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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05. 2023

구르는 돌에 이끼 끼랴(1편)

--수시로 리셋이 필요한 세상---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했으면 나는 국립 관악대에 갔을 거고 그랬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우리가 고교 정문을 나선 지 어느덧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났다. 오늘은 고교 동기 넷이서 여의도 인근 주점에 얼굴을 맞대고 모였다. 한 테이블을 꽉 채운 4명이 오늘 멤버의 전부였다.  그간 상진이는 자주 만났고 성태는 고교 졸업 후 한두 번 정도, 찬우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평준화 이전의 지방에 소재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교별로 별도 입시 전형을 치렀다. 다른 대도시 평준화 고교 출신과 달랐다. 끈끈한 정이 있었고 나름 소속감과 결집력이 상대적으로 강했다.    

  

그간 학교를 졸업한 후 각자 살아온 이야기가 오늘의 메인 안주가 될 수밖에 없었다. 때론 의견이 엇갈려 몸싸움으로 발전할 우려까지 있었다. 상진이는 정부 재투자기관, 성태는 국책 은행, 찬우는 명실상부한 공기업에 각각 근무 중이었다. 이 정도면 그리 실패한 인생은 아닌 듯했다. 우리 네 명 중 찬우는 남 다른 점이 있었다. 항상 그놈의 관악대를 가지 못한 미련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성태와 찬우는 재수를 하지 않고 현역으로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았고 상대 소속 같은 과 출신이었다. 상진이와 나는 서울 소재 굴지의 대입 재수 전문학원을 1년이란 세월 동안 오간 끝에 대학 문을 들어섰다.      


내가 두 번째로 대학 입학을 위한 예비고사 성적표를 받아 들고 모교 교문을 들어서던 순간 찬우와 마주쳤다. 고등학교 문을 나선 지 처음으로 찬우를 만났다. 참으로 반가웠다. 찬우는 이미 대학 1학년 겨울방학을 맞고 있었다.

     

고교 동기 중 대학 입학을 위해 재수의 길을 마무리한 친구들을 만나러 일부러 모교 교정으로 행차를 한 것이었다. 친구들이 재수 전과 예비고사 성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또 이번엔 어느 대학을 지원할 것인지가 찬우의 최대 관심사였다.

     

찬우는 집안 형편상 재수에 나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현역으로 지금 몸을 담고 있는 대학을 택하였다. 그런데 자신이 다니고 이는 대학의 브랜드가 줄곧 성에 차지 않았다.  오늘 저녁 술자리 모임에서도 찬우는 이 대학 브랜드 메뉴를 다시 한번 테이블에 올렸다.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찬우말고 머지 우리 3 명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찬우의 이 단골메뉴에 이제 싫증이 날 때도 된 것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시계를 거꾸로 돌려 재수 후 관악대로 브랜드를 바꾸어 달 수 있으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한 방향 통행이 아니던가.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아주 크게 각광을 받았던 ‘원웨이 티켓이란 팝송도 이를 가르쳐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찬우는 이미 흘러간 물을 매번 들추니 부질없는 푸념에 다름이 아니었다.   

  

찬우가 지금 몸담고 있는 곳은 최근 신의 직장으로 불리고 있는 누구나 근무하고 싶은 곳으로 꼽히고 있었다.  

    

아직도 출신 대학 브랜드가 어떻고 관악대 가능 운운하는 이야기는 이제 접었으면 하네. 언제까지 그곳에 머물고 있을 거야. 그럼 자네는 대학 졸업까지만 인생이고 그 이후는 아예 없는 것인가. 앞으로 남은 세월을 어떻게 살아낼 건데.” 

    

성태는 찬우의 이루지 못한 대학 브랜드 미련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명쾌하게 밝혔다. 대학 졸업 후에도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남은 삶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노라고 찬우의 단골 메뉴에 관해 아예 쐐기를 박아버렸다.      


나는 그간 찬우의 20여 년에 걸친 직장생활의 궤적에 관해 큰 흐름은 잘 알고 있었다. 직장 내에서 잘 나가는 주류 그룹과는 거리가 먼 길을 가고 있었다. 근무지나 부서 배치 등을 살펴볼 때 그리 성공한 직장생활은 아니었다. 외곽 지역이나 한직으로 돌기 일쑤였다. 거주지에서 출퇴근하기에 부담스러운 원거리로 발령을 받거나 입사 동기들 대비 승급 승진에서도 늘 밀리고 있는 찬우였다. 직장인들이 누구나 근무하고 싶은 부서에 배치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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