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무서워한다. 물론 강아지를 키우고 있지만 내가 원해서 키우게 된 게 아니라 한국으로 떠나게 된 이웃의 강아지를 얼마간 보살펴주겠다고 한 것이 15여년이 되어버렸다. 무서워하면서도 이뻐하고 가족과 같은 존재이지만 여전히 무서움은 있었다. 그런데 '고양이, 것도 아기 고양이 두 마리라니..'
남편이 신이 나서 데려온 녀석을 동물 병원으로 샤워 시키러 갔다. 샤워 시킨 고양이와 함께 용품을 또다시 엄청 사 왔다. 젖병에 산양유를 넣고 우유 먹이는 법도 배워오고 목덜미를 잡아도 아픔을 모르니 목덜미를 잡아야 한다며 내 앞에서 배워온 지식을 맘껏 뽐내는 지경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고양이를 만지지 못했다. 우유를 먹이고 바로 고추 있는 곳을 툭툭 두드려주면 신기하게 바로 오줌을 쌌다. 꼭 우리 아이들 우유 먹이고 트림 시키는 것처럼. 그렇게 3-4일은 남편이 도맡아 아이들을 보살폈다. 나의 일은 고무장갑을 껴고 최대한 아이들이 나에게 오지 않으면 후딱 소변 묻은 패드를 버리는 정도였다.
남편은 언제까지나 집에서 그 녀석들을 돌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결국은 매사가 이렇다. 내 의지와 상관 없이 결국은 내가 떠맡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나는 울고 싶었다. 3일정도 나름 익숙해져서 패드를 수월하게 갈아줄 수 했지만 안고 우유를 먹여야 하는 일은 눈앞을 깜깜하게 했다. 배고파 아이들이 울기 시작하자 나는 다시금 고무장갑을 챙겨 전투 모드에 돌입했다. 무릎에 수건을 깔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최대한 그 아이들의 촉감이 나에게 느껴지지 않도록 차단하고 한 녀석을 들어올렸다. 내 아이 어렸을 때처럼 먹고 살겠다고 가열차게 젖병을 빠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엄마 미소가 자동으로 생겼다.
나와 아이들의 첫 터치는 그렇게 무서움과 두려움과 책임감이 마구마구 교차한 그런 복잡한 감정 속에서 결국은 엄마 미소로 마무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