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 Nov 06. 2023

나도 다 알고 있어, 그래도...

            

그래, 나도 다 알고 있어, 그래도 이 돈을 당신에게 꼭 받아야겠어. 물어내기 싫어? 정 그러면 나는 이 차액 받지 않아도 돼. 당신, 이 회사 계속 다닐 수 있겠어? 내게 이렇게 채권을 팔아놓고 어떻게 지점장은 되었어?”  

   

참으로 아닌 밤에 홍두깨’였다. 나는 약 2년 반전 직전 점포에 근무 중이었다. 내 관리 고객 박사장에게 소매채권 잔존만기 약 27개월 상품을 3억 매각한 적이 있었다.  

    

“지점장님, 박사장님이 소매채권을 3억 투자했는데 당시 프리미엄을 주고 사셨네요. 그런데 이제 와서 최종 상환자금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고 차액을 물어달라고 하시네요? 직접 통화를 하시지요?”     

글로벌 금융위기가 치기 약 6개월 전이었다. 오늘 방금 전 내가 바로 전에 근무했던 점포 내 후임 관리자가 내게 급히 알려왔다.  

    

우리 회사는 소매채권을 단순 중개 방식으로 고객에게 매각하는 업무도 취급 중이었다. 최초 발행일로부터 투자를 하는 발행물이 거래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통물을 매각하는 것이 대세였다. 그런데 이 유통물을 우리 회사가 시장에서 조달하여 고객에게 매각하는 경우엔 유통금리가 발행 당시의 금리보다 낮은 것이 보통이었다. 즉 채권의 거래가격이 상승했다. 이에 더 나아가 중개를 하는 우리 회사의 중개수수료(보수)를 이에 녹여 고객에게 최종 매각하는 금리가 결정되었다.  

    

이렇게 결정된 매각금리는 고객입장에선 투자수익률이 되었다. 이 채권의 투자수익률은 물론 과세방식, 이표채 수령일마다 고객이 수령하는 실제 세후 수익금 등을 상세하게 담은 채권투자분석이란 양식을 출력하여 빠짐없이 설명을 한 후 고객에게 교부했다. 고객이 매수한 채권 내용에 관한 핵심 내용을 따로 담은 투자확인서도 함께 건넸다. 이에 고객의 기명날인(서명)을 받고 신분증 사본까지 첨부하여 전산으로 보관하였다. 내가 이 박사장에게 이 건 채권을 매각할 당시에도 이 정해진 매뉴얼을 정확히 모두 지켰음은 물론이었다.      


소매채권 매각 시 거래단위는 10,000개였고 고객의 투자수량은 300,000개였으니 투자금액은 300,000,000원이 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이에다 발행금리와 유통금리의 차(스프레드)와 우리 회사의 중개수수료(보수)를 반영하여 실제 투자금액은 302,400,000원을 납입해야 했다. 그러니 박사장은 실제 단가 10,000원 상품을 80원의 프리미엄을 더하여 10,080원에 매수한 셈이 되었다.  @@카드 회사채는 최초 만기 2년으로 발행되었지만 발행 후 경과일을 차감한 잔존만기인 유통물의 실제 투자기간은 535일이었다.

      

발행 후 지금까지 경과일에 대한 세전()이자 금액에 이어 그 후 매 3개월마다 지급되는 금액도 채권투자분석화면을 출력하여 일일이 빠짐없이 충분한 설명을 마쳤음은 물론이었다.


더욱이 최종만기일인 상환일에 고객이 받게되는 세전(후) 상환금 상세 내역은  더욱 강조하여 안내를 했다. ‘세전 상환금액 = 매수수량 + 세전 이자수입, 세후 상환금액 =매수수량 + (세전 이자수입 세금)’ 부분은 노란색 형광펜까지 동원하여 덧칠하는 방식으로 각인시켰다.


사장님께서 실제 입금한 금액은 302,400,000원이지만 만기 시 받는 상환금액은 ‘302,400,000+ 세후 이자가 아닌 ‘300,000,000+ 세후이자라고 특히 강조하여 알렸다. 결국 최초 입금금액에서 2,400,000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2,400,000원의 차액까지 모두 감안하여 산정한 세전 연 수익률이 연 4.41%라고 목소리까지 높여가며 상담을 마무리했다.      


그랬건만 오늘 비분강계하며 우리 점포로 헐레벌떡 달려온  이 박사장은 내게 어깃장을 놓기에 바빴다. 내가 아무리 조목조목 항변을 해보았자 도저히 설득이 되지 않았다. 그저 막무가내였다. 애초 채권 매각 당시 받아 보관 중인 서류와 고객에게 건넨 투자확인서 등의 기억을 아무리 불려내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잠시 후 박사장은 결국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소매채권 매수 시 상품에 한 설명을 내게 모두 들어서 잘 알고 있고,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해당 서류에 기명날인(서명)했으며 투자확인서도 건네받은 사실도 맞다고 실토를 했다. 하지만 자신은 최초 투자원금에 만기 수령 시 세후 투자수익금을 합한 금액을 기어이 받아내야겠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 차액인 2,400,000원을 내게 개인적으로 변상을 하라는 것이 요지였다.     

 

나는 오랜 기간 사법시험 수험생활을 접고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거쳐 회사 문을 들어섰다. 그래서 입사동기 들 평균연령 보다 좀 높은 연식을 자랑했다. 그런데 직장 생활 내내 이 것이 커다란 핸디캡이 되어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희망퇴직이란 이벤트가 등장할 때마다 이 상대적 고령자란 사실이 내게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했다. 혹시라도 살생부 명단에 오를까 보아 전전긍긍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 오랜 기간 늦게까지 살아남기 위해 이 연식이외 다른 핸디캡을 더 쌓지 않기 위해 늘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박사장 건이 만약 감독기관에 정식으로 민원이 접수되거나 재판으로 가더라도 내게 그리 크게 불리할 것 같지는 않았다. 상품에 대한 꼼꼼한 설명과 해당 관련 서류를 완벽하게 챙겼기 때문에 사실 나는 충분한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머릿속엔 꺼림칙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민원이나 재판의 결과가 설령 나의 완승으로 마무리되더라도 이런 건이 분쟁으로 이슈화된다는 자체가 내게 결코 유리하게 작용할 것 같지 않았다. 인사기록에 참고자료로 남을 가능성이 염려되었다. 게다가 100% 박사장 측 패배로 결론이 나더라도 이 고객 이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정상적인 절차 이외 다른 방법으로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힐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회사가 구조조정 시즌마다 마련하는 살생부에 오를 가능성을 아예 사전에 차단하고 싶었다. ‘회사 측은 핑계가 없어서 자르지 못한다’는 말이 항상 자연스럽게 떠도는 분위기가 상존했기 때문이었다.

     

사장님, 제 어깨를 잡고 제게 체중을 실으세요.”

아냐, 필요 없어 나 혼자서도 충분히 걸어 올라갈 수 있어.” 

    

박사장은 두 쪽 모두 목발 신세를 지어도 간신히 보행할 수 있는 정도의 장애인이었다. 출입구에 이르는 계단의 경사가 유난히 가파르고 높은 직전 점포 사옥의 출입구에 오르고자 할 때 내 도움을 단호히 뿌리치던 박사장이었다. 불편 한 몸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원치 않는 동정을 받는다고 생각하는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캐릭터였다.  

    

그래, 그건 걱정하지 말아, 내가 이 모임에서 이사를 맡고 있으니까.”


내가 이 건 배상금으로 2,400,000원을 건네는 대신 건으로 향후 민 형사상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다.’는 문구가 적힌 합의서에 기명 날인 하면서 명함 한 장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보였다. 박사장은 내게 짐짓 거드름을 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억지를 부려  배상금 명목으로 결코 작지않은 2,400,000원을 챙기면서 나를 자신의 무슨 조직의 부하 다루듯 반토막 말을 계속 이어갔다. 인명살상용 지뢰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전방 철책선 인근을 방불케하 금융기관 영업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근무기간을 늘려 가는데 나는 너무나 많은 대가를 치렀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 해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