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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ug 04. 2024

수신 거절해야 할 호출(1편)

일요일 오후 가족 모두가 영화관람 중이었어, 그때 총괄본부장 호출이 휴대폰에 떴지, 내가 받을 이유가 있겠어? 무슨 이야기를 내게 할지 뻔했으니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우리 회사에선 이 금융위기에다 계열사 간 합병작업을 이유로 희망퇴직이란 카드를 꺼내 들었다. 회사 측에선 무려 200여 명이란 엄청난 목표를 세웠다. 사장은 이번 이벤트의 컨트럴타워 총책임자로 영업총괄본부장을 지명한 후 대상자로 선정된 직원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이른바 살생부라 불리는 희망퇴직자 명단은 이미 지역본부에 하달되었다. 지역본부장과 점포장들이 번갈아가며 당근과 채찍을 동원하여 대상자들을 코너로 몰아가고 있었다. 직원이 회사로 출근하여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근무일은 물론 주말, 공휴일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압박은 그 강도를 더해갔다. 자신들의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고자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지역본부장, 부서장과 달리 총괄본부장은 무슨 이유인지 사내 전회번호가 아닌 대상자 휴대폰에 호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에 대상자들 대부분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총괄본부장의 휴대폰 호출에 수신을 아예 거절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처 방법이라는 것이 이미 공통된 인식이었다. 총괄본부장이 왜 자신을 호출하는지 그 이유 목적은 대상자들이 이미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총괄본부장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자 향후 자신의 회사생활 생명줄을 이어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뻔했다. 나 역시 일요일 오후 가족의 극장 나들이 한가운데 내 휴대폰에 뜬 총괄본부장의 호출을 아예 무시했다.     

      

우리 회사는 매년 전 직원을 대상으로 전문건강검진 기관을 여러 곳을 정해서 자신이 원하는 곳을 찾아 종합건강검진을 받도록 하고 있었다. 이는 직원에게 주어지는 복지혜택 중 손꼽을만한 항목이었다. 검진일로부터 대략 만 2주일이 경과되는 시점부터 검사결과지를 택배를 통해 받아 들 수 있었다. 대부분 직원들은 자신이 택한 검진 기관의 연락처를 휴대폰에 입력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오늘 저녁엔 지난번 부친상을 치른 직장동료가 고맙다는 뜻으로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최근 마무리된 종합건강검진의 결과에 관한 자신의 성적표를 알리고 서로 조언하는 국면으로 화제가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검진기관에서 걸려온 전화도 희망퇴직 때처럼 무시해 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요?

아니지요, 최선배 님 그 전화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곳에 같이 초대되어 나와 같은 테이블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있는 박 부장이 내게 만면에 미소를 띠고 큰 동작으로 손사래를 쳐가며 내 물음에 자신 있게 대꾸했다.  직원이 검사결과지를 받아 들기 전이라도 유의미한 소견이 나왔다면 검진기관 상담의사로부터 먼저 호출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런 경우 자신이 모르는 번호라고 무작정 호출을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었다.

     

평소 자신이 등록하지 않은 번호에서 결려오는 호출에 응대하는 방식엔 천차만별이었다. 걸려오는 전화는 모든 받는다는 유형부터 아예 받지 않는다는 타입도 있었고 스팸이나 보험 광고 여론 조사 등으로 보이는 호출에만 거절한다는 등이 그것이었다.    

  

평소 나는 영업마인드로 당당히 무장되어 있었다. 일정한 선을 넘어서는 스토킹, 터무니없는 공갈 협박, 스팸 등은 아예 번호를 차단해버려 원천봉쇄하는 것이 나 역시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070 060 080 등 눈에 뜨일 정도의 번호가 아니라면 수신을 하는 쪽을 택했다. 그간 내가 뿌려놓은 영업활동의 결과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함이기도 했다. 때론 거액자산가이거나 대형법인으로부터 호출일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전 글로벌 금융위기를 핑계로 회사에서 밀어붙였던 희망퇴직 권유 호출이 떠올랐다. 등록되지 않은 번호에서 걸려오는 호출엔 종래 희망퇴직을 권유하는 총괄본부장의 호출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농담에 화들짝 놀란 듯이 박 부장은 제어되지 않은 웃음을 터뜨리며 내게 반론은 제기한 것이었다.     


30대 초 중반 젊은 시절엔 건강검진 결과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검사항목마다 모두 정상이란 의견이 차지하고 있었고 차트의 한가운데를 결과치가 정주행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은 전연 딴판으로 달라졌다. ‘추적관찰’, ‘재검필요등 의견이 정상이란 그것을 대부분 밀어내고 있었다. 게다가 결과보고서가 택배로 도착하기 이전 때론 수령 직후 검진기관의 호출을 받는 것이 흔치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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