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적절한 호칭은 무엇인가

by 그루터기

“어르신, 이 상품이 좋아 보입니다. 이것으로 가입하시지요?”

“예, 무엇이라고요? 이분은 나이가 많지 않아요. 최근에 고위직 공무원을 그만두었어요. 지금은 대학교 교수님이십니다.”

“예. 사모님,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착각을 했습니다.”

오늘 오후 내 상담 부스에서 일어난 작은 해프닝이었다. 고객의 남편을 “어르신”으로 불렀다. 나는 졸지에 호된 꾸지람을 받았다. 내 나이를 기준으로 볼 때 어르신으로 불러도 별문제가 없을 연배와 외모였다. 어르신이라 불리는 것이 매우 못마땅했나 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젊거나 어려 보이는 것을 원하는 시대가 온 것이었다. 나는 즉시 교수님이라 고쳐 불렀다.


내가 40대 후반에 대학병원에 들렀을 때의 일이었다.

“아버님, 진료카드 이리 주시고요. 이 서류 가지고 먼저 접수하시고 3번 방 앞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나는 순간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벌써 노인네가 다 된 취급을 받았다. 매우 서운했다.

20대 초중반 간호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를 아버님으로 불러도 그리 큰 잘못은 아니었다. 환자를 응대할 때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해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으로 나는 돌리기로 했다.


“어르신,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내가 복합점포를 이끌던 시절이었다. 부하 직원은 창구에 거액 고객이 오셨다고 인사를 주선했다. 이 고객에게 예우를 갖추기 위해 쾌적하고 편안한 상담실로 안내했다. 이 고객의 실제 연령은 나와 같은 또래임이 금방 밝혀졌다. 그럼에도 자신이 “어르신”으로 불린 것에 관해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았다. 남자 고객은 웬만하면 그저 “사장님”이라 불렀다. 그것이 무난했다. 그런데 이 고객은 이마와 머리의 구분 선이 불분명했다. 경계선이 상당히 뒤쪽으로 밀리다 보니 나에겐 적어도 60대 중후반 이후로 보였다. 아주 커다란 실수를 범한 셈이었다. 40대 후반이었음에도 정말 어르신처럼 너그럽게 넘어가 줌에 감사했다. 나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금융기관에서 근무했다. 손님을 어떻게 불러야 좋은지에 관해 많은 고민도 했고 시행착오도 겪었다.


내가 고향에서 보내던 시절인 60년대 초부터 70년대 중반까지는 호칭이 비교적 간단했다. 30대~50대 남자는 “아저씨”, 같은 연령대의 여자는 “아주머니”라 부르면 큰 문제가 없었다. 60대 이상은 “할아버지”, “할머니”였다. 같은 집안 내 구성원 사이엔 달랐다. 나이와 관계없이 자신보다 항렬이 높아 “대부” “대모”로 부르면 어른들로부터 최소한 예의 바른 녀석이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나이가 많음에도 낮은 항렬 때문에 조카라 부르기도 했다.


연세가 지긋한 분들은 “어르신”으로 통칭했다. 학교 선후배 간의 서열은 중학교 문을 들어서면서 엄격해졌다. 학년을 기준으로 위의 남학생은 형, 여학생은 언니라고 불렀다. 성별 구분 없이 선배 또는 선배님이 되었다. 군대에서는 계급이나 직위를 불렀다.


내가 평생 몸을 담았던 금융기관의 고객에 대한 호칭은 좀 간단하지 않다. 종래엔 손님, 고객님이란 호칭이 남녀 구분 없이 통했다. 그러나 후자는 전자에 비해 좀 사무적인 느낌이 있어 피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이래서 손님이라는 호칭이 가장 넓은 의미의 통칭으로 무난하게 쓰였다.

최근엔 보통 나이 20줄을 넘어서면 남자는 사장님, 여자는 사모님으로 부르기도 한다. 단 여자의 경우 미혼인 경우 사모님이란 호칭은 당연히 큰 실례가 된다. 그렇다고 결혼 여부를 일일이 따져 묻는 것은 더욱 문제가 된다. 손님이 직장인이거나 전문직 종사자 때론 공무원인 경우 건네받은 명함에 적힌 직위나 직책에 ~님을 붙여 부르는 것이 아주 무난하다. 오해의 소지도 없고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부를 수 있어서 비교적 실수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도 저도 아닌 경우엔 “손님, 어떻게 불러드릴까요?”라며 처음부터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수 있다. 은퇴자에겐 현역 당시 최고의 계급이나 직위 직책으로 불러 주는 것이 관행이 된 지 오래다.


전문 직종인 의사의 경우엔 “선생님” 아니면 “원장님”으로 칭하는 것이 보통이다. 요즈음은 병원의 pay doctor도 모두 원장이라 부른다. 종합병원 의사는 선생님, 과장님으로 부르는 것이 무난하다. 종합병원 특히 대학병원 의사를 나는 개인병원 개원의와 혼동하여 때론 “원장님”으로 부른 커다란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교수님 문제없어 보인다.


의사가 아닌 전문직 종사자 중 박사 학위를 가진 교수는 박사님이나 교수님 중 선호도가 양분된다. 본인이 원하는 호칭을 먼저 파악해야 함은 물론이다. 연세가 드신 분도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것에 관해 기겁을 하는 사람도 제법 있다.

기업체 임원이나 중소기업 CEO 또는 자영업주는 회장님이나 사장님이 무난하다. 부사장도 사장으로 부르면 센스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단, 실제 사장과 같은 공간에 있을 때는 실수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야! 박 변, 우리는 20대 이하의 어린 손님에게도 절대 ~씨라 부르지 않거든. 자네 아래 변호사가 나에게 아무개 씨라고 부르는데 한마디 해주면 좋겠어.”


주위 토지 통행권 문제로 나는 최근 대학 후배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다. 본인이 거느리고 있는 봉급생활자 변호사에게 나와 대표 변호사는 특수관계라는 말을 이미 건넸는데도 문제의 호칭을 계속 이어갔다. 결국은 “의뢰인”이라는 호칭을 들을 수 있었다.


전문직인 변호사나 의사들은 자신의 고객이나 환자에 대한 호칭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부모뻘인 환자에게 거침없이 ~씨라 불러댄다. 이는 공무원 특히 권력기관 종사자들이 민원인을 호칭할 때는 그 정도가 더 두드러진다. 상대에 비해 자신들이 늘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금융기관 근무자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듯이 변호사와 의사도 각각 법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격에 맞는 호칭을 하는 변호사와 의사들도 분명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못한 전문직 종사자들은 좀 더 많은 인성교육을 받아 자신을 찾는 사람들의 연배 등을 고려하여 격에 맞는 호칭을 실천하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완전한 경어를 기대하기는 언감생심이다. 엉거주춤한 수준의 반토막 말을 아무 스스럼없이 밖으로 내는 경우가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어서 이러한 못된 인습이 사라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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