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문제의 배신

by 그루터기

대학 3학년 1학기였다. 당시 민사소송법 강의는 나중에 대법원장까지 지낸 김*철 법원행정처장이 외부 출강 형식으로 맡고 있었다. 3학점 과목은 보통 당연히 1주일에 3시간 강의를 받고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보아 최종 점수를 받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와 달리 처장이라는 현직에 있다는 이유로 수요일 6 7 8 교시로 한꺼번에 몰아서 강의 시간을 편성했다. 실제로 2시간만 강의를 했다. 게다가 중간고사는 건너뛰고 리스키 하게 기말고사로 단판승부를 내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법대 강의는 미술책에 자주 등장하는 고대 파르테논 신전 양식과 유사하고 육중한 권위에다 세련미까지 갖춘 본관 4층 48 강의실에서 받았고 시험 역시 이곳에서 치렀다. 법원행정처장(처장)은 일주일에 3시간 통강을 위해서 당시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관용차인 프랑스산 고급 '푸조'를 이용하였다. 매주 수요일 오후 2시경에 등용문을 통과했다. 옆구리에 낄 수 있고 모서리에 끈이 달린 검은색 사각 서류가방을 늘 지참했다. 당시로선 세련된 고급 제품이었다. 판결문 양식(국가고시 2차 시험 답안지)에 적힌 강의안을 넘겨가며 열강을 했다.


당시 처장의 서류가방은 디자인, 색상, 사이즈 등에서 모두 정말 내 스타일이었다,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흔히 이를 '변호사 전용 가방'으로 불렀다. 나는 석사학위 논문 준비 시절에 어렵사리 이와 비슷한 물건을 하나 장만하여 신주단지 모시듯이 잘 활용하다가 현재는 그 행방이 묘연하다. 지금이라도 어디서 선가 불쑥 그 모습을 드러내기를 아직도 기대하고 있다. 비슷한 대용물을 구입하려 해도, 명저는 일찍 절판되고 재인쇄를 하지 않듯이 찾을 수 없다.


처장은 자신이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 마시던 모주 등 추억도 곁들였다. 출제 예상 문제 등을 불러주었다. 중요도가 떨어지고 출제 가능성이 적은 문제는 몇십 년이 가도 나오지 않으니 헛수고를 말라고 했다.

"이 거 시험 나와 , 공부해! , 이 건 나오지 않아, 공부하지 마!”

이런 식으로 어쩌면 단정적인 말을 했다. 이게 바로 특정시험의 예상문제, 이른바 의대생들이 자주 쓰는 족보란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처장처럼 단정적인 표현은 상당한 리스크를 잉태할 수도 있다는 게 문제였다.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독서대 위에 교재를 장착하고 15센티미터 내외의 플라스틱 자와 샤프펜을 사용해 "맡줄 쫙" 긋는 친구는 거의 법대생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었다. 평소엔 이런 방식으로 공부를 하다 교내 시험을 준비할 때는 달라졌다. 정해진 시험 범위 내에서 예상문제를 추출한 다음 모의 답안지에 교과서와 문제집 판례 등을 편집하여 예상문제의 모법답안을 작성했다. 여러 번 정독을 하여 본인이 준비한 문제가 출제될 경우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답안지를 채워나가면 고득점을 했다. 그래서 사법시험에 합격하려면 속독사, 속해사, 속기사가 돼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회자되었다. 교과서 등을 요약하여 예상 모의 답안을 작성하기까지는 여러 번 정독에다 일정한 스킬도 필요했다. 이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며 상당한 시간도 필요한 고난의 작업이었다.


다른 과목과 달리 중간고사는 생략하고 기말고사

만의 단판승부였다.그것도 두 문제 중 하나를 골라 적는 방식인 택일이 아니었다.오로지 한 문제로 승부를 가르는 민사소송법의 시험 스케줄이 잡혔다. 이제 또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여러 친구들이 압도적으로 꼽은 예상문제는 A였다. 처장이 한 학기 동안 진도도 별로 나가지 않았고, 논점도 제법 있고, 지난 17년간 한 해도 빠뜨리지 않고 출제되었으니 이번에도 이러한 기대를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을 했다. 물론 다른 문제들도 출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것 하나만 철저히 준비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대세였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은 다가왔고 대학원에 재학 중인 3개 학번 선배 여자 조교가 입장을 했다. 시험 시작 전에 법전을 비롯한 모든 소지품은 책상 위에서 치우라는 지시가 떨어진 후 대망의 실제 시험문제가 개봉되었다.

‘에이, 별일 있겠어, 그 거일 거야’ 하고 철석같이 믿고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 순간 조교가 적기 시작한 처음 단어는 수험생 모두의 희망이며 예상과는 전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문제 B를 조교는 한자를 섞어 완벽하게 적었다. 이래서 강의실 바닥 여기저기 수십 개의 수류탄이 나뒹굴었다. 탄식소리도 가득했다. 파편과 총알을 맞은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회복 불가능한 치명상을 입었다. '아니 이럴 수가 이렇게 배신을 때릴 수가 있나, ' 모두들 망연자실했다. 한 친구가 격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여 봐요 국가에서 시행하는 사법 시험장에서도 법전을 볼 수 있는데 하물며 학교 기말고사에서 법전을 참조하지 못하게 하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

"여봐요가 뭡니까, 법전은 참조할 수 없습니다." 선배는 단호하게 잘라 응대했다.


나도 일생일대의 결단을 해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문제 A로 A 플러스 수준의 답안을 작성할 것인가, 아니면 '더듬 더듬식'으로라도 문제 B를 쓸 것인가를. 법전만 볼 수 있다면 문제 B도 웬만한 수준의 답안지 작성이 가능할 텐데 한참이나 망설였다.


나는 결국 후자의 길로 가기로 작정한 후 열심히 답안지를 메워 나갔다. 인용이 필요한 조문이 확실히 몇조인가 떠오르지 않을 때 나는 조문의 내용만을 언급하는 식으로 적어나갔다. 드디어 주어진 시간이 종료되기 직전 답안지를 제출하러 간 나는 실제 문제가 A였는가 할 정도였다. 문제 A에 대한 답안을 제출한 친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실제로 문제 A가 출제된 것으로 착각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문제 A로 답안을 제출한 친구들은 아무리 그 내용이 완벽해도 C플러스 넘어서는 학점을 받지 못했다. 나는 B플러스로 간신히 텈걸이 하여 체면치레를 했다. 예상문제를 너무 과신하거나 시험 문제뿐이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도 단정적으로 판단을 내린다는 건 상당한 리스크가 있는 것임을 직접 체험했다.


모든 상황에서 플랜 A 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었다. 만일에 대비하여 그 대안인 B도 항상 백업으로 준비를 해야 했다.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이 결국은 누구나 소멸이라는 운명을 피해 갈 수 없다. 이 사실만큼은 확실하고 확정적이다. 하지만 세상사 중 이 것 이외 다른 모든 부문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확정이 아닌 불확실성의 세계가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보장 획정 확실이라는 말은 현실과는 늘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본다.


문제 A는 물론 문제 B가 출제될 수 있다는 경우의 수를 가정해야 했다. 그에 대한 준비를 빠뜨리지 말았어야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5인 이상 집합 금지와 제 때 대학 졸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