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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03. 2023

계절학기 특별장학생과 괘씸죄(1편)

                        

“종탁이 어디 갔어? 꼭 만나야 하는데, 중요한 일이 있어서 내가 찾아왔었다고 전해주었으면 하네.”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이 막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우리 동기들은 각자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지방 출신 친구들은 귀향을 하거나 더러는 사법 시험공부를 위해 책과 이불 보따리를 챙겨 암자를 찾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룸메 종탁이와 같이 묵고 있는 하숙집은 모교 후문 근처에 자리한 붉은 기와 단독주택이었다. 이면 도로나 골목 길이 정비되지 않았다. 그래서 골목길은 겨우 양방향 한 명씩 교차 보행이 간신히 가능할 정도로 비좁았다. 거미줄을 방불케 했다.      


더욱이 우리 하숙집 방은 벽이 곧 이 단독 주택의 담을 겸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법 규모가 넉넉한 밖으로 난 창을 두드리는 동기들이 늘어만 갔다. 군청색 철제 대문에 달린 초인종을 누르는 것보다 이것이 나와 종탁이를 훨씬 쉽게 불러내는 방법이었다. 주인집에 민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는 결정적인 장점도 있었다.     


방금 전 기성이가 내 룸메인 종탁이를 수소문한 이유를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내가 직접 나서 기성이에게 확인해 주는 것은 좀 내키지 않았다. 우리 입학 동기들 사이엔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이후였다. 이번 학기 교양 영어 시험에서 권총을 찬 친구들 명단에 관해 모르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이 자랑스러운 명단에 종탁이와 기성이도 올라 있었다.      


당시 대학마다 학점 기준과 평점 제도는 각양각색이었다. 우리 모교도 독특한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A ~ C 구간은 정상적인 학점으로 인정되었다. D는 ‘임의 재시험’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다. D 학점을 받아 든 학생은 자신이 원하면 재시험을 치를 기회가 주어졌다. 다시 시험을 치러 부진한 성적의 만회가 가능했다. 하지만 일정한 제약이 따랐다. 두 번째 치른 시험에서 아무리 완벽한 답안지를 내밀더라도 C+를 넘어서는 점수를 받을 수 없었다. 이 C+가 받을 수 있는 학점의 상한선이 되었다.   

   

E학점은 필수 재시험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 반드시 재시험을 치러야 했다. 만약 재시험에 응하지 않으면 평점에서 ‘0점’ 처리되는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아래 등급은 권총이라 불리는 F학점인데 이는 재시험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았고 ‘재수강’만이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다음 학기 이후에 재수강을 받아 만회할 기회를 노려야 했다. 재수강이 가능했지만  권총을 찬 당해 학기에 평점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기에 특별한 구제책을 마련했다. 이름하여 ‘계절학기 수강 후 재시험’이라는 독특한 제도가 그것이었다. 이는 재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점에선 D, E 학점과 같았으나 먼저 거쳐야 할 통과 의례란 것이 따로 있었다. 이는 방학 기간 동안 3 내지 4주간 별도의 강의를 들어야만 재시험 기회가 주어졌다.

     

이런 번거로운 절차 대신 아주 결정적인 메리트가 따로 있었다. 재시험 후 받을 수 있는 최고 성적이 C+로 제한되는 D, E 학점과 달리 이 계절 학기 수강 후 치르는 재시험에서 A+ 학점 취득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전공 필수, 선택 과목을 제외한 교양 팔수 과목만이 계절학기 강좌 개설 대상이었다. 전공 필수는 물론 교양 필수를 모두 이수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학점과 좋은 평점을 받더라도 학사학위 취득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이러저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교양 필수 과목에 한해 부진한 점수를 만회할 수 있는 재도전의 기회를 부여한 것이었다. 이른바 ‘찬스제도’라 불러도 별 문제가 없었다. 단 이 계절학기에 개설된 강좌를 수강하기 위해서 1, 2학기 초에 납입한 정규 등록금 이외에 별도로 책정된 수강료를 부담해야 했다. 학점당 얼마로 하여 그때마다 공지가 되었다.

     

서울은 물론 수도권에 보금자리가 있는 친구들은 이 계절 학기를 수강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서 하숙이나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고향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학교 인근에 머무르는데 필요한 추가 비용이 필요했다. 자취생들에 비해 하숙생들이 더 큰 문제였다. 적어도 1개월분의 하숙비를 더 마련해야 했다.    

  

“아버지,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번 방학에 계절학기 수강생 명단에 뽑혔어요. 성적 우수 장학생이 된 겁니다. 그래서 집에 내려가지 않고 소수정예로 선발되어 따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한 달분 하숙비와 책값 더 필요합니다.”    


평소 그저 향토 장학금이라 불리기도 하는 ‘FM장학금’으로 캠퍼스 생활을 이어가던 친구들의 그럴듯한 변명도 가지가지였다. 그런데 이번엔 자랑스럽게 이 계절학기 수강자 명단에 오른 또 다른 친구인 주호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수완이 부족했든지 이런 변명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호는 한 달 동안 친구, 친지 집을 전전하며 동가숙 서가식할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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