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마라톤으로 일생을 마감한 친구

by 그루터기

“창섭이가 결국 오늘 새벽에 먼저 세상을떠났다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동안 폐암으로 투병하던 창섭이가 오늘 자신의 일생을 하프마라톤으로 마감했다. 병명을 진단받은 지 겨우 10개월을 못다 채웠다.


창섭이는 마라톤 메니어였다. 일찍이 20대 초반부터 최근 회갑을 넘긴 나이에도 국내에서 개최되는 굴지의 마라톤대회마다 빠지지 않고 풀코스를 완주했다. 한 번도 중도 포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일생은 ‘풀코스’가 아닌 ‘하프마라톤’으로 마감했다. 약 10개월 전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 시 평소와 달리 힘이 부쳤다. 창섭이의 검진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이미 폐암 4기라고 했다.


총무인 나는 올해 2월 초 친구들의 뜻을 모아 회장과 함께 청주에 모였다. 길지 않은 시간에 모은 적지 않은 성금을 치료비에 보태라고 건넸다. 창섭이는 극도의 고통이 수반되는 치료 중임에도 심신의 어려움을 조금도 밖으로 내비치지 않았다. 너무나 씩씩하고 회복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창섭이 본업은 수산물시장의 한켠에서 냉동 수산물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프레온 가스’등 유해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이 되었다. 상온의 실외와 냉동고 안의 매우 낮은 온도가 유지되는 공간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아마 이러한 열약한 근무환경이 발병의 원인이 되었으리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창섭이는 전국적인 규모의 마라톤 대회 풀코스 부문에 매년 출전하다니 보니 주말엔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매년 두 번 만나는 우리 고향 총동창회 1박 2일 정기 모임에 기념 타올을 두 번이나 찬조하는 등 동창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남 달랐다.


5일간의 기나긴 연휴의 끝 무렵에다 코로나 때문에 장례식장은 너무나 썰렁했다. 그럼에도 우리 회원들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곳을 찾았다. 이미 첫날은 수도권의 친구들이 일정을 맞추어 한꺼번에 이곳을 들르기도 했다. 총무인 나는 회장과 시골을 지키는 친구 이렇게 4명이 둘째 날로 문상 일정을 잡았다. 문상 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참이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고향 일행 3명은 둘째 날 이곳 청주의 장례식장에 들러 각자의 보금자리로 복귀하기로 했다. 창섭이의 본가와 처가 쪽 문상객은 너무나 적었다. 내일은 발인 후 화장터로 이동해야 했다. 운구할 일손이 부족했다. 이에 대해 오늘 오전 이곳을 먼저 다녀간 친구 철호는 이미 큰소리를 치고 자신은 나 몰라라 하며 이곳을 훌쩍 떠나버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운구는 우리 고향 친구들이 알아서 할 겁니다. 그렇게 아세요”

본디 워낙 목소리가 큰 친구였다. 철호는 본인이 뒷감당을 할 수 없으면서 이미 일을 저질러 놓은 것이었다. 장례식장에 모인 친구 몇몇이 철호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내일 우리가 해야 되는 운구에 참여할 사람은 누구이며 온전히 우리 회원들이 모두 감당해야 하는지 등 그 전모를 알고자 했으나 그 누구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참으로 난감하고 황당했다. 이래서 우리 3명은 내일의 운구 작업자 명단에 당연직으로 이름을 올렸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협의가 마무리되었다. 우리 3명, 창섭이 남동생, 처가 쪽의 한 명이 이렇게 참여하는 것으로 낙착이 되었다. 문제는 그래도 1명이 더 필요했다. 운구에 필요한 인력은 최소한 6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청주가 보금자리인 여자 동기 한 명이 연락이 닿았다. 오늘 밤에 자신의 아파트에서 하루 묵게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이미 우리 고향 동기 회원들은 남녀 구분이 필요치 않는 스스럼없는 사이였다. 우리도 이제 이순을 넘기다 보니 대부분의 회원들은 고혈압 등 성인병 치료약과 친구가 되어 있었다. 당일로 복귀하기로 작정하다 보니 고향을 나설 때 미처 이 ‘친구’를 챙기지 못했다. 이에 하는 수 없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와 발인일 새벽에 장례식장으로 다시 모이기로 했다. 최소한 오늘 잠자리를 확보했지만 그게 녹록지 않았다. 청주에 살고 있는 순미는 내일 창섭이를 마지막 배웅하기 위해 하루 휴가를 받아내는 대단한 성의를 보였다.


“성주야, 오늘 쉬는 날이야? 어려운 부탁 좀 하자. 오늘 창섭이 운구해줄 사람이 한 명 더 필요해서 말이야.”

“그래 내가 할게.”

순미는 창섭이와 고등학교도 동기이다. 그래서 또 한 명의 다른 고교동기 절친에게 SOS를 보냈다. 이에 성주는 한 번에 흔쾌히 응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순간 코끝이 찡했다. 이래서 우리 운구팀은 완성체로 합체를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선미는 참으로 오래 전의 전설 같은 미담을 하나 더 소환해냈다. 빛바랜 앨범을 들추어 당시의 흑백 스냅사진을 한 장 꺼내 든 셈이었다. 성수는 창섭이의 고교 절친 동기였다. 창섭이의 살림이 넉넉지 못했다. 그런데 창섭이 큰 딸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창섭이는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큰 딸의 등록금을 도저히 마련할 수 없었다. 창수는 응급처방을 꺼내 들었다. 등록금 납부 기한 마지막 날이 밝아왔다. 자신의 큰 딸에게 납부고지서만 달랑 손에 쥐게 하고선 농협에 근무 중인 성수를 무작정 찾아가도록 등을 떠밀었다. 예기치 않게 창섭이의 큰 딸을 마주한 성수는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등록금에 상당하는 현금이나 잔고가 쌓인 예금통장은 찾을 수 없었다. 성수는 잠시 자신의 깊은 생각을 뒤로하고 ‘자신의 계산’으로 본인의 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하여 등록금을 대신 납부했다. 게다가 1만 원권 한 장을 창섭이 딸에게 차비에 보태라며 선뜻 쥐어줬다.


아무리 절친 고교동기 사이라지만 이런 풍경은 쉽게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일행은 대단히 속이 깊고 따뜻한 인격자와 오늘 창섭이의 운구를 같이 하게 된 것이었다. 뿌듯했다. 성수의 모습을 여러 번 더 살폈다. 세상은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어 돌아가나 보다. 코 끌이 찡했던 바로 전과 달리 이번에 울컥했다. 너무나 감동했다.


이승에선 마라톤 경기 풀코스를 항상 완주로 마무리하던 창섭이었다. 그랬던 창섭이는 정작 자신의 삶은 풀코스가 아닌 하프마라톤으로 마감했다. 참으로 안타깝고 애통했다. 창섭이를 미처 따라나서지 못하고 살아남은 우리 회원들은 부디 인생이란 마라톤을 풀코스로 완주하기를 빈다. 모든 친구들이 서로 아주 좋은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중도 낙오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원한다. 인생이란 마라톤을 같이 뛰면서 서로 응원하고 격려를 아끼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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