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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Nov 18. 2023

반갑고 경사스러운 일이란 무엇인가?(1편)

                

“2년 만에 오셨다, 그지요? 좌우 양쪽에 있던 것은 그대로 있고요. 문제는 가운데 새로이 생겼네요. 0.6 센티라서 그리 크지 않은데 모양이 안 좋습니다. 조직검사로 가겠습니다.”
 , 별일 없습니다. 2년 후에 다시 보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애초 두 번째 코멘트를 기대했다. 교수는 어쩐지 처음부터 PC 화면을 몇 번 클릭하면서 깔끔하게 상황설명을 이어가지 않았다.      


별일 없고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2년 후에 이곳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내가 직장 생활을 최종 마무리하기 약 2년 전이었다. 회사에서 매년 실시하는 정기종합건강 검진 결과가 예년과 좀 달리 나왔다. 그래서 두 개 부위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추적관찰을 해오던 중이었다.      


그중 한 곳이 갑상선 부위였다. 양쪽의 크고 작은 여러 개의 결절은 악성으로 바뀌지 않았고 그대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종래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초음파, 또는 조직검사를 번갈아 하며 관찰하던 중이었다. 이전에도 별일이 없으니 1년이나 2년 후 다시 외래진료를 보겠다는 교수의 깔끔한 결정을 기다리던 터였다. 하지만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종래 내 담당 주치의 교수는 외국으로 연수를 떠났기 때문에 이번엔 다른 교수에게 배정되었다. 나는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종래와 같은 검진 기관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정기검진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로 했다. 내 검사 결과에 관해 쌓인 레코드가 이곳에 있으니 이것이 괜찮은 결정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매년 받아 드는 결과지를 들고 내가 평소 자주 찾는 내과 주치의에게 의견을 지속적으로 물어 왔고 이에 따라 그때마다 필요한 대처를 기민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작년엔 내가 먼저 단골 병원 내과 주치의에게 한 마디 건넸다. 갑상선과 췌장 쪽은 국립 S대 병원에서 따로 추적관찰 중이니 스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별생각 없이 던졌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큰 패착에 이를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학병원에서 따로 관찰 중이라도 검진 결과표를 내밀어 이 두 부위에 관해서도 의견을 구해야 했다. 1년의 공백이 어쩌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내게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순간 스쳤다.


대학병원 추적관찰이란 것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커다란 오류를 범한 것이었다. 갑상선 부분에 관한 담당교수의 의견에 따라 중간 1년 공백기 변화를 놓친 것이었다. 만약 중간 1년 중 변화를 포착해서 조직검사를 행했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었다. 정말로 치명적인 실기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진료실 문을 나서며 내 머릿속은 갑자가 온갖 잡동사니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만약에 악성으로 결론이 날 경우 향후 벌어질 사태를 기간별로 상상해 보았다. 현재 내가 계획 중인 일자리 근무일정과 그 이후 약 6개월간 누릴 수 있는 어쩌면 내 인생 마지막일 수도 있는 황금 같은 휴가 계획등 모든 일정은  한꺼번에 일그러지거나 무너져 내릴 것은 뻔했다. 공든 탑이 무너질 것은 눈앞의 불을 보듯 했다.   

   

만약 관찰 주기를 2년이 아닌 1년으로 줄였다면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금 미국에 유학 중인 앞서 내 주치의가 야속해졌다. 최종적으로 나중엔 ‘의료과오’ 여부를 따져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침을 삼키시면 위험하기도 하고 검사가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 번 검사 이력이 있는데도 매번 낯설고 연스럽지 못한 것이 조직검사였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이어가야 할지 내키지 않는 코스였다. 하지만 정해진 일정을 차곡차곡 밟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대학 병원을 수 없이 드나들면서 가끔 떠오르던 생각이 있었다. 지금까진 운 좋게 그런대로 악성진단이라는 선고를 피해 왔지만 언젠가 한번 걸려들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그것이었다. 그것이 이번에 결국 현실로 나타날 것 같았다.      


이 정도에서 나는 평소 정해 놓고 드나드는 내과 전문의의 상담을 한 번 더 들어보기로 했다. 혹시나 내가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이야기라도 한 두 개 건질 수 있나 하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맞아요. 갑상선 쪽 결절은 특히 모양이 중요합니다. 우선 악성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좋지 않은 결과로 판명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0.6센티미터 크기이면 1기에 해당하는데 생존율이 99.@@%입니다. 해피한 케이스입니다. 때론 30대에서도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가 가끔 발견됩니다.” 

    

혹시나 위로를 받아 볼까 하고 나섰지만 모양이 좋지 않으면 악성일 확률이 높다는 곳에 방점이 찍혔으니 불안감은 더해 갔다. 이번엔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미 오래전에 보험료 불입을 마친 암보험의 보험증권을 보험회사로부터 다시 이멜로 받아 보장내용 등 분석에 들어갔다.      


이 정도의 갑상선 암으로 내가 당장 강을 건너가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정 기간 생업을 중단해야 하고 수술과 일정 기간의 요양이 필요할 것 같았고 평생 관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니 이는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생각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 부위 말고 지금 같이 추적관찰 중인 공포의 장기인 췌장 쪽에도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모드로 돌아서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만약 이게 현실화된다면 그땐 아마 손을 쓸 겨를도 없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2년이 아닌 1년 만에 한 번 더 살폈으면 이런 낭패는 없었을 것 아닌가요?”

아니지요. 1년 전에 결절의 사이즈가 0.5센티미터에도 모자랐을 것이고 이렇게 작은 상태에선 조직검사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초록은 동색이었다. 같은 의사에게 내가 원하는 답변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혹시나 악성으로 결론이 날 때를 대비해 마음의 준비는 기본이었다.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정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드디어 선고일이 밝아왔다. 교수를 대면하기 전 이번엔 예전과 달리 혈압을 쟀고, 몸무게 체중 등을 살폈다. 나는 이것이 악성으로 결론이 난 환자들을 대상으로 수술에 대비한 기초 조사로 읽혔다.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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