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 Sep 03. 2023

계절학기 특별장학생과 괘씸죄(2편 완)

“계절학기 동안 주호가 우리 집에 며칠 묵었어. 첫날 저녁식사 자리였어. 예전 시골 농사꾼 전용 고봉밥을 순식간에 비워버리더군. 그간 얼마나 식사가 부실했는지. 쯧쯧  코 끝이 찡했어.”     


그간 서울 시내 친구 친지 집을 쭈욱 한 바퀴 들른 후 인천이 보금자리인 재성이네에서 벌어진 풍경이었다. 아무리 주호지만 민생고 문제 앞에선 이데올로기는 물론 눈치나 체면, 품위 따위를 따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최근 룸메 종탁이는 겨울 방학을 맞아 고향집에 내려가 칩거 중인 내게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연하장을 보내왔다. 본디 문학에 남다른 조예가 있는 종탁이는 자신이 직접 빚어낸 '자작 한시' 한 편을 연하장에 올렸다.      


“오동나무 한 잎이 떨어지니 겨울이 옴을 알리네. 이 엄동설한에 계절학기 수업이 웬일인가.”

유명 시인이 이미 발표한 문구를 일부 패러디했다. 나도 직접 번역에 나섰다.

    

그런데 사실 종탁이가 교양 영어 과목에서 권총을 차게 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형사상 가장 큰 죄목인 이른바 ‘괘씸죄’에 걸려 들은 것이었다.  

    

교양 영어 강의는 우리 단과대 1학년은 두 개반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우리는 A반이었다. 공교롭게도 우리 계열 여학생 두 명 모두는 우리 반에 편성되었다. 출석번호로 나누다 보니 그리 되었다. 이에 더하여 여자 교수가 배정되었다.      


“법대는 왜 이렇게 여학생들만 맹활약을 하는 거지요? 남학생들은 자신이 없는 것인가요?”     

우리 교양 영어 교재는 그 난이도가 만만치 않았다. 주로 유명 소설이나 수필 등을 동원하여 교재를 편집했다. 이 교과서 지문을 읽고 번역할 자원자를 물음에 여학생 둘이서 교대로 자신들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니 교수로선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교수는 갑자기 이번 문단부터 이 미션을 종탁에게 이어가도록 했다. 종탁이는 얼마 전 교양 국어 시간에 시 낭송에 나섰는데 동기들은 물론 교수로부터 최상급 레벨의 현직 성우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평을 받았다. 아주 뛰어난 음색과 발음 억양을 과시했다. 오늘 교양 영어 시간에도 이런 종탁이가 유창한 영어 리딩은 물론 번역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 기대되었다. 원어민 교사를 훨씬 뛰어넘는 리딩실력에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다음엔 번역 실력을 보여 줄 차례였다.


 그런데 종탁이는 예습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자신이 모르는 어휘가 수두룩했다. 모르는 단어는 그대로 ‘영어’로 읽어가며 번역에 애를 썼으나 제대로 된 번역이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이래서 번역이 중간중간 끊길 때마다 자신이 재수 없게 이번에 지명된 데 대한 원망과 화풀이를 즉석에서 하고자 했다. 욕설이 연상되는 전문 후렴구가 매번 등장했다.      


종탁이는 처음부터 교수에게 자진신고를 했어야 했다. 예습 등 사전 준비가 덜 되었으니 다음에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으면 전혀 문제가 없을 듯했다. 교수는 종탁이의 이 무례한 태도를 문제 삼았다. ‘괘씸죄’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을 들이대기로 했다. 종탁이의 중간, 기말 시험의 실제 성적은 교수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래서 종탁이는 자랑스러운 계절학기 특별 장학생 명단에 그 이름을 올린 것이었다.      


엄동설한 추위를 견디면서 절치 부심한 끝에 이번 계절학기를 마친 후 치러진 평가에서 종탁, 기성, 주호 우리 동기 3명 모두는 최소 A학점 이상을 받아낼 수 있었다. 장차 학사학위 취득을 위한 첫 번째 허들을 고생 끝에 넘어선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캠퍼스 생활 4년간 이 계절학기 수강을 피해 가고 재시험 답안지를 한 번도 구경하지 않는 친구들은 이를 큰 자랑거리로 삼아도 이에 시비를 걸 사람은 별로 없었다.    

 

세상엔, 교양 영어 담당 교수로부터 괘씸죄에 엮여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것과 유사한 사례는 결코 드물지 않았다. 학창 시절은 물론 밥벌이를 위해 오랜 세월 이어간 조직 생활에선 더욱 여러 번 지켜볼 수 있었다.      


평소 근태, 실력, 실적 등 정량적 판단을 넘어 이른바 이러한 ‘정무적 판단’이란 잣대를 들이밀며 이 ‘괘씸죄’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면 이를 피해 갈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기에 앞서 감정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데 적지 않은 세월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작가의 이전글 계절학기 특별장학생과 괘씸죄(1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