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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국책과제에 도전하다.

실패해도 괜찮아?

사원이 국책 과제를?


나는 요즘 산자부가 주관하는 국책과제에 도전하기 위해 과제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다. 아직 사원급인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준 것은 다름 아닌 소장님과 선임의 지원 덕분이었다. 소장님은 새로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전체 메일로 공유하며 직원들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고, 선임은 나를 믿고 응원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프로 직장인 분들은 첫 문단을 보시고는, 일명 "눈치"도 없이 지원하였다고 생각하실수도 있겠다. 때리시기 전에, 상황을 한번 살펴봐주시고 그 뒤에 때려주시길 바란다.�


때는 2024년, 한 공모전에 대해 소장님이 연구소 전체 메일을 공유하셨다.


"그것이 단순 정보 공유이고, 나의 선임 중 한명에게 따로 진행 지시를 하실 것"이라고 나는 "눈치껏" 생각했었다.


내 예상대로, 한 선임이 출전을 하여 대상 수상의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려진 진상은 이랬다. 선임 중 한 분이 아이디어를 내었고, 소장님께서는 전폭적으로 도와주셨다는 것이다.


그 선임은 나에게 한번씩 그 경험을 귀띔해주었다. 너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고.


이 선임은 업무적으로 나의 직계 스승이다. 각종 테스트를 함께 하는 것은 물론, 연구노트 작성, 과제의 최종보고서 일부분 작성 등 기회가 될 때마다 업무를 경험시켜주었다. 쉽지 않은 3년이었다. 어쩌다가 한번씩은 "사원 월급을 받고 이정도 일을 하는 것은 회사에 참 바람직한 일이다." 라는 건방진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요즘 유행하는 "중증 외상 센터 드라마"의 "백강현 교수"의 "1호"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요구하는 업무의 강도나 강압적인 부분, 호칭은 전혀 다르지만 어쨌든, 나를 좋게 봐주었다는 것은 확실히 느꼈다. 투머치 하지만 하나만 더 밑밥을 깔자면, 나에게 우리 연구소의 과제 적임자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하며 기회가 될 때마다 팀에서 힘을 실어준다. 이 선임은 나와의 티타임 중 한번씩, 소장님의 메일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너도 그렇고, 왜 아무도 이 기회를 잡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라고.


2025년 설 연휴 한 주 전. 소장님의 과제 공유 메일이 왔다.


나는 사실 기다려왔다. 이 메일을. 메일의 내용에 맞는 아이디어를 쥐어 짜내었다. 끼워맞췄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지금껏 해왔던 업무들을 조합한 과제였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지 않나. 이것도 실력이지 않을까.�


나는 아이디어를 제일먼저 선임에게 검토받았다. 선임은 내 아이디어와 태도를 긍정적으로 봐주었다. 그리곤 소장님께 말씀드려 보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소장님께서 조심스럽게 나의 아이디어를 말씀드려보았다.


“제출 자체만으로도 경험이니 부담 갖지 말고 우선 생각한 것을 정리해봐라. 검토해주겠다.”


소장님은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분이셨다. 국가 기관에 자문 요청을 받고, 업계에서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로 저명하셔서 대단하다는게 아니다. 물론 그것도 대단하시지만, 사원이 과제 아이디어를 내는데 시간을 내어 검토해주시는 것은, 스스로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있어서도 파격이었다.


파격은 파격이고, 계획서를 작성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가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이를 문서로 구체화하고 설득력 있는 논리로 정리하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이때 소장님께서 직접 검토해주시며 주신 세 가지 가르침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첫 번째는 어떤 것을 개선할 것인지 특성을 명확히 설정하라는 것이었다.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단순하게, 명확히 설정하라는 것.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정의하는 작업은 계획서의 뼈대를 잡아주는 과정이었다.


두 번째는 비교 대상을 명확히 설정하라는 조언이었다. 이 과제는 정확히 어떤 것을 대체하기 위함인지. 간단 명료하면서도, 대상을 직시할 수 있게 하는 것. 마치 양팔 저울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무게를 정확히 아는 추가 필요한 것과 같다.


세 번째는 업무의 시작과 끝. 즉, 흐름을 명확히 구상하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라도 결과로 가는 길이 지저분하면, 결국 도착하지 못할 뿐더러, 누군가에게 길을 설명할 수 조차 없다. 모든 일은 시작과 끝이 있다. 시작과 끝, 그리고 출발부터 도착에 이르기까지. 지도를 펼쳐놓고 보는 것과 같이 명확해야한다.


이 세 가지 가르침은 내 작업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과 같았다. 소장님의 피드백을 통해 나는 방향 설정을 하였고, 과제 계획서 작성에 돌입한다. 도전만으로도 응원받을 수 있는 내 상황.


시작만으로도 내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 상황을 나는 실컷 누리고 싶어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남긴다.


아직 이룬것이 하나 없음에도 막혀있던 문 하나를 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동시에, 발이 닿지 않는 바다에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바로 옆에 언제든 도와줄 능력이 충분한 조력자가 있다. 언젠간 나도 그렇게 수영이 익숙해져 누군가의 조력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당분간 시간을 자주 뺏어도 괜찮을까요?"


내가 물었다.


"얼마든지요"


소장님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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