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동학사 1박 2일 동창모임

by 그루터기

이번 1박 2일 가을 등반 겸 동창회 모임은 대전지역 회장단이 주관했다. 은사를 초청하기로 했다. 나는 결코 대형이 아닌 중고 승용차에 5명 승차 인원을 꽉 채우고 목적지로 출발했다.

수학 이선생님도 동참했고 나의 승용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는 톨게이트 요금소에 같은 부락 1년 후배를 조우했다. 나와 후배는 눈치 빠르게도 서로 모르는 척했다. 혼자라면 서로 안부를 물었겠지만 일행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후배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라고 센스 있는 멘트로 재치 있게 순간을 넘겼다.


친구들이 전국 각지에서 출발하다 보니 도착 시간이 들쑥날쑥했다. 회장단은 벌써 은사님을 위해 꽃다발과 조그마한 선물을 준비했다. 선생님들은 각자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였다. 영어 박 선생님은 다른 모임 다 접고 이곳에 한 걸음에 왔노라고 운을 뗐다. ‘어이 에라야 너무 길다 좀 짧게 해라’하며 발언 기회를 사회 심선생님은 넘겨받은 후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 나에겐 ‘미남이야 잘 생겼어’라는 쑥스러운 칭찬도 했다.


두 분 선생님을 제외하곤 식사 후 자리를 떠났다. 우리는 2층의 기다란 방으로 잠자리를 정했다. 저녁 식사 후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산책 내지 주점 섭렵을 했다. 이선생님은 무슨 사연인지 스토커 수준으로 나를 수소문했다.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친구 들로부터 쉽게 수배되었다.친구들은 나를 2층 방안에 대령시켰다. 거나한 상태에서 또 한 단계 높은 술자리를 이어갔다. 천하의 만담가인 친구 연호가 이선생님 사이엔 세기의 대전이 벌어졌다. 두 사람은 분명 스승과 제자의 관계인데 연호는 존대도 아니며 아주 반말도 아닌 비교적 짧은 토막말로 일관했다. 이선생님이 하나의 테마를 던지면 본인은 그 정도는 이미 선생님보다 훨씬 먼저 선배로서 이미 겪었다며 이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친구 연호는 300번 지식 말로 상대방의 ‘약 코를 죽이는’데 남다른 재능을 타고났다.


이선생님은 이야기 소재마다 연호에게 백전백패 당했다. 연호는 짧은 토막말에 꼬부라진 말도 적당한 비율로 섞는 발군의 실력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특이하게 이선생님은 연호에게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등 질책성 발언은 절대로 한마디도 올리지 않았다. 연호와는 친구나 연식이 별 차이가 없는 선후배 사이 오갈 법한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일부 친구들은 귀퉁이 한쪽으로 자리를 잡아 이미 코를 골아대고 더러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 추임새를 넣은 등 끼어들기도 하여 수시로 폭소도 터졌다.


아무리 설전의 시간을 연장해도 두 사람 사이의 승부는 뒤집어질 것 같지 않았다. 지금도 당시 이선생님이 왜 유독 나에게 집착했는지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둥글고 기다란 나무 서까래가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각자 눈을 부쳤다.

다음 날 아침 부담이 가지 않을 정도의 산행이 이어졌다. 같은 무리에 동행한 연호는 전일 밤에 이어 그 국보급 입심을 또 유감없이 발휘했다.

연호는 좀 더 일찍 진로를 정하고 매진하였더라면 일세를 풍미한 국가대표급 만담가를 너끈이 넘어섰으리라. 지난 세월을 원망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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