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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Jan 21. 2024

원서강독과 삼청교육대(2편)

                           

적법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 삼청계획 5호는 국책에 관한 사항으로서 입안 과정에서 국무회의에 부의되었어야 하나 이는 이행되지 않았다. 계엄사령관은 국보위의 삼청계5호에 따라 198084일 계엄포고 제13호를 발령하여 불량배를 일제 검거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포고령이 발령되기 전인 81일부터 이미 불량배 일제 검거에 나섰다. 전체 피검자 중 전과사실이 없는 자가 35.9%에 달해 불량배 소탕이라는 명분과는 달리 억울하게 검거된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내팽겨졌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란 판결로써 확정된 범죄는 다시 처벌할 수 없고, 본인의 이익을 위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그 행위를 재심사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형사법상의 대원칙이다. 이는 개인의 인권보호와 법적안정성 유지를 위해 인정되는 것이다. 이미 판결이 확정된 사안임에도 전과자 등이라는 이유만으로 삼청교육대에 징집하여 혹독한 군사훈련과 고문을 이어갔다. 이중 삼중 처벌을 감행했다.  

   

1980년부터는 재소자들을 상대로 '재소자 특별순화교육'이 뒤를 이었다. B급 심청교육대생들은 7,478명이 사회보호법에 따라 정상적인 재판절차 없이 1~5년의 보호감호처분을 받고 군부대에 분산 수용되었다가 198112월에 신설된 청송감호소로 이감되었다.   

  

1988 정기국회당시 국방부에서는 교육  5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삼청교육대의 설치가 불법이며, 교육과정에서 각종 인권유린이 있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징집과정에서부터 문제가 많았다. 190개의 경찰서에 할당해 약 80만 명이 징집자 선정에 투입되었는데 이것은 군. 경 동원 인원 자체가 전쟁 수준이었고 서울의 경우 경찰서마다 300여 명 정도를 검거해야 하는 할당제로 운영이 되었다. 할당제는 검거 인원을 채우기 위해 기준과 전혀 상관없는 무연고자들, 가난한 사람들 등 불분명한 죄목으로 범죄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을 연행했다. 이처럼 무작위로 일반 시민들을 끌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가죽점퍼 입은 사람, 오토바이 타는 사람, 칼자국, 문신이 있는 사람 등이 집중 타깃이 되었다.   

  

20215 발견된 삼청교육대엔 신군부 세력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을 총기 소지자, 폭력배로 둔갑시켜 삼청교육대로 보냈다는 내용마저 발견되었다. 당시 시민군을 제압하려 광주에 투입되었던 계엄군이 삼청교육대 교관이 되어 교화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잔혹한 훈련을 받은 교관들의 증언도 잇따랐다. 그때 삼청교육대상자로 선정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지옥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옷을 벗긴 다음 찬물을 들어붓거나 각목과 쇠파이프로 폭행은 물론 훈련을 빙자한 무차별 가혹 행위가 계속되었고 결국 도망가야겠다고 수용자들이 결심하지만 철조망 근처만 가도 실탄을 날렸다. 교관들이 훈련생들이 먹던 밥을 배식통에 쏟아붓기도 했다.   

  

모든 입소자들은 삼청교육대 생활수칙을 지켜야 했다. 선동 및 도망치는 자,  반항하는 자는 사살한다. 수련생은 교육대 요원  명령에 절대복종한다. 음주 및 흡연은 금한다. 신문, 잡지, 구독 및 라디오 티브이 시청을 금한다. 허가되지 않은 면회, 외출이나 외인(외부인) 접촉을 금한다. 동료 간의 장난 행위  및 시비, 기간 장병에 대한 반항자는 엄단한다. 집단행위를 금한다. 결국은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항목을 총동원했다.   

  

부대 식사 구호가 따로 정해져 있었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자. 알맞게 먹고 헛되게 버리지 말자. 돼지보다 못하면 돼지고기를 먹지 말고, 소보다 못하면 소고기를 먹지  말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는다. 주면  주는 대로 먹는다. 이러니 이 삼청교육대는 생지옥에 다름이 아니었다.     


나아가 구타와 군기 훈련을 넘어 고문까지 자행했다. 강제삭발 목봉체조 PT 체조 등 잔인하고 가혹한 훈련은 물론이고 고문까지 이어졌다. 원산폭격 한강철교 쥐 잡기 볼펜 위에 손가락으로 깍지 끼고 1시간 동안 엎드려  뻗히기, 취침 전 반성문 작성은 기본이었다. 삼청교육대의 잔인성과 야만성은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입소생들은 온갖 신체적 고초를 겪어야 했고 정화위원으로 뽑힌 앞잡이들은 주민들을 골라 삼청교육대로 보내는  초법적인  권한을 보유하고 있었다. 최악의 범죄 카트텔이었다. 순화교육  이후 근로봉사나 감호과정에도 사망자가 발생하였음은 물론이었다.  

    

국방부의 공식집계 사망자는 54명에 불과했으나 현장  및 후유증 사망자는 무려 1,000명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무연고자 거나 부랑아 같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죽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었다. ‘너희들은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군인정신에 따라 하라 그러다가 대원들이 죽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지침에서 보듯이 교관들에게 대원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부여했다. 삼청교육대 운용에 관해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라고 지지하는데 언론이 앞장섰다. 결국 언론은 야만적인 탄압의 공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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