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명예직인 대학 선배 졸업 추진 위원장

by 그루터기

대학 2학년 3월 초가 되자 메인 강의실 안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는 새로운 집권 세력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휴교 기간을 보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수업을 받지 못한 입학 동기들 중 일부는 일찌감치 좋은 도피처인 군입대를 하거나 진로를 바꾸기 위해 자퇴 내지 일반 휴학을 했다. 입학 당시와는 많이 다른 구성원들로 물갈이가 되었다. 군 복무를 마친 선배들이 복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복귀하게 되어 입학 동기의 이른바 순혈주의가 깨졌다. 좀 어수선하고 스산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1 학년을 마치고 군입대를 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나 2학년 1학기에 복학생이란 이름을 올리는 선배도 가끔 있었다. 당시 군사 교육 이수로 군 복무 단축 혜택을 받더라도 본디 정해진 복무기간이 길다 보니 2 년만의 복학은 구조상 불가능하였다. 현역과 예비역은 3년 학번 차이가 보통이었다. 그런데 5년 입학 선배가 등장했다. 말 못 할 사정으로 인한 1년의 유급과 풀코스의 군 복무 기간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자주 볼 수 있는 경우는 아니었다


이 선배와는 "불가근 불가 윈" 정도로 2학년을 보내고 3학년을 맞이했다. 3학년 1학기가 마감되기 전에 각 단과대 학생장과 총학생장 선거가 있었다. 법대 학생장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절친 동기 A는 법대 학생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5년 선배를 선대본부장으로 추대하고 쟁쟁힌 입학 동기들로 조직을 꾸렸다. 나 역시 기꺼이 이 대열에 합류를 했다. 박빙의 승부가 되리라던 예상과 달리 선거는 우리 쪽의 압도적인 승리로 마무리됐다.


2학년 겨울방학 중 내 하숙방을 한번 찾은 것이 계기가 되어 법대 내 또 한 조의 삼총사가 탄생

했다. 나와 나중에 법대 학생장이 된 A와 이폴레

옹이라는 별칭을 얻은 B가 바로 그 멤버였다. 학생장 선거 이후 우리 입학 동기 삼총사와 선배 C, 그 외 서너 명의 복학생 선배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다니는 그룹이 만들어졌다.


법대 학생장 선거본부는 발전적 해체를 하고 다른 비공식 조직을 만들었다. 그 이름과 임무도 생소한 "선배 C의 졸업을 위한 추진위윈회"였다. 나를 엉겁결에 추진위원장으로 추대를 했다. 당시만 해도 "복학생"이라 하면 일단 선배 대접은 깍듯이 받기를 원하지만 학점이나 자기 관리도 소홀히 하는 상대적으로 이른바 "꼰대 그룹"이었다. 이 선배도 결코 예외는 아니었다.


포장마차에서 출발하여 이제 어엿한 선술집 반열에 오른 주점 "교차로"를 멤버들은 문턱이 닳게 넘어 다녔다. 표면이 거칠고 백금색의 커다란 원형 들통에 하루 종일 어묵을 끓었다. 라면은 일반 수돗물이 아닌 어묵 국물을 우려내어 테이블에 올렸다. 김밥과 막걸리 물오징어 노가리 등이 주메뉴였다. 이 주점은 모교의 역사에 버금가는 세월을 자랑했다. C 선배는 이곳에서 본인의 정체를 여러 번에 나누어 밝혔다. 본인이 1년 유급을 하게 된 경위는 아픈 곳이 되다 보니 선배는 물론 다른 멤버들도 아예 술안주로 올리지 않았다.

우리 동기와 같이 선배도 두 개 학과 70명이 입학하였다. 전공에 관계없이 사법시험과 행정고시에 반반 정도 나누어서 매진한 결과 나름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드물게 입학 동기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지금 대표적인 보수논객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 겸 법률가도 이 선배의 동기임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바야흐로 선배의 졸업을 돕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이 전개되었다. 졸업에 필요한 최소학점과 선배가 이미 취득한 학점을 우선 파악했다. 그다음 세부적인 작전을 세웠다. 상대적으로 짜기로 소문난 법학 과목은 전공 필수 이외엔 일단 수강 신청을 아예 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 문리대 정경대 개설 교과 중 비교적 후한 점수를 주는 교수 과목을 집중 공략하기로 했다. 다른 단과대학 과목은 이처럼 수강신청을 도와주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관건은 전공 필수과목이 문제였다. 중간, 기말고사가 시작되기 약 2주일 전부터 선배에 대한 그룹 내지 개별 과외를 힘들게 할 수밖에 없었다. 확정된 시험 범위 내에서 단골 기출문제와 예상문제 리스트를 만들어 해당 부문을 선배에게 정독을 권하였다. 시험일이 임박해지면 졸 추위 준비위원들은 잦은 원탁회의를 통하여 예상문제 등을 압축하여 각자 고난의 섬머리(요약) 작업을 하였다. 논점을 빠뜨리지 않으려면 최소 3번 이상의 정독이 필요했다. 이엔 교수 강의를 충실히 받아 적은 모범 노트 2부 정도, 교과서 참고서 법전 법률용어사전 모두를 총동원하였다. 그래서 모의시험 용지에 예상문제에 대한 모법답안을 작성했다. 그 후 이 예상문제의 모범 답안을 여러 번 읽어 암기하는 절차로 이어갔다. 범위가 많고 시일이 촉박한 경우 모범답안 작성을 리스트 별로 나누어 멤버마다 역할 분담을 했다.


출제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이는 예상문제의 공통분모를 압축하면 실제 출제되는 문제가 이를 배신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시험 당일엔 한 두 문제로 최종 범위를 줄여 "형, 이 문제 나올 거야. 나오면 이거 이거 빠뜨리지 말고 단락도 잘 나누어서 쓰면 되는 거야 알았어?"라고 호기롭게 족집게 개인 과외를 흉내 냈다. 형광펜까지 동원하여 "밑줄 쫙 "그어 가며 혼신의 힘을 기울여 밀착 지도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우리 졸 추위에선 3학년 당시 행정법 총론은 물론 각론 문제까지 두 번이나 적중시켰다. 나는 두 문제 중 하나를 택 한 후 시험시간 줄곧 고개 한번 들지 않고 속기사에 버금가는 속도로 답안지를 일사천리로 부지런히 메꾸었다. 쾌재를 부른 후 강의실을 나서 본관 앞 분수대 잔디밭에서 C 선배와 조우를 했다. 나는 생색을 내며 "형, 그 봐 우리가 찍은 게 나왔지? 빠뜨리지 않고 잘 썼어? " 라며 큰소리치는 나에게 "그래 무슨 문제지? 그것 어떻게 무엇을 써야 하는 거지? 그 문제가 나온 거 맞아? 우리가 본 거 쓰는 거 맞아 “라는 황당한 반대 질문을 하는 바람에 졸 추위원들은 포복졸도를 했다


약 2년에 걸친 위원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결국 선배는 지상과제인 학사모를 썼다. 졸업식장에서 신나는 표정으로 위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천신만고 끝에 졸업에 성공한 선배는 국내 3 위 생보사에 취업도 했다. 겹경사를 누려 졸추의원들의 노고에 보답을 했다. 어쨌거나 나는 졸 추위원장으로서 보람을 느꼈다.


3학년 2학기 말 시험을 앞두고 학내 시위가 시국 시위로 돌변하여 시험을 보이콧할 것인가가 논란이 되었다. 그룹 멤버들이 다시 교차로에 둘러앉았다. 선배는 "야, 너희 동기 말대로 시험을 보이콧하는 게 맞을 수도 있는데 말이야.” 잠시 후 고개를 좌우로 세게 흔들었다. ”아냐, 나는 졸업을 해야 되거든, 시험을 꼭 볼 거야 "라고 외치던 굳은 의지가 결실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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