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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Nov 24. 2023

조직원 계급장은 언제까지 통할까(2편)

   

, 인마 너는 도대체 언제까지 회사를 다니는 거야? 지금 나이는 얼마이고...?”

자정이 멀지 않은 시각이었다. 핸드폰으로 나와 연결된  전직 추실장은 내게 아주 거침없는 말을 쏟아냈다. 추실장은 나보다 3 내지 4 먼저 회사에 발을 들여놓은 입사 선배였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점포장을 거치고 본부 주요 부서장도 역임을 했다. 그런 다음 희망퇴직 기회에 회사 문을 나선 지 이제 5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자신과 멀지 않은 거리에 사는 회사 후배 신 차장과 오늘 저녁 술자리를 같이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야기가 나온 끝에 안부 전화랍시고 늦은  밤중에 나를 폰으로 불러 낸 것이었다. 추실장은 조직에  담고 있는 동안 최상층의 ‘로열패밀리’로 분류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점포장과 부서장 자리를 10여 년 가까이 두루 거쳤으니 결코 실패한 직장생활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정이 가까운 늦은 시각에 그것도 자신과 같은 부서 근무 이력도 전혀 없는 내게 직속 부하나 수행비서에게 이르거나 지청구를 하듯이 아무런 거침도 없이 일방적인 말을 질서 없이 토해냈다.  

    

사전 예고도 없이 불쑥  영역에 들어왔으니 ‘아닌 밤에 홍두깨’였다. 나는 경황이 없어 그럭저럭 엉거주춤하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상대 물음에 내가 조목조목 반박을 하거나 대꾸를  형편이 아니었다. 나는 그럼에도 전직 상급자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 꼬박꼬박 경어로 응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해프닝이 있던 다음날이 밝았다. 나는 내가 당한 어젯밤의 늦은 시각에 이루어진 예기치 않은 사태에 관해 원만한 해결책을 고민했다. 어찌하면  추실장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으면서 내 마음속의 의사를 온전하게 전할 수 있을까, 장고를 거듭했다. 이 문제를 그저 덮어두거나 다음으로 미루는 것은 내가 원하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다음으로 미루거나 엉거주춤하게 봉합할 경우엔 계속해서 개운치 않은 상황이 지속될 것이 분명했다. 내 정체성에 결코 맞지 않는 것이었다.  

    

 부장입니다. 어제 밤늦은 시각에 제게 전화하신  기억은 나지요? 그것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상대가 술에서  맨 정신을 확인한  정중하지만 강력하게  의견을 전달했다. 회사에 재직  나는 추실장에게 입사 선배 내지 상급자의 대접을 소홀히  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추실장이 회사를 떠났으니 재직 시의 신분이나 계급장은 이제  유효기간이   것이 아닌가. 그러니 계급장을 떼어내고 소통이나 처신을 하는 것이 옳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 결국 나는 추실장에게서 사과의 변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나와 추실장은 같은 점포나 부서에서  번이라도 같이 근무한 이력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추실장은 나보다 입사일이 3~4년이나 앞서고 직급이 높은 상급자였으니 나는 최대한 예우를 했다. 이는 추실장이 아닌 다른 상급자에게도 똑같이 내가 처신하는 기본 원칙 중의 원칙이었다.     


추실장은  상급자란 관계 말고   특이한 인연으로 엮였다. 추실장은  고교동기 절친과 전공은 달랐지만 대학동문이었다. 오래전 친구는 최실장을 알고 있느냐며 내게 물어왔고 자신은 추실장과 대학 내 같은 동아리 회원이었다는 사실을 귀띔했다. 그래서 나는 최실장에게 이런 관계를 지속적으로 상기시켰다. 내가 이런 데는 따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추실장보다 비록 입사일은 늦은 직장 후배이지만 연령은 같은 또래이니 함부로 대하지  것이며 더구나 직속부하를 다루듯이 하지 말라는 경고성 부탁이 녹아 있는 것이었다.

     

이런 암시를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나는 추실장에게 반복해서 전달했지만 추실장은 그럼에도 아예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숨은 뜻을 몰랐는지 알고도 무시했는지는 나로선 알아차릴 도리가 전혀 없었다. 이런 처신을 회사를 떠난 후에도 계속 고집했으니 나는 추실장의 이런 태도를 반길 일이 없었다.  

    

더구나 갖은 핍박과 때론 모멸감을 견디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지금까지 직장 내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마당인 내게  추실장의 이런 무례 없는 처신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밤늦은 시각에 만취 상태에서 이루어진 질책성 지적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이제껏 직장생활을 이어가는데 추실장 도움을 하나라도 받은 적이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추실장이 현직을 지키고 있을  내게 자신의 직속부하를 다루듯이 대하는 행태에 관해  참아 왔으나 이젠 사정이 전혀 달라진 것이었다.   

   

내가 최부장이  나가도록 도와줄  있는 능력은 없어도 가는 길에 훼방을 놓을 수는 있는 ,  알지?”     

내가 근무하던  점포장이 농반진반으로 내게 던지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회사에선 이런 것이 엄연히 먹히던 시절이었다. 구성원의 평판이 중요했고 같이 근무하지 않았던 부서장  상급자가 혹시 내게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이게 돌고 돌아 내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었다. 사소한 일로 후환을 부를  있었다. 이러니 평소 추실장이 내게 자신의 직속 부하를 대하듯이 행세를 하더라도 이를 문제삼거나  나아가 반박  없는 노릇이었다. 부딪히면 혹시라도 내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평판으로 되돌아올까 보아 조심에 조심을 거듭했다. 이래서 나는 추실장의 태도에 반발하는 표정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 이런 내 처신에 관해 어느 주변 동료는 이를 소심하다거나 새가슴이라며 내게 빈정댔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저 이 회사에서 오랜 세월 살아남기  위해 평소 각오를 단단히 다진 나는 주변의 이런 이야기를 '차변'으로 듣고 '대변'으로 흘려보냈다. 직장 내에선 자신의 선명성만을 자랑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추실장에게서 내키지 않은 사과의 변이라도 들으니 나는 그간 맺혔던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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