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
대학 4학년 겨울방학 시절이었다. 법대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포함하여 40여 명이 한곳에 모여 공부를 하기로 했다. ‘법대 합숙훈련’이란 이름으로 매년 방학 때마다 이루어지는 정규 행사였다. 번듯한 건물이나 빌딩이 아닌 오래된 한옥에서 기숙하며 방학 동안 집중하여 국가고시 공부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번에는 남이섬으로 가기로 했다. 하늘 높이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 장관이었다. 가평군 육지 선착장에서 남이섬으로 오가는 교통수단은 여객선이 전부였다. 맑고 아주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북한강이었다. 이 강물을 세차게 가르며 달리는 여객선에서 내려다보는 물보라는 우리 합숙생들의 머리를 식히기에 충분했다.
수은주가 영하 20여 도를 오르내렸다. 게다가 매서운 강바람이 가세하다 보니 체감 온도는 이보다 훨씬 낮았다. 약 20cm 두께의 얼음이 얼었다. 이러다 보면 여객선이 오가는 뱃길이 막혔다. 그래서 여객이 없는 한밤중 내내 두꺼운 얼음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다. 선장 등 요원들만 승선한 채 뱃길을 오가며 얼음이 생기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북극 지방을 오가는 이른바 쇄빙선을 방불케 했다.
우리는 허름한 한옥 방 10개 내외에 나누어 짐을 풀었다. 오래된 한옥 특유의 외풍이 심했다. 이에 방의 격자무늬 출입문 전체를 국방색 군용 담요나 두께가 얇은 여름용 홑이불로 커튼을 치듯이 틀어막았다. 입식 책꽂이에 바람막이 병풍 역할도 맡겼다.
삼시 세끼 식사는 호텔 건물 지하에 자리한 구내식당에서 해결했다. 반찬을 비롯한 메뉴의 질이 매우 부실했다. 균형 잡히고 충분한 양의 식사가 필요한 젊은 학생들이었다. 합숙생들의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정해진 시각 아침 일찍 일어났다. 오와 열을 맞추어 잔디가 제법 깔린 축구장 둘레를 다섯 바퀴 정도 조깅을 마친 후 맨손체조를 이어갔다. 거기다 노래까지 힘껏 불렀고 함성도 질렀다. 김민기 원곡 양희은 버전의 아침이슬이 단골 레퍼토리였다. 합숙생 일행은 크리스마스이브엔 식사 후 간단한 다과를 모아 놓고 캐럴을 몇 곡 합창하는 여유와 낭만도 누렸다. 물론 사전 연습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아주 그럴듯한 화음이 탄생했다.
법대에서 식대를 일부 지원받았다. 이 돈으로 1주일에 한 번 특식을 마련했다. 삼겹살이 단골 메뉴였다. 이는 남이섬 내에서 조달이 어려웠다. 여객선의 신세를 져 육지에서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합숙생들의 위생 관리도 필요했다. 그런데 남이섬에는 자체 목욕시설이 없었다.
이래서 1주일이나 격주로 주말을 이용하여 육지로 나들이 갈 기회가 주어졌다. 지원자에 한해서 육지 읍내에 자리한 공중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었다.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삼겹살 뭉치를 조달해 오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남이섬의 세면 시설은 매우 열악했다. 온수는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샤워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따뜻한 물로 세면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핑계로 나는 공중목욕탕과 삼겹살 지원자 명단에 매번 이름을 올렸다. 목욕탕에서 묵은 때를 벗겨내고 나서면 몸도 마음도 가볍고 상쾌해졌다. 이어 삼겹살 뭉텅이를 들고 선착장에 들어서는 것이 보통의 코스였다. 여객선의 출발 시각까지는 늘 여유가 있었다.
일행은 이 천금 같은 막간의 자투리 시간을 놓칠 리가 없었다. 선착장 코앞의 노상 주점에 방앗간의 참새처럼 매번 들렀다. 두꺼운 무쇠 불판에 삼겹살 덩어리의 일부를 헐어 열심히 올렸다. 삼겹살은 막걸리나 소주 안주로는 너무나 과분했다. 몸과 마음의 때를 벗겨낸 다음의 술자리란 아주 금상첨화였다.
이런 외출자 명단에 단골로 오르는 나와 달리 거의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않거나 아예 한 번도 오르지 않았던 합숙생도 제법 있었다. 이들은 공중목욕탕과 삼겹살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는 대신 고난의 길을 택했다. 영하 20여 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에 그것도 수은주가 더 내려가는 한밤중에 찬물밖에 공급되지 않는 수돗가에서 간이 목욕 내지 샤워로 갈음했다. 거의 냉수마찰이었다.
‘무어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하지? 육지에 나가서 쉽게 해결하면 될 것을. 저러다 감기에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지?’
나 혼자의 생각이었다.
남이섬 합숙 훈련을 마친 후 제법 많은 세월이 흘렀다. 당시 남이섬 합숙생들의 근황을 최근에 전해 들었다. 참으로 놀랍지만 어렵지 않은 분석이 가능했다. 주말 외출자 명단에 자주 올라 공중목욕탕과 삼겹살의 신세를 자주 진 합숙생과 그러지 않았던 사람들 간의 위상은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나를 포함한 외출자 명단에 자주 오른 단골 멤버들은 사시를 비롯한 행시 등 국가고시 최종합격자 명단에 그 이름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반면에 당시 외출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를 거부하고 고난의 행군을 택했던 멤버들은 국가고시 최종합격자 명단에 대부분 이름이 올라 있었다.
미래의 더 나은 자신의 이상 실현을 위해 바로 눈앞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은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커다란 영광을 얻었다. 인과응보였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몰입이 중요했다. 그들은 눈앞의 작은 편의와 안락함을 포기한 데 대한 정당한 대가를 누린 것이다.
공중목욕탕에 덜 가고 삼겹살을 안주로 한 술자리에 참석을 줄이지 못한 것을 이제 와서 한탄한들 무엇하랴. 본인이 목표로 한 큰 이상의 실현을 위해선 좀 혹독하지만 “낭만 유보” “인생 담보”라는 커다란 슬로건 아래 일로매진하는 것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