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해프닝이 있던 다음날이 밝았다. 나는 내가 당한 어젯밤의 늦은 시각에 이루어진 예기치 않은 사태에 관해 원만한 해결책을 고민했다. 어찌하면추실장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으면서 내 마음속의 의사를 온전하게 전할 수 있을까, 장고를 거듭했다. 이 문제를 그저 덮어두거나 다음으로 미루는 것은 내가 원하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다음으로 미루거나 엉거주춤하게 봉합할 경우엔 계속해서 개운치 않은 상황이 지속될 것이 분명했다. 내 정체성에 결코 맞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암시를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나는 추실장에게 반복해서 전달했지만 추실장은 그럼에도 아예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숨은 뜻을 몰랐는지 알고도 무시했는지는 나로선 알아차릴 도리가 전혀 없었다. 이런 처신을 회사를 떠난 후에도 계속 고집했으니 나는 추실장의 이런 태도를 반길 일이 없었다.
평소 이런 내 처신에 관해 어느 주변 동료는 이를 소심하다거나 새가슴이라며 내게 빈정댔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저 이 회사에서 오랜 세월 살아남기 위해 평소 각오를 단단히 다진 나는 주변의 이런 이야기를 '차변'으로 듣고 '대변'으로 흘려보냈다. 직장 내에선 자신의 선명성만을 자랑할 일은 아니었다.그런데 오늘 추실장에게서 내키지 않은 사과의 변이라도 들으니 나는 그간 맺혔던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