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훌쩍 흘러 나는 어느새 대학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상반기 학위수여식을 매년 2월 중순 내지 하순으로 정해 놓고 있었다. 우리는 캠퍼
스 내에선 물론 하교 후에도 밖에서 자주 뭉쳐 다니는 3 총사가 여럿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세명 모두 성씨의 영문 이니셜이 K가 되다 보니 자칭 타칭 3K라 불렸다.
졸업을 채 얼마 남기지 않은 2월 중순경 3K 중 한 멤버가 얼굴이 몹시 상기된 상태로 다급하게 달려와 합체가 되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보통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였다. 졸업식 이
전에 이미 총장 상 등 수상 예정자를 미리 확정
했다. 친구 K1은 본인이 당연히 법과대학 수석
이라고 믿었건만 전혀 예상치 않게 복학생 선배
인 L형이 수상 예정자로 결정되었다는 것이었
다.
K 삼총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여 해결할 건지 심각하게 논의를 하고 전략을 짜기 시작해
다. 우선 학적 담당자를 찾아 진상을 파악하고 그다음 방법을 찾기로 했다. 시일이 촉박하다 보니 어떻게 손을 써 볼 틈도 없이 졸업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결국 선배는 단과대 수석졸업생이 받는 총장 표창장을 받았다. K1 본인이 당연히 수석 졸업생이 될 거로 확신하여 자신의 고향의 부모와 할아버지에게 미리 알렸다고 하니 일은 더 난처하게 되고 말았다.
80년 초 서울의 봄이라고 일컫던 4월 초부터 모
교 교내 문제로 시작되었던 시위는 5월이 되자 시국시위로 전환되고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갈
다. 그 시절 복학생이 아닌 복적 생이라는 자랑
스러운 훈장을 달고서 시위를 주도했던 한 선배
의 복장에 나는 완전히 매료된 적이 있었다. 본디 짙은 국방색이던 "군용 야상"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여 은은하고 옅은 색으로 아주 보기 좋게 변했다. 선배가 이 옷을 걸치고 시위를 이끄는 모습에 푹 빠졌다. 관록을 유감없이 자랑
하는 복장이었다.
나는 얼마 후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게 특별 향토 장학금을 받아 냈다. 주말에 절친과 의정부까지 가는 수고를 하여 재래시장을 수소문한 끝에 그
렇게 애타게 찾던 중고 군용 야상을 손에 넣는 기
쁨을 누렸다. 하숙집 인근 세탁소에 부탁하여 검
은색으로 염색을 했다. 나는 무더운 한여름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이 소중한 물건을 항상 걸치고 캠퍼스 내외를 활보했다. 이러한 복장 덕분에 다른 친구들보다 더욱 자주 경찰의 불심 검문을 받는 대가도 기꺼이 치렀다.
문제의 졸업식을 마치자마자 K1 친구는 선배의 성적증명서를 손에 쥐게 되고 다시 삼총사는 합
체를 하여 해결책을 상의하였다. 학적과 담당 여
직원이 실수로 선배의 한 학기 분의 취득 학점을 이중 계산하여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법대 수석
졸업생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생겼음이 드러났다. 이에 새로이 또 합체된 삼총사는 부리
나케 학적과로 쳐들어 가서 책임을 철저히 따져 원상회복을 요구하기로 했다. 세상에 별로 무서
울 게 없는 20대 초반의 건장한 남학생 셋이서 불시에 들이닥치다 보니 여자 담당자는 난감
함을 넘어 몸마저 부르르 떨었다. 특히 요령도 부족하고 투박하기로 소문도 난 군용 야상을 걸친 나의 "아가씨, 어떻게 이런 일이 있나요? 책
임을 지어야 마땅한 거 아닌가요?"라는 퉁명스
러운 질책에 담당 직원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친구 K1은 "어이 친구, 너무 심하게 이야기한 것
이 아니냐"며 사무실을 나서며 삼총사는 해맑게 웃었다.
이 사태가 드디어 학장까지 보고되었고 친구 K1
은 호출이 되었다. 결국 선배는 상장과 부상을 반
납 하고 대신 친구 K1 은 본인의 이름이 제대로 새겨진 상장과 부상을 받았지만 완전한 원상 회
복은 불가능하였다. “K1 군, 자네도 향후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와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는다
는 고 장담할 수 없으니 이 선에서 마무리하게 나” 하는 학장의 충고를 친구는 받아들이고 이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다.
이 사태가 발생하기 전 L 선배는 재학 중 결혼을 하였다. 졸업 동기 몇 이서 십시일반으로 푼돈을 모아 벽시계를 선물했다. 선배는 상장과 부상은 학교 측에 반납을 하고 문제의 그 벽시계도 우리
측에 되돌려주었다. 시계의 처리도 그렇지만 이 이후의 선배와의 관계 유지가 가장 더 큰 문제가
되었다.
.
얼마 후 이러한 어정쩡하고 뜨뜻미지근한 사태
를 깔끔히 마무리할 적임자를 자처하고 선배의
입학 동기 C가 나섰다. 사태 발생부터 진행 과정 등을 잘 알고 있었던 선배가 중재안을 제시했다. 어찌 보면 내 동기 L도 일방적인 가해자가 아닌 일종의 피해자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다른 행동
을 기대하기란 보통 사람으로 볼 때 쉽지 않다고 했다. 벽시계는 필요한 사람이 하숙집이나 자취
방에 가져다 걸자고 했다. “내 친구 L이 후배들
을 집들이에 초대하였다. 그러니 그동안 이 문제
로 불편했던 관계를 훌훌 털고 기꺼이 집들이에 가자”라고 했다. 다시 한번 결혼을 축하하고 선배 부부의 행복을 빌어 주자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이에 선뜻 응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나와 동
기 K2는 K1을 집중 설득하고 나섰다. 향후 평생 얼굴을 보지 않고 지낼 것이 아니라면 선배 C의 의견을 따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K1도 드디어 마음의 문을 열었다.
당시 학생 신분엔 무리인 "마주앙"이란 백포도주
가 메인 메뉴가 된 선배의 집들이에 모두 빠짐없
이 자리하였다. 제법 고가인 술값에 대한 걱정은 던
져 버리고 실껏 마셔댔다. 모두들 거나하여 기분 좋은 상태로 신혼인 L 선배의 원룸형 아파트의 출
입문을 나섰다.
대학시절 형법 교재에 자주 등장하는 “기대 가능
성” 이란 부분을 공부한 적이 있다. 나를 포함한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L 선배와 같은 상황에 처
했을 경우엔 어떻게 처신했을 가를 생각해 보았
다. 결코 L 선배를 변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처음
부터 자신의 학점으로 볼 때 자신은 수석졸업생
이 될 수 없다고 먼저 고백하고 나설 수 있는 사람
은 많지 않다. 누구나 완벽한 인간은 될 수 없다. 이 수석 졸업생 사태로 L 선배와의 불편한 관계
를 원만하게 풀어낸 C선배는 역시 복학생답게 관록이란 이름값을 했다. 사회생활에서 누구든 실수를 할 가능성이 있으니 이 정도에서 이 문제
를 접자고 한 학장의 말이 작금엔 한 번 더 나의
귓전을 때린다. 단기간에 선후배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를 이루어 내니 선후배 모두가 법
과대 공동 수석 졸업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