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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05. 2023

구르는 돌에 이끼 끼랴 (2편 완)

--수시로 리셋이 필요한 세상---

                     

결국 직장 동료와도 원만한 소통과 관계 유지가 어려웠다. 게다가 상사로부터 역량이나 성과 등을 인정받지 못했다. 찬우가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엔 이 관악대 메뉴’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내가 그곳에 충분히 갈 수 있는 역량이 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서 겨우 이런 대접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식이 찬우의 머릿속을 줄곧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정도를 훨씬 넘어선 이후였다. 당시 여의도 술자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던 친구들 근황을 살펴보았다. 상진이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정부 투자기관에서 본부장을 지낸 후 공기업 CEO의 자리에 까지 올랐다. 성태는 국책 은행 본부장을 역임한 다음 은행이 지분을 가진 회사의 가장 윗자리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관악대 타령을 일삼던 찬우도 직장생활을 정년으로 마감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찬우의 콘텐츠는, 지금까지 생의 반 이상을 차지했던 조직 생활을 견줄 때 상진이와 성태의 그것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오랜 기간 몸 담았던 직장에서 주위 사람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공기업이다 보니  그럭저럭 비주류의 길이지만 완주를 했다.    

  

여기서 한 가지 가정을 해보았다. 찬우가 처음부터 공기업이 아닌 일반 영리 사기업에 발을 들여놓았으면 찬우의 직장 생활의 궤적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아마 찬우에겐 여러 번의 구조조정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불상사가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 한국 사회가 출신대학 브랜드를 중시하고 많이 따지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관악대 출신이라도 그 브랜드만을 내세우며 대학 졸업 이후 부단한 자기 계발 노력을 게을리했다면 찬우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좀 더 나은 콘테츠로 자기를 계속 채워나가지 않는다면 어느 곳에서나 환영받는 조직원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고교 동기는 물론 주위 또래 중 관악대 출신은 그리 흔치 않았다. 비록 관악대 출신이라도 자신이 출신학교 브랜드만을 자랑하며 내세우는 사람은 크게 성장할 수 없었다. 주위에서 이를 지켜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제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다. 우리 두 아들이나 자식 세대가 이제 이 사회의 젊은 주역으로 이미 진입을 했거나 조만간 이 대열에 합류를 앞두고 있다. 운이 좋게도 우리 자식 세대엔 관악대 출신이 부쩍 늘어났다.     


이제 직장 생활 10년 차를 훌쩍 넘어선 관악대 출신 조카의 최근 코멘트에 이미 정답은 나와 있었다.

     

삼촌, 대학 브랜드는 말이지요. 회사나 조직에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그 순간부터 리셋해야 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어요.”     

벌써 이렇게 기특하게 성장한 조카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어 나는  순간 어깨가 으쓱해졌다.

     

만약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없었다면 조선 건국 등 그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런 물음에 역사엔 가정이란 부질없는 짓이라고 나는 주위 선배들에게 일찍부터 전해 들었다. 찬우의 이른바 '재수와 관악대 메뉴'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담론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 세대 관악대를 나온 사람들 중 늘 자신의 브랜드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그리 크게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았다. 브랜드만을 내세우며 자기 발전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게을리 한 자에겐 밝은 앞길이 열리지 않았다. 탄탄대로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었다.   

   

준수야, 고등학교 졸업하고 재수를 했으면 나는 국립 관악대 동문이 되었을 거고 한자리했을 텐데......”

오랜만에 찬우와 통화를 마쳤다. 그런데 찬우는 그 단골 메뉴를 오늘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왔다. 또한 구르는 돌엔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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