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장, 오늘은 나 점심 먹어도 될까?

모든 고객은 항상 왕인가?

by 그루터기

강 부장의 고교동기 최 원장은 드디어 자신의 주식 종목 투자를 강 부장을 통하여하기로 했다. 이윽고 최 원장의 개별종목 주식에 관한 본격적인 트레이딩이 시작되었다. 회사 수익에 기여도만을 따질 때 참으로 대단한 일이 일어났다. 본래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강 부장의 생각과 달리 최 원장은 일약 VVIP 고객의 반열에 올랐다. 강 부장은 최 원장이 최대 약 5억 내지 10억 정도의 금융상품 거래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 원장이 트레이딩을 하게 될 줄은 전혀 상상 밖이었다.


처음 거래 개시 당시 2천만 원 정도이었으나 약 4억 원 수준까지 거래규모가 늘어났다. 매매방식이 가장 큰 관건이었다. 거래비용이 압도적으로 절약되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매매였다. 게다가 트레이딩의 매매 회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루 중 같은 종목을 샀다가 되파는 매매행태를 ‘데이 트레이딩’이라 한다. 최원장은 이 데이트레이더 중에서도 보다 월등히 회전율이 높은 이른바 ‘스켈퍼’에 당당히 등극했다. 가축의 껍데기를 벗겨낼 정도로 회전율이 높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었다. 속칭 ‘대패질’을 본인이 자청하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거래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용거래도 추가했다. 이 신용거래로 이른바 ‘레버리지 효과’가 있어 리스크가 커진 반면 약정 실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강 부장으로선 짐짓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평소 까칠하기로 소문난 최원장이었다. 최원장은 ‘미운 오리 새끼’에서 순식간에 ‘우아한 백조’가 되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강 부장이 감당하기에 매우 힘겨운 여러 가지 걸림돌이 동시에 터졌다. 최 원장의 주식 매매주문을 유선으로 접수하여 강 부장이 실행하는 방식을 취했다. 통화 수와 주문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다 보니 강 부장의 다른 고객 관리에는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 강 부장과 고교 동기인 최 원장으로선 강 부장이 자신만을 위한 전담관리자가 되어 줄 것을 요구했다.


매매하는 종목의 시세가 등락이 심한 이른바 변동성이 큰 종목을 최 원장은 평소 선호했다. 이러한 경우 최 원장은 강 부장이 점심식사도 거르고 자신의 트레이딩의 실행을 위해 장중 내내 자리를 지킬 것을 원했다. 다른 고객과 견줄 때 매매 주문방식이 독특하다 보니 다른 직원이 강 부장을 대신하면 주문의 실행이 제대로 될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고교 동기인 강 부장에게 이 미션을 맡기는 것이 편하다는 논리였다. 강 부장으로선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작금엔 자신의 인센티브와 연계된 수익의 원천인 고객 기반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에 강 부장으로선 울며 겨자 먹기로 이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강 부장은 최 원장에게 평소 대형 우량주 위주로 매매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의사라는 전문직 종사자의 자부심 탓인지 좀처럼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제약, 바이오, 헬스케어 섹터의 종목을 선호했다. 나름 자신이 극소수의 종목 군을 선정한 다음 매수ㆍ매도 시 호가 단계별로 여러 개의 주문을 동시에 내는 패턴을 끝까지 고집했다. 이에 운 좋게도 최원장 자신의 예상이 잘 맞을 경우엔 오전장에 한 종목의 매매로 2ㆍ3천만 원의 단기 차익을 내기도 했다. 이런 경우 매매를 잠시 쉬어 갈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더욱 욕심을 내어 같은 종목의 매매를 추가로 이어갔다. 이러다 보니 때론 오전의 실현 수익이 3천만 원이던 것이 오후장 종료 후엔 일간 누적 손익은 마이너스 2천만 원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때론 단기투자 전문가인 양 보유 종목을 쿨하게 손절매도 감행했다. 이리하여 결과적으론 추가 손실을 막기도 했다. 강 부장이 보기에 신의 한 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자주 일어나지는 않았다. 일시적으로 상승세에 있는 주식의 추격 매수를 고집했다. 그 후 순간 극적으로 반락하는 경우엔 손절매를 실행하여 그 투자 손실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강 부장의 만류나 조언을 수용하는 경우는 절대 없었다. 보통의 증권영업 직원이 보기엔 이러한 최 원장의 매매패턴으론 수익을 내기는커녕 백전백패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오늘은 강 부장이 주문 실수를 했다. 강 부장은 최 원장한테 또 엄청난 어필을 받을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본인의 실수이니 자신에게 1주일의 말미를 주면 해결하겠노라 먼저 자진 신고를 했다. 이에 최 원장도 흔쾌히 동의를 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더 문제였다. 오전장에 강 부장이 실수로 추가 매수한 종목의 시세가 극적으로 상승 반전했다. 매매수수료와 거래세의 합인 거래비용을 커버하고도 손해가 없는 수준까지 회복되었다. 이에 강 부장은 초과로 매수된 부분을 매도하겠다고 최원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에 최원장은 즉답을 피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해당 종목의 주가 추이를 보아가며 결정하겠다는 못된 심사였다. 해당 종목이 추가로 상승하면 좀 더 지켜보다 더욱 높은 가격에 팔 작정이었고,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면 강 부장이 하락에 따른 손실 위험을 계속 떠안고 가는 시나리오를 원하는 것으로 보였다. 상승하면 본인이 수익을 가져가고 그 반대의 경우엔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 위험을 계속해서 강 부장에게 떠 넘기는, 이래도 저래도 자신은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를 원하였다. 이 얼마나 비겁하고 기회주의적인 발상인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곁에서 지켜보던 강 부장의 대학 동기 절친은 이제 강 부장은 최 원장의 노예가 되었다며 혀를 끌끌 차며 동정도 했다.


무릇 금융기관 종합자산관리자는 고객의 개척, 유지, 거래의 심화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기본급 대비 성과급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는 증권회사의 영업직원은 얼마나 더 많은 우량고객을 확보하느냐가 생존의 관건이다. 말 그대로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예컨대 수도권에 근무 중인 관리고객 중 제주도까지 기꺼이 따라나서는 열혈 충성 고객이 많은 직원이 최종 승자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손님은 왕이라고들 한다. 영업활동이 숙명인 영리 조직의 구성원은 이에 모두 동의한다. 그런데 수준이나 레벨이 정상에 많이 모자란 고객이나 민원 등만 일삼는 '블랙컨슈머‘는 왕으로 보기 어렵다. 고객의 기반에 충분한 여유가 있어 이러한 유형의 고객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자신 있게 손절매할 수 있는 영업직원은 행운아다. 그렇게 손절매를 하는 것이 본인의 육체와 정신 건강에 절대 도움이 된다.

모든 고객이 왕은 아니라고 자신 있게 큰 소리로 외치며 이러한 자격 미달 고객에 대한 손절매를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영업직원은 그리 많지 않다. 최 원장의 호출이다. 오늘은 보유종목의 주가 등락이 심하니 강 부장에게 점심식사를 거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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