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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Jun 22. 2023

전염병과 반타작(2편 완)

                           

“‘, 길 좀 비켜주세요.’를 외치며 한밤중을 틈타 어린아이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었지. 홍역, 독감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전염병이 마을에 돌기라도 하면 어린아이들이 온전하지 못했어. 이 전염병을 이겨내지 못한 아이들은 일찍이 강을 건너가는 경우가 많았어. 커다란 멍석에 숨이 멎은 자식을 둘둘 말아 아버지는 껴안고 양 옆엔 삽이나 곡괭이를 든 동네 청년들 행차가 이어졌던 것이야.”   

   

무덤에 가서도 반드시 앓고 만다는 홍역은 물론 지금은 이미 백신이 개발된 콜레라, 장티푸스, 말라리아 뇌염 등도 아주 가볍지 않은 돌림병이었다.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전염병이 동네를 휩쓸고 가면 면역력이 약한 어린 아이나 어르신들이 직격탄을 맞는 것이었다. 이 중 홍역은 아주 무시 못할 큰 고비였다. 합병증이나 후유증을 견뎌내지 못하고 먼저 강을 건너가던 시절이었다. 독감이야 매년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연례행사였다. 이 보다 더 주의해야 하는 다른 전염병으로 인한 희생자 수는 무시 못할 수준이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심각하다. 20년 만에 신생아 수가 반토막이 났다는 경고는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OECD 국가 중 출생률이 월등한 차이로 최 하위권을 맴돈다. 어느 전문가는 심지어 나라의 소멸 가능성을 입에 올리기도 한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라느 케치프페이즈는 이제 전설이 된 지 오래다. 현대의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우리나라 사람 평균수명은 OECD 국가 중 단연 최상위권에 랭크되고 있다.  

    

반타작만 해도 성공한 것으로 보았어.”

출생한 자녀 중 홍역이나 기타 더 무거운 전염병으로 인한 희생자 때문에 성인에 무사히 진입하는 비율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내 고향 절친 한 명은 형의 호적을 이어받기도 했다. 형이 전염병의 희생자가 되었는데 호적 상 사망 신고를 미루고 이어 태어난 동생을 따로 출생신고를 하는 대신 형의 호적을 이어받았기 때문이었다.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거나 돌을 맞은 이후에도 호적에 늦게 올리는 것은 다반사였다. 이러다 보니 실제 생활과 호적상의 그것이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경우란 거의 구경을 할 수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336남매 모두를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이 거뜬히 키워내어 100% 성공률을 자랑했다.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자녀 6남매란 당시 출생률을 감안하면 평균을 조금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당시 우리 부락의 주위 가정을 살피면 10남매를 넘어서는 집안도 드물지 않았다. 이런 경우 대부분 형제자매 간 나이 터울은 들쑥날쑥했다. 출생 후 성년 이후까지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와 달리 우리 형제자매들의 터울은 등차수열에 수렴했다.  

    

준수가 유난히 경기(警氣)를 많이 했어. 그래서 어떻게라도 해서 내가 살려보려고 바늘을 집어 들어 손가락을 찔러대다 보니 이렇게 되었어.”     

동네 젖먹이들이 체하거나 놀라는 등 몸에 크고 작은 탈이 나게 되면 젊은 엄마들은 아이를 둘러업고 우리 어머니를 찾아 나서곤 했다. 우리 어머니 침술 노하우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였다. 

     

위생병으로 6.25 한국 전쟁에 참전한 아버지의 관록에다 이미 무면허 침술인 반열에 오른 어머니의 몸에 밴 육아 노하우가 상승작용을 했다. 우리 6남매 모두는 한 사람의 낙오자가 없이 100% 생존자란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반 타작만 해도 성공한 것...”란 동네에 떠돌던 이야기는 우리 집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이엔 무엇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가이없는 사랑, 정성, 노력이 가장 큰 밑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었다.

     

이젠 예전과 형편이 아주 달라졌다. 각종 전염병에 대한 백신이 개발되었고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출생 후 생존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문제의 출산율만 높인다면 우리나라 소멸을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출생 후 100% 생존율을 자랑하는 우리 6남매 사례는 모든 곳에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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