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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Jan 19. 2024

원서강독과 삼청교육대(1편)

                        

“야 인마, 너 삼청교육대 끌려가고 싶어?”

요즘 걸핏하면 이런 말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교수님, 이 삼청교육대 문제점에 관해 이번 기회에 이야기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대학교 2학년 1학기 독법 특강 시간이었다. 독일어 원문으로 된 교재로 리딩과 번역을 했다. 우리 법체계와 독일의 그것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2시간 속강으로 100분간 강의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우리와 같은 해에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은 입학 동기 예비역 형이 먼저 문제 제기를 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더구나 법학교수로서 여러분이 이 주제를 먼저 꺼내기 전 벌써부터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야 는데, 부끄럽고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오늘 독법 특강 시간엔 교재는 일단 덮고 이 삼청교육대 제도의 실상과 법적 문제점에 관한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강의를 맡고 있는 상법교수는 순간 얼굴이 상기되었다. 어쩌면 독일어 원서 진도 몇 쪽을 나가는 것보다 이런 것이 훨씬 더 값어치 있고 중요할 듯했다.   

   

삼청교육대란 대한민국 제4공화국 말기 1980년 10월부터 1981  4월까지 국보위 위원장이었던 전두환이 만든 반 인륜적 불법기구를 이른다. 사회악 일소와 치안보호라는 명분으로 설립했으나 범죄자 이외 무고한 시민까지 마구잡이로 검거, 순화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가혹한 군사훈련을 받게 하였다. 무고한 다수의 희생자를 낸 불법적인 인권유린 사례였다. 법적 근거가 없고 위헌적인 초법적 징벌기구로 실질적 정치범수용소에 해당했다.   

   

이 삼청교육대 사건을 이른바 국가 최고통치권자의 ‘통치행위’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준호의 의견이었다. 준호는 이 삼청교육대가 정당하다거나 자신이 이를 지지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고 미리 전제를 달았다. 그저 ‘통치행위’로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가정 하에 토론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과연 통치행위로 볼 것인가에 관해 토론은  이어졌다.   

  

통치행위란 입법, 사법, 행정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제4의 국가 작용으로 고도의 정치성 때문에 사법심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통치행위의 개념을 인정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사법자제설, 재량행위설, 권력분립설 등 긍정설과 통치행위 부정설이 그것이다. 부정설이 논리적으로 타당해 보이나 오늘날 통치 행위가 대부분 국가에서 판례상 인정되는 현실에 비추어 이 학설은 각국의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정부나 국회의 권한 행사 가운데 법원의 심판 대상으로 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의 경우엔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비판의 대상으로 유보하여 두는 것이 권력 분립의 정신이나 사법권의 본질에 비추어 보다 합목적적으로 볼 것이라는 것 이 다수의 견해이다.     

 

원칙적으로 모든 국가작용은 사법심사가 가능하나, 사법의 정치화로 인한 사법권의 독립성 침해를 우려하여 사법권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 대법원의 입장이지만, 사법 자제설에 의하더라도 이 삼청교육대의 설치 운용이 과연 통치행위에 해당하는가 여부, 통치행위 요건 충족 여부는 사법심사가 가능하다고 볼 것이다.  

   

결국 이 삼청교육대의 설치 운용행위를 통치행위로 보기는 어렵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백번 양보하여 설령 통치행위로 인정하더라도 무조건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는 것은 아니다.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에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관련되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의 심사대상이 된다고 하는 것이 현재 판례의 태도이다. 결국 이 삼청교육대 사건은 국민 기본권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하는 행위로 어떠한 변명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1980년 8월 1일부터 1981년 1월 25일까지 총 6만 755명이 법원의 영장 발부 없이 체포되어 그중 순화교육 대상자로 분류된 3만 9,742명이 군부대 내에서 혹독한 군사훈련등을 받았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였다. 삼청교육대의 근거 법령이었던 1980년 계엄포고 제13호가 2018년 12월 28일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위헌임이 확인되었다. 법적으로 무효이자 헌법과  법치주의를 유린시킨 국가폭력으로 평가되었다. 12 12 군사반란과 5. 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으로 집권한 신군부세력이 집권의 정당성이 없어 국민들의 저항 의지를 난폭하게 누르기 위해 만든 초법적 징벌기구였다.   

  

이 삼청교육대의 설치 운용은 아주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다. 우선 삼청교육대 입소대상자 선정기준이 결정적인 문제였다. 이들 속에는 범죄자만 연행된 것은 아니었다. 순화 교육 대상자로 구체적으로 소탕 대상자가 명시되지 않았다. 현행범에 재범 우려자, 깡패 및 집단 전체, 잘못을 반성하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없는 자, 주민의 지탄을 받는 자, 반정부 및 무정부주의자, 전두환을 비방한 자 및 허위사실 유포자 등이 대상자였다. ‘개전의 정이 없다'는 의미는 반성하고 뉘우치는 태도가 없다는 뜻으로 권력자가 보기에 껄끄럽고 불온한 사람에게 쓰는 용어였다. 군인, 경찰, 공무원 등 삼청교육대를 주관하는 사람들에게 찍혀버리면 마구잡이로 연행이 되었고 개인적 복수심에 의해서도 지목당할 수 있는 너무나 모호했던 기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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