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의 비결

by 그루터기

“지점장님, 우리 김 부장 좀 잘 봐주세요.”

“아 예, 그럼요 두루두루 모든 부문에서 영업을 잘하고 있습니다.”


18년 전 우리 회사는 주인이 바뀌었다. 국내 굴지의 금융그룹에 편입된 것이다. 은행은 물론 신용카드사와 같은 관계 회사가 되었다. 얼마 전 우리 회사는 이미 증권회사로 전환이 되었다. 그래서 업무영역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게다가 이번 금융그룹 내에 편입이 되다 보니 같은 그룹 내에서 콜라보 영업이라는 부문이 새로이 생겼다. 개별 회사의 고유 업무를 각자 서로를 도와 시너지 효과를 내고자 했다.


이런 계열 회사 내의 협업 업무 부문도 영업점의 평가 항목에 새로이 들어왔다. 카드사 직원은 물론 은행 직원들은 입사 이래 신용카드 발급 권유 업무에 줄곧 시달렸다. 그러다 보니 그 영업기반은 바닥이 드러났다. 친구를 비롯하여 친척 친지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동원한 형편이었다. 이에 새로이 편입된 우리 회사에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 우리 회사가 새로운 식구가 되다 보니 천군만마를 얻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의 인맥을 동원하면 이제 다시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었다

.

나는 오늘 법인고객과 신규 고객의 개척을 하고자 지점장과 같이 외부 영업에 나섰다. 자투리 시간이 남아 여의도에 자리한 정부 유관기관에 들렀다. 약 열흘 전에 신용카드 신청서를 부탁했던 절친인 고교동기를 찾아 나섰다. 친구는 승승장구하여 공기업의 본부장 자리에 올랐다. 친구는 자신의 휘하 부서장 두 명을 즉석에서 호출했다. 약 60매 내외의 신청서가 짧은 시간에 모아졌다. 순간 지점장은 적지 않게 놀라는 눈치였다.


신용카드 영업 타깃 고객은 자신이 관리 중인 주요 고객과 가족 등 내부고객과 자신의 외부 인맥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었다. 평소 유대 관계가 상당히 좋은 고액 고객들 중 의외로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분들도 있었다. 다행히 우리가 영업해야 하는 신용카드의 브랜드는 후발 주자였다. 그래서 공략할 수 있는 잠재 고객군이 비교적 두터웠다.


나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이 신용카드 영업에 전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고향 친구, 고교동기, 대학 동기. 형제자매를 총동원했다. 심지어 이러한 1차 연고자를 통해 한 다리 건너 소개도 부탁을 했다. 1차 고객을 넘어 2차 고객도 유차하고자 했다. 주된 직업군은 대기업 근무자, 정부투자기관 종사자, 공무원(국공립 사립하교 교원), 다른 금융기관 근무자, 공기업 재직자 등을 집중 공략했다. 지연 혈연 학연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에 한 두건의 신청서를 받는 것으로는 승부가 나지 않았다. 백번의 좁쌀보다 한 번의 호박을 굴리는 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한 곳에 20 내지 100부를 빠른 등기 우편으로 송부했다. 때론 우표를 붙인 반신용 봉투을 동봉하기도 했다.

드디어 아주 널리 뿌린 씨앗의 결과를 거두어들

였다. 내 수중에 들어온 신청서를 수기로 카드 신청서 접수대장에 일일이 기록을 해야 했다. 세월이 참 많이 달라졌다. 초임 책임자인 영업총괄 대리 당시 이 정도의 부수 업무는 아래 창구 직원들의 몫이었다. 이제 당시보다 직원수가 엄청나게 줄었고 세상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나는 뭉텅이로 회수된 신청서를 우리 지점 가까이에 자리한 은행 일선 창구직원이나 책임자들에게 넘겼다. 내가 이렇게 은행을 들어설 때마다 은행 직원들은 경악을 했다. 떡 벌어진 입을 좀처럼 다물지 못했다.

“아니, 이렇게 커다란 뭉텅이를 한 두 번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가져오시네요. 부장님, 혹시 학교는 어디 나오셨나요?”

민감한 개인정보까지 물었다.


나는 신용카드사로 전직을 했거나 아니면 그 회사

파견 근무를 하고 있는 직원을 방불케 했다. 우리 지점의 창구 여직원도 현직 지방의회 의원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부장님, 왜 우리 지점장은 카드 권유를 하지 않지요? 지점장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요?”


20 여 장 이상의 신청서를 접수대장에 적으면서 입을 삐죽였다. 백번 천 번 지당한 말임에 틀림이 없었다. 신청서 뭉텅이를 끊임없이 모아가던 나를 본 지점장은 정말로 의외의 말을 밖으로 내었다.

“김 부장, 너무 무리해서 스트레스받을 정도는 하지 마세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점포를 이끄는 지점장으로선 전혀 해서는 아니 되는 황당한 말이었다. 본인은 나서지 않고 아래 직원이 혁혁한 실적을 거두니 좀 부담이 된 모양이었다. 영업에 매진하는 직원의 사기에 찬물을 껴 얹는 것이었다. 지점장이 앞장서 솔선수범을 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자고로 어떠한 영업분야도 시간, 비용, 노력, 스트레스 중 어느 한 가지의 대가를 치르고 않고 원하는 일정한 결과물이 나올 리가 없다. 그것이 만고 불변의 진리임은 내가 지금까지 영업 일선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신청서가 메워지는 대로 뭉텅이를 빠른 등기 우편으로 보내주는 눈물겨운 친구들도 많았다.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교원들은 일정한 주기로 자리를 옮겨 다녔다. 나는 체면은 우선 접어두기로 했다. 그럴 때마다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신청서를 계속해서 들이댔다.


“어이, 친구 이제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잖아?”

고향 절친의 결코 기분 나쁘지 않은 질책에 잠시 움찔하기도 했다. 카드 영업 캠페인 기간 초에 나는 상당한 실적을 거두었다. 그래서 은행 점포장과 같이 자리를 한 회의 석상에서 우수 사례 발표도 간단히 마쳤다.


나는 여러 모임이 있다. 이 모임 회원들에게 평소 경조사를 챙기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것은 출발에 불과했다. 고향 친구 모임에선 이른바 자세(포스)가 나오는 회장 대신 총무를 자청하고 나셨다. 고향 친구들 사이에선 나는 ‘의리의 돌쇠’라는 나쁘지 않은 필명을 얻었다.


모든 사람을 진정성 있게 대했다. 한번 한 약속은 꼭 지켰고 만나는 장소엔 남보다 조금 이른 시각에 도착했다. 그리고 형편이 허락하면 밥값 술값의 51%를 부담하려고 노력했다. 이에 나름 51% 룰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부재중 전화 등에는 잊지않고 즉시 피드백을 했다. 이러저러한 노력이 오늘의 우수한 결과물로 돌아왔다. 벼락 공부보다는 평소 근태 성적을 중시했다.


일정한 영업 부문에서 애초 최상위권을 목표로 뛰어야 중간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평소 지론이다. 이리하여 나는 회사에 재직 중 누적으로 신용카드를 500여 장이나 발급하는 금자탑을 쌓았다.


사실 관계사인 신용카드 회사는 우리 회사 직원들의 덕분에 ‘손 안 대고 코를 쉽게 푸는 영업’을 한 셈이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이 권유한 신용카드를 가입자들이 일정한 수준만 사용해도 회사의 수익에는 엄청난 기여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나는 절친 공기업 본부장으로부터 한 뭉텅이의 신청서를 받아 들고 지점장과 여의도의 한 빌딩 출입문을 나섰다.

“나도 이렇게 영업이 될 만한 곳을 앞으로 다녀보아야 할 텐데”

지점장은 독백에 가까운 말을 던졌다. 나는 순간 머쓱했다.

“저는 오래전부터 많은 곳에 씨를 뿌리고 다녔지

요. 이제부터 나서겠다고요? 세상엔 공짜 점심이 없다는 것을 아시나요?”

지점장의 독백에 나는 혼자서 마음속으로 응대했다.


나는 최근 조직생활을 마감을 했다. 그럼에도 올 초부터 고향 동창회 모임 총무를 세 번째 맡고 있다. 모든 영업은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네트워크의 싸움이다. 네트워크를 쌓는 일은 벼락공부를 하 듯이 어느 날 한꺼번에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평소의 봄에 밴 일상이 되어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골뱅이 무침과 전기구이 통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