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살아계실 적인 오래전 거의 맹지에 가까운 곳에 단층 슬래브 단독주택을 마련했다. 아버지가 별세한 후 십여 년이 지나던 해 추석 명절이었다. 고향 본가의 기름보일러가 갑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교체하기로 했다.
거의 기계치인 나와 달리 우리 집 막내 동생은 어려서부터 기계를 잘 다루는 등 남달리 손재주가 좋았다. 업자를 부르지 않고 자신의 절친과 힘을 합쳐 이 보일러를 직접 구입하여 조립하고 설치하기로 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터졌다. 아런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바로 우리 앞집에 자리한 철물점 주인장이 발끈하고 나섰다.
“내가 보일러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나한테 일을 맡기지 않고 다른 곳에서 보일러를 사 온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아니 아저씨, 우리가 우리 돈을 들여 보일러를 교체한다는 데 무엇이 문제인가요?”
이 보일러 교체 건과 관련하여 생긴 작은 다툼은 급기야 작지 않은 분쟁으로 발전했다. 종래 우리 앞집 철물점과 그쪽 좌측에 자리한 정육점 이 세 가구 사인엔 주택 부지의 경계를 두고 다툼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 세 가구 대지 경계의 중간중간 국유지가 일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세 가구가 국유지의 일부를 각자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던 중이었다. 지금까지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는 국유지 모두를 3자가 같이 국가로부터 불하받아 각자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다시 분필 하여 등기를 이전해 정리하기로 합의한 바 있었다. 이 결과가 나오기 전에 아버지가 별세하는 바람에 이 합의 이행은 수포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별세하던 해 나는 두 앞집 주인장과 군청에 직접 출두하여 종래와 같은 내용의 합의서를 다시 작성했다. ‘복지부동’을 재직 중 평생 좌우명으로 내세우고 공직생활을 이어가는 공무원의 보신주의 탓에 이도 보기 좋게 다시 무산되었다. 국유지란 일반인에게 불하할 없다는 핑계를 내세웠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세 가구를 비롯하여 다른 주변인의 민원 제기를 두려워 한 것으로보였다. 그다음 절차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보일러 건으로 철물점 진사장은 우리에게 보복조치를 들고 나왔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집에 이르는 통로에 자신의 사유지가 일부 편입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통로 입구를 폐쇄하여 버렸다.말목과목재널빤지등으로 통로에 벽을 세웠고 피복된 전선으로 경계를 정해 겨우 한 사람만이 보행할 수 있도록 작업을 했다. 이 본가엔 연로하신 어머니 혼자서 살고 있었다. 전선으로 구획을 나누어 겨우 한 사람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 이외엔 모두 틀어막았다. 어두운 밤에는 제대로 보행을 하지 못하는 어머니는 가택에 연금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사장님도 본인 사유지만 딛고 다니나요? “
”같은 기독교신자로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
여러 번에 걸친 우리 형제들의 설득에도 이 진사장은 이 시설물을 걷어내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무려 3년여간의 긴 법적 다툼 끝에 우리는 너비 1.2미터의 ‘주위토지통행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자신의 사유지이지만 공로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는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최근 두 번째 귀촌을 했다. 이번 귀촌 기간엔 한시적으로 내가 할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곳 시골도 쓰레기 분리수거제도가 도입된 것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서울 등 대도시의 그것보다 우리 고향 동네의 쓰레기 분리수거 시스템은 오히려 훨씬 까다로웠다.대도시는 아파트 단위의 배출인 반면 고향은 철저히 가구당 그것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다른 점이었다.
대도시도 아파트마다 디테일에 있어 차이가 있기는 했다. 가구마다 쓰레기를 배출할 수 있는 날은 1주일에 2일 정도로 한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즈음은 어는 날이든 모두 배출이 가능한 것이 대세가 되었다.
대도시는 아파트 단지 내에 일반쓰레기봉투, 스티로폼,페트병, 비닐, 캔류, 종이류 등 구분하여 구획된 수거함이나 포대에 집어넣는 것만으로 배출이 종료된다. 이에 반해 이곳은 일반쓰레기봉투는 다르지 않았으나 다른 품목은 가구별 품목별로 미리 준비된 투명 비닐봉지에 담아 묶어내야 했다.유리나 건축 폐자재 등은 별도의 포대를 구입하여야 했다. 게다가 종이박스나 종이류는 노끈 등으로 깔끔하게 묶어내야만 수거해 갔다. 별도의 수거함이나 공동 포대등은 전혀 없었다.
나는 이 까다로운 지침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무던 노력을 했다. 이에서 한치라도 벗어나지 않으려 40리터 70리터 투명 비닐봉지도 충분히 구입하는 등 이 쓰레기분리수거 실행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는 별도의 봉투를 구입하여 배출해야 되는 것은 기본이었다.
너비 1.2미터 통로 출입구에서 지방도에 나가기 직전의 끄트머리 장소에 각종 쓰레기봉투를 정성스럽게 쌓아 놓은 것이 어느덧 익숙해졌다. 그도 일주일에 이틀만을 정하여 수거해 갔다.음식물 쓰레기의 배출은 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수시로 출몰하는 들고양이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정해진 날 새벽을 택해 내놓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