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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Nov 30. 2023

취업 오디션은 언제나 없어질까(3편)

-- @@투자신탁 입사기와 지금--

                     

                   

다른 곳과 달리 이 회사에선 2단계 면접시험을 거쳐야 했다. 일반(임원)면접과 전공면접이 그것이었다.      

본인이 작성한 석사학위 논문에 관해 개략적인 소개를 해보세요.”

지도 교수는 누구였지요?” 

    

전공면접관으로 나선 이는 경상 계통 전공 교수로 보였다. 그러니 법학 석사학위 논문에 관해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 곳은 사실대로 답변을 했다. 혹시 논문을 다른 사람이 대신 작성했는지 여부를 묻는듯 했다. 이 전공면접 코스에선 크게 책 잡힐 일이 없을 듯 했다.  

    

이번엔 최종 선발예정 인원의 2배수를 면점시험장에 불러냈다는 소문이 돌았다. 면접시험을 위한 대기실에 대상자들이 모두 모였다. 나는 중간 크기의 강당 전체를 한 번 휘익 둘러보았다. 그러고 나니 잠시 숨이 턱턱 막혔다. 필기시험 합격자 중 법학 전공자는 한명도 빠지지 않고 20명 모두 대기실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혹시 다른 회사로 옮겨가거나 특별한 개인 사정으로 면접 시험을 포기하기로 한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긴장시켰다.  

법학전공자는 정획히 10명을 최종 선발했다.

         

서류전형이나 필기시험에 비해 가장 넘기 어려운 허들인 면접시험이 치러지는 치열한 경쟁의 현장에 나도 자리 한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무리엔 대학 같은과 1년 후배도 끼어 있었다.      

검정고시 출신은 뽑기를 꺼린다고 해서 제 연고지인 부산 소재 고교 이름을 임의로 하나 적어 넣었는데 괜찮겠지요?”

같은 면접장에서 만난 대학 후배가 내게 물었다. 하지만 이는 턱도 없는 이야기였다. 회사 인사담당자들은 지원자들 고교생활기록부 사본까지 손이 쥐고 있었다.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었다. 결국 이 후배는 불합격의 고배를 들었다.

     

“@@고교 나오셨네요? 그 학교 수준에 관해 이야기 해 줄 수 있나요?”

전기 고교인 A고교에 응시하여 탈락한 학생들이 주로 지원하는 학교입니다.”

내 대답을 듣던 임원은 재미있다듯이 아주 호쾌하게 웃어재꼈다. 나는 순간 매우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도 덩달아 따라 웃는 이상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저 충청남도에 소재한 고교중 2 ~ 4위 군에 랭크됩니다.’라고 응답했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을 ... 그저 긁어 부스럼을 만든 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입밖에 낸 말은 주어담을 수가 없었다. 내 답변에 면접관이 재미있어 하며 터진 웃음보에 나는 영문도 모르는 사람처럼 그저 따라 웃고만 일이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혹시 합격 여부에 조금이라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적지않게 걱정이 되었다. 임원인 당신은 내가 한 대꾸가 무엇이 이상하다고 웃느냐고 따지는 태도를 보이는 것보단 그나마 실점을 덜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스스로 위로도 해보았다.

     

노동조합이 왜 필요한가요? 노조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근로 조건의 유지와 향상입니다.”

나는 노동법개론 시간에 익힌대로 단순 명쾌하게 교과서적인 딥변을 이어갔다.

     

임금 수준도 업계 최상위권이고요 복지후생도 다른 회사에 밀리지 않는데도 노조가 굳이 필요할까요?

그래도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란 대답이 순간 묵구멍 윗 부분까지 올라왔다.

그런 회사라면 노조가 없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로 순식간에 바꾸어 마무리했다. 혹시 강성 이미지가 부각되면 이 회사에서 나를 뽑아주지 않을 것 같다는 염려가 이런 태도 변화의 배후였다. 우선 회사에 들어가고 볼 일이었다.   

   

“1980 5. 18 광주사태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내 입사 동기에겐 이런 시국관이나 정치성향이 짙은 질문도 던졌다고 나중에서야 전해 들었다. 이에 관해선 양시론이니 양비론의 논쟁이 한창일 때였다. 결국 이런 질문에도 모범답안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론에 이르는 논리전개 등이 체크포인트였던 것이었다.  

    

면접시간이 길어지면 합격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는 것이 세간에 떠도는 통설이었다. 면접관의 질문에 지원자의 답변이 매우 이례적이거나 논점을 완전히 벗어난 경우엔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내가 면접장소에서 머문 시간은 적정했다는 자평을 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방금 전 면접 종료를 알리는 임원의 시그널을 받았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면접관쪽을 향해 공손하게 목례를 올렸다. 그 다음이 더욱 중요했다. 얼마 전 대학 동기가 내게 알려준 중요한 팁 하나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뒷걸음질을 하여 내 뒷모습이 면접관들에게 보이지 않게 움직인 다음 출입문 손잡이를 두 손으로 에워싸잡아 조심스럽게 돌리며 열었다. 시험장에서 몸을 완전히 빠져나온 후 부드럽게 문을 닫았다. 드디어 시험장을 벗어났고 긴장이 풀렸다. 서류전형, 필기시험, 두 번에 걸친 면접 시험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이제 내게 진인사 대천명의 입장 밖에 나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오빠, 축하해 집안의 작은 경사네...”

기다리던 최종합격 소식을 알리는 전보를 받아든 여동생이 호들갑을 떨었다. 물론 이멜, 톡 등이 등장하기 전 시절이었다. 전보가 가장 빠른 메시지 전달 수단이었다.

      

병역 의무를 깔끔이 마무리한 후 나는 사법시험 준비 수험생활을 좀 더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이었다. 금융기관 취업 시험에 최종 합격된 것을 두고 집안의 작은 경사운운하는 여동생의 평가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 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축하 멘트에도 어정쩡하게 대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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