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대학 2학년 1학기시절이었다. 강의가시작되기직전이었다. 나와일면식도없는학생이내게무례하게한마디건넸다.나는적지 않게당황할수밖에없었다.
“준수야, 우리 5년선배복학생이야. 그렇게얼굴을찡그리면어떡해?”
‘아니, 얼굴도생판모르는사이인데언제보았다고반말 지껄이지...’
2학년 1학기개강이시작되자복학생선배라는그룹이강의실에새로이합류를하기시작했다.
‘아무리선배라지만기본적인예의를지켜야되는것아니야?’
당시나의확고한생각이었다. 나중에서야나는이번건으로복학생선배와가까워지는계기가되었다.
우리입학동기들도여러가지사정으로고등학교를마치고 1년 내지 2년늦게서야캠퍼스에들어선친구들이드물지않았다. 아무리학번이무려 5년이나위인선배이지만처음보는후배에게기본예의는차리고자신의신분을밝히며용건을입밖에내는것이도리라는생각엔아직도변함이없다.
모름지기 각 조직마다 서열이나 위계질서를 따지는 나름의 독특한 기준은 따로 있었다. 대학에선 입학 연도가 언제인가를 이르는 ‘학번’이 가장 우선되는 잣대였다.'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란 말이떠올랐다. 아무리 개인 사정으로 1 ~ 2년 늦게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은 학생이라도 이는 자신의 귀책사유로 보았으며 이를 고려해 대접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단지 유일하게 인정하는 예외가 있었다.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늦으 감치 입학한 학생은 학번이 뒤로 밀리더라도 연령등을 참작하여 그에 합당한 예우를 받는 것이 대세였다.
이럴 줄알았으면군대문제를해결하고입학하는것이좋았을것같다는생각에도미쳤다. 그래서교교졸업후공백이전혀없이입학한동기들이복학생선배들은너무나깍듯이받들어모시는것을보게 되면마음은결코편치않았다. 이때문에나와같은학번입학동기친구들 간어색한상황이가끔연출되기도했다. 학번만을유일한잣대로처신을하는동기라도이런그룹 내에선온도차이가적지 않았다.
“우리동기들중연식이가제일눈애뜨이고걸리는것은사실이지”
“그럼에도나는연식이와크게다투지않고비교적잘지내잖아?”
“그거야준수너는연식이와동향이라그런것아니야?”
오늘은 1학기 중간고사를 마무리하고 내 단골집인 골뱅이무침이 간판 메뉴인 생맥주집 테이블에 너뎃 명이 둘러앉았다. 그간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터질 것이 드디어 터진 것이었다. 물밑에서 오가던 논란이 이제 토론의 테이블에 오른 것이었다.
연식이는다른동기들대비오직학번이란가장큰매직에매달려처신하는것이남들눈에유난히뜨일정도였다. 자신은현역동기들과복학생선배들사이에서가교 내지조정자역할을충실히해내다보니그리보였을것이라는의견을냈다. 이러니연식이입장에도전혀일리가없는것은아니었다. 그럼에도그정도가지나친것이문제라며세준이는이에반론을이어갔다. 어쨌거나이에관한서로의의견과입장을그간입밖에내지못하고속앓이를계속하는것보다는진일보 하게 되었으니그나마다행이었다.
“연식이형제술한잔받으세요 , 진호야너도
안주좀먹어”
“연식아저번리포트는다썼어?, 재하야. 무어재미있는일없어?”
“진호형, 형법케이스문제집좀빌려줄수있어요? 재하야. 내술잔좀받아.”
오늘은 3개의 학번 선후배가 한 곳에 모였다. 술자리를 벌였다. 각각1년 터울 학번의 세 그룹이 우리 후배 민우와 동기 연식이가 룸메로 있는 2인 1실의 하숙집에 모인 것이었다. 나는 한 발치 물러나서 오가는 대화를 그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학번을 기준으로 줄을 세워 보면 진호 선배,-> 연식, 준수 ->재하, 민우 후배 이렇게 정리가 되었다.
더구나 연식이는 진호 선배와 예전엔 하숙집에서 같은 방을 쓰던 룸메 사이였으니 서로 날줄과 씨줄로 얽히고설켰다. 다만 연식이와 재하 후배 사이엔 뚜렷한 공통점 하나가 있었다. 상대에 대한 호칭과 예우 처신의 기준을 오로지 논리 일관되게 학번에 두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러다 보니 고난도의 방정식이 되었고 서로의 호칭 때문에 현기증까지 일었다.이 현장을 제대로그려내거나 중계방송하기란 지난한 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