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 Aug 04. 2024

수신 거절해야 할 호출(2편 완)

  

이런 경우 희망퇴직을 거부하는 뜻으로 호출에 대한 수신을 거부했던 것처럼 똑같은 대처를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었다. 등록되지 않은 곳의 호출이라도 반드시 호출에 응하고 따르는 것이 옳은 대처방식이었다.

      

희망퇴직은 직장생활 생사가 걸린 문제인 반면 건강검진 결과에 대한 대처방식은 경우에 따라 사람의 생명이 오가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호출엔 반드시 응해야 하는 것이었다. 결과지 수령 시까지 별도의 호출이 없었다면 일단 큰 비는 피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나는 퇴직 후에도 현역시절 이용했던 검진기관을 같은 비용으로 이용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의 내 자료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과거와 비교하는 추적관찰이 비교적 쉬울 듯했다. 최근 나는 수도권의 보금자리와 고향 시골을 수시로 오가다 보니 이번 건강검사 결과지를 고향에서 받기로 등록을 한 바 있다. 검진일로부터 만 2주일이 거의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주말엔 다시 수도권으로 거소를 옮겨야 하는 사정 때문에 수령지 변경을 요구하고자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바로 어제 날짜로 발송의뢰가 마무리되었다는 답신을 들었다. 이 때문에 귀경 일정을 다소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번 검진에서 나는 특정 부위의 조직검사를 마쳤다는 의료진의 설명을 검사당일 현장에서 전해 들었다. 그러니 다른 때와 달리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점심식사를 준비 중 검진기관의 호출번호가 부재중에 찍힌 사실을 늦게서야 발견했다. 혹시 화급을 다툴 만큼 좋지 않은 소견이 있어 나를 찾은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자발적인 수신 거부가 아니었다. 나를 호출한 진정한 이유를 알아보고자 다시 리턴콜을 할까 말까 매우 망설여졌다.     


혹시 내가 이번엔 결과지 도착 이전 호출 대상인지를 물었다. 어제 결과지 발송이 마무리되었으니 상담 의사의 본격적인 호출이 시작될 거라는 답변을 들었다. 이러니 내 휴대폰이 찍힌 부재중 호출이 이런 호출의 일환이 아닌지가 걱정이 되었다. 리턴콜에 나서기가 더욱 두려워졌다. 요즘 올림픽 양궁경기장에서 선수들 심박수 변동이 화제에 오르고 있다. 내 심박수가 갑자기 튀어 올랐다.  

    

요즘 대부분의 국가기관 지자체 회사 단체 등은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고객과 소통 시 여러 가지 방식을 도입하고 있었다. 고객과 전화로 직접 소통하는 대신 기관이 자체 등록한 채널 알림톡 등을 활용한 방식을 앞다투어 도입하는 것이 어느덧 대세가 되었다.  


전화 연결이 어려워져 결과배송지 변경을 요구한 알림톡에 내가 올린 문의에 검진기관이 톡으로 제대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자 이에 대한 답신으로 나를 호출한 것이었다. 배송지 변경에 관해 검진기관 전용 채널을 통한 문의에 확인 안내 차원의 호출로 밝혀졌다. 그제야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 격이었다.      

    

종이결과지가 내 손에 들어오기 전 검진 기관의 호출도 마치 희망퇴직을 독려하는 호출처럼 내가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 아님은 똑같았다.  자신이 모르고 있거나 핸드폰에 연락처로 등록되지 않은 곳의 호출에 관해서는 아예 수신을 거절하고 있다는 이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각종 광고, 여론조사 보이스피싱 등이 일상화된 탓도 있을 것이었다.

    

나는 현직에 몸담고 있을 때는 물론 은퇴 이후에도 수신 거절을 하는 경우는 비교적 적은 편에 속했다. 060 070 080 등의 호출이 아닌 한 통화를 이어가고 있다. 근무기간 중 내내 치열하게 영업에 매진해야 했던 운명인 나로선 수신을 거부하는 범위가 매우 좁았다. 혹시 내가 모르고 있는 곳의 호출이 우리 회사와의 큰 거래로 성사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 간 동창회 모임에 얼굴을 내밀지 않던 오래된 고향 친구의 호출일 수도 있었다. 고향동창회 총무 3번의 이력이 있는 나로선 새로운 회원을 계속해서 늘려가야 하는 책임감도 이에 한몫했다.  

    

어쩌면 나 혼자만의 희망사항인지도 몰랐다. 아예 거절하고 싶은 호출이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어디 좋은 방법이 없는가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어떠한 불이익을 받을 염려등으로 호출을 거부하는 사례가 줄어들거나 아예 없어졌으면 하는 것이 나의 무리한 희망사항이 아니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또 하나의  바람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수신 거절해야 할 호출(1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