  메뉴를  짬뽕곱빼기로 하기로 방금 전 약속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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