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가스 중독과 월례고사

by 그루터기

장마철처럼 낮부터 어쩐지 제법 굵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을씨년스러운 고교 3년 9월 중하순 무렵이었다. 나는 막내 남동생과 대전 소방서 인근의 시설 좋은 단층 슬라브 양옥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다. 오후 11시 전후 나는 막내와 각자의 요와 이불을 사이좋게 나란히 정렬하여 편 다음 달콤한 꿈나라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한밤중, 아니면 새벽이었는지 가늠을 전혀 할 수 없었다. 막내가 몸통을 좌우로 흔들어 대며 통증을 호소하였다.

"야, 막내야 괜찮아 계속 잠자라니까"

형이나 되어 가지고 무심도 했다. ‘발에 얼음이 박힌’가 보았다. 발가락이 간질간질해서 그러는 걸로 나는 근거 없이 확신을 했다.


이 이야기의 3막 5장 중 제1막에서 나의 기억은 거기 까지가 전부였다. 2막을 올렸는데 꿈나라에서 즐거이 무전여행이라도 하던 나는 두세 명 에게 나의 양쪽 팔 등 상체의 체중을 모두 맡긴 것이었다. 하숙집 앞마당에서 양쪽 어깨 죽지를 부축받은 채 온몸에 힘이 빠져 있었다. 계속해서 주저앉으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 본인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아래와 위로 무질서하게 속을 보여준 증거인 배설물을 치운 다음 나는 안방으로 옮겨졌다.


집 안방 문은 통유리에다 아래위 부분을 목재로 격자 무늬 처리한 우리나라 전통 문 양식을 제대로 따른 것이었다. 이런 미닫이 문 네 짝으로 제법 넓은 안방을 커버하였다. 누군가 이 문을 열고 닫으면 차량의 충돌사고를 당한 듯했다. 교통사고에서 흔히 일어나는 운전석은 물론 조수석 앞 유리까지 몽땅 산산조각 날 때의 파열음과 같았다. 출입문 통유리가 박살 나는 소리가 나의 고막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주인 아들의 금성 카세트 레코더에서 흘러나오는 산울림의 ”아니 벌써” 란 노랫소리가 들렸다

가 그쳤다가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야, 이거 우리 형제한테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제법 심각한 일이 일어났음이 분명했다. 막내는 도대체 어디에서 어떤 상태인가를 매우 걱정하였지만 소재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사태의 전말은 이러했다. 전날 밤 주방 바로 맞은편 쪽을 차지한 우리의 하숙방에서 지속적으로 막내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방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긴급한 상황임을 감지한 하숙생 선배가 출입문 반대편에 달린 창문 모서리 유리를 “짱돌”로 과감하게 깨뜨렸다. 그 후 문제의 현장으로 날렵하게 진입하여 우리 형제를 밖으로 끌어냈다. 주방에 자리한 연탄 화덕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가 주성분인 연탄가스가 방문 틈과 방바닥의 갈라진 여러 틈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침입했다. 그래서 이 처참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5 살 아래인 막내와 나는 신장 등 체격과 체력에서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에 불과했던 막내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한 충격이 나보다 훨씬 컸다. 본인의 의도와 관계없는 배설물의 양이나 인지능력에서 훨씬 위중한 상황이었다. 내가 별일이 없었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복을 주섬주섬 걸치고 등교 길에 오른 것과 달리 막내는 계속 누워서 회복을 기다려야 하는 상태라 등교를 아예 포기했다.


나와 막내는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같은 사학 재단에 속한 고교 3년, 중학교 2년생이었다. 이 막내의 담임에게 나는 가스 사태의 전말을 말했다. 막내가 부득이 학교에 올 수 없다고 보고를 했다. 그런데 당시 언론에 많이 오르내리던 “화생방 훈련” 어쩌고 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대단히 야속했다. 세상에 제자가 사선을 넘나들었는데 그 정도밖에 되지 않다니, 본인은 자식을 키우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연탄가스 어쩌고 하며 막내가 사태의 전말을 편지로 밀고(?)한 사실을 나는 나중에 알았다.

"아니 자식이 한꺼번에 둘이나 죽을뻔했는데" 하며 난데없는 기별을 받자 부모님은 부랴부랴 하숙집에 도착하여 진상파악에 나섰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너무 큰 걱정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

최소한 이런 사과의 말을 기대하지만 하숙집 안주인은 너무나 판이한 대응을 했다.

"저 방에서 예전엔 그런 일이 없었는데"라는 어쩌면 황당하고 한심한 주인의 답변에 울화통이 터졌다. 인간으로서 비애를 느꼈다. 이윽고 누나가 대전으로 급거 올라와 다른 곳으로 하숙집을 옮길까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실제로 나의 고교동기 하숙집으로 당장 답사까지 마쳤다. 그럼에도 결국은 그동안 두 집안 간에 쌓인 유대관계 등을 고려하여 내가 고교 졸업 시까지 그곳에 잔류하였다.


연탄가스 사태 직후에 최근 치러진 월례고사에서 나는 약진을 했다. 반 석차는 23/68에서 5/68로 뛰어올랐다. 이에 ‘진보 상장’과 함께 한자로 "賞"이라고 멋진 고무인도 찍힌 결코 얇지 않은 공책을 부상으로 받았다. 전월보다 월등하게 성적이 개선되어 어쩌고 하는 내용으로 상장이 장식되었다. 부모님은 물론 친구들에게도 자랑을 하지 못했다. 수상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동시대인 중 진보상 수상자의 희소성에 만족하며 지금도 실없는 웃음을 지어 본다. 주위 친구의 “네가 연탄가스를 좀 더 마셨으면 반 수석도 가능했을 텐데”에 “이 친구야 농담이나 막말도 유분수지” 라며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가스 사태가 벌어지던 날 잠자리에 들기 전 악몽(nightmare)이라는 영어단어를 익힌 바 있었다.


무릇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 집주인은 하숙생인 남의 집 귀한 자식이 둘이나 사선을 넘나들었는데 이에 대한 응대는 아주 형편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연탄가스 중독이 되지 않도록 주방을 관리할 의무가 하숙집 주인에겐 분명히 있었다. 먼저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였다. 천냥 빚도 말 한마디로 갚는다고 하지 않던가. 하숙집 주인의 사후 대응에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막내 담임의 응대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먼저 제자의 안위를 걱정해주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작금엔 이런 응대를 보이는 교사는 퇴출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하숙집 주인 식구들과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서로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는 사이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인생엔 정답이 없는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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