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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Dec 10. 2023

오늘은 ‘동글 배기’ 언제 하나요?

진정한 영업력이란 무엇인가?

                     

“신 과장, 이 분은 오늘 왜 이리 큰 자금을 인출했지? 어떡해서든 틀어막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 부지점장님, 덩치가 큰 부동산 계약을 했다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말릴 수가 있어요?”
 

내가 수도권 점포에서 4급 책임자 중고참으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오늘도 영업점 업무가 마감되었다. 책임자들을 제외한 직원들은 모두 귀가를 마친 오후 늦은 시각이었다. 영업장 3선에 자리한 곳에서 이른바 ‘동글 배기 회의가 시작되었다. 이 회의를 기획하고 주관하는 부지점장 말고 이 시간을 반기는 책임자는 한 명도 없을듯했다. 고객관리자인 각각의 책임자에게 자신이 관리하는 고객의 입출금내역에 관해 그 이유를 묻고 답변하는 자리였다.     

 

저녁 늦은 시각까지 이어지는 이 원탁회의를 지점 업무용 차량 기사마저도 ‘동글 배기 회의’ 운운하며 빈정거릴 정도였다. 회의의 필요성과 진정한 의도를 의심하는 책임자는 나뿐이 아니었다.

      

저는 책임자 이하 전 직원과 지점장 사이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내겠습니다.”

이제 우리 점포로 전입 온 지 6개월을 넘어서는 부지점장의 부임 일성이었다. 공무원 조직이나 다른 직장처럼 우리 회사도 인사 적체가 늘 일상의 화두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고육지책으로 이른바 부지점장'이란 호칭을 도입하기로 했다. 호칭이라도 세분화자는 것이었다. 종래 영업점 책임자 중 2급과 3급은 모두 차장으로 불렀으나 2급 차장만을 따로 떼내어 그 이름도 생경한 '부지점장'으로 부르기로 했다.     


금융기관인 우리 회사는 영업점을 평가할 때 외형과 수익부문, 기타 정책 이행실적 등 크게 세 부문으로 구분했다. 그래서 무릇 영업점의 존재 이유는 기존고객의 이탈방지와 외연 확장을 위한 신규고객의 유치로 요약되었다. 외형을 늘리는 것도 결국은 수익 증대와 창출에 기여하기 위함임은 물론이었다.     

 

영업점 실적을 기준으로 실상필벌 조치가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금융기관의 보통 시스템이었다. 영업점 실적이 부진할 경우엔 그 대가는 가혹하리만큼 철저했다. 우선 점포장은 여건이 좋지 않은 점포나 타 부서로 전출이 되었고 때론 지배인 지위를 반납 후 대기발령까지 각오해야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해당 점포에 근무 중인 책임자는 물론 직원들 모두는 승진 등을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이제 4급 책임자 중 중간 등급을 넘어서는 나로선 이 원탁회가 굳이 왜 필요한지,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허구한 날 이런 회의를 이어가 보았자 고객수 수탁고 수익 등을 늘리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책임자들은 외부 영업 활동은 물론 영업시간 내내 내점 고객에 관한 응대, 상담, 민원성 질문 등에 시달려 마감 시각엔 파김치가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렇게 지친 모든 책임자들을 한데 모아 놓고선 결코 짧지 않은 시간에 걸쳐 고객 자금의 입출금 내역과 그 원인을 시시콜콜 따지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이 회의가 금융기관 영업점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에 관해 전혀 보탬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요즘 부지점장이 마감 후에 주관하는 그 회의 때문에 입이 쭉 나와서야 되겠어요?”

점포를 이끌고 실적이나 조직관리 능력 등을 평가받는 지점장으로선 매일의 실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모든 부문에서 만족할만한 계수가 나오지 않아 늘 노심초사하는 우리 점장이 오늘 아침 책임자 미팅에서 휘익 한마디 던졌다.     


우리 점포의 최근 사정이 이렇더라도 이 원탁회의는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회의를 위한 회의로 단정해도 결코 잘 못된 판단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영업점의 존재 이유에 어떠한 형태라도 기여해야만 그 미팅의 효용을 인정받을 수 있으련만 전혀 그러지가 못했다. 특히나 자신이 관리하는 고객이 큰 자금을 인출이라도 하면 그 이유와 방어실패를 따져 묻고 마치 책임이라도 지어야 할 것처럼 운운하는 것을 볼 때 더욱 그랬다. 어찌 보면 군대 내무반에서 아침저녁으로 이어지는 점호의 기능에 다름이 없었다. 이른바 정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딴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고 군기를 바로 잡는 것이 그 유일한 기능으로 보였다.  

    

직원이나 지점 전체 더 나아가 회사를 위해선 이 보다 다른 활동이 더욱 중요할 듯했다. 차라리 이런 아까운 시간을 할애하여 자신의 인맥을 찾아 나서고 크고 작은 모임이나 경조사에 참석하여 잠재 고객을 늘려나가는 것이 훨씬 과녁을 정확히 겨누는 영업활동으로 보였다. 자신의 관리고객으로부터 새로운 잠재고객을 소개받는 술자리에 동석하는 것이 자신의 실적은 물론 점포 실적을 높이는데도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보였다.    

자신이 관리 중인 고객이 이탈하지 않도록 방어를 하고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는 것이 금융기관 책임자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임은 당연하다. 이에 반해 이런 원탁회의는 금융기관 영업점 책임자 기본 책무의 이행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방해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금융시장, 경쟁사 동향, 신상품 판매전략, 토지보상에 관한 정보 등을 서로 공유하고 고객 유치 성공 실패 사례, 민원 해결 노하우 등을 논의하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되는 것이 책임자 미팅의 본래 기능이자 근본적인 존재 이유로 보는 것이 맞았다. 당시 겨우 중참 4급 책임자에 불과한 내가 이렇게 원탁회의 효용이 없음을 이유로 들어 이를 아예 없애자고 나서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우리 회사 조직의 생리에 비추어 볼 때 이는 항명행위로 낙인찍히기에 아주 십상이었다. 이 원탁회의는 퇴근 후 영업점 밖에서 이어가는 영업활동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도 있음에 우리 지점 다른 책임자들도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한 영업점 업무가 마감되면 책임자들이 각자 자신의 일정을 이어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결국은 영업을 위한 제대로 된 선택일 것이었다. 일과 시간에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며 자연스럽게 영업점 밖의 또 다른 필드에서 영업이 아닌 것 같은 영업을 원만하게 이어가도록 일정을 풀어 주는 것이 상급 책임자 내지 점포장의 세련된 리더십인 것이었다.    

  

그렇다고 영업전략이나 기타 정보 공유를 위해 점포 내에서 모이는 책임자 미팅의 필요성마저 부인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보다는 발로 뛰는 영업이나 고객이나 자금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서는 타깃이 있는 영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과녁을 정확히 조준하여 화살을 날리는 효율적인 영업에 나서는 것이 절실한 때였다.  

    

회의를 위한 회의는 결국 아까운 시간의 낭비를 가져오고 영업력의 약화, 전의의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아쉽게도 우리 부지점장이 발로 뛰는 영업을 실천하기 위해 외부로 나서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아쉬울 따름이었다.


 최대리, 어서 모이지 원탁회의 하자고...”

부지점장은 오늘도 원탁 앞에 자리를 잡고 나를 큰 목소리로 호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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